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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8.15 07:30

남자의 자격 "본격 청춘음악드라마"

머리 흰 청춘들의 꿈과 열정의 드라마가 아름답다.

 
문득 보면서 김태원의 어록 하나가 생각났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경험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두려움을 낳으며, 두려움이 용기를 낳는다. 용기있는 자만이 경험하고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어느새 살아가면서 얻는 지혜가 자신도 모르는 선을 그어 버린다. 성공해서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해서는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에 안주하려 들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결국은 두려운 것이다. 지금의 성공을 잃어버리는 것이. 다시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살아온 세월 만큼 잃을 것도 많아진다. 지난 시간 동안 쌓아 온 것들이 이 한 순간으로 그대로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두렵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많아진다. 비겁해지고 보수적이 된다. 더 이상에 대해 선을 긋고 벽을 쌓으며.

합창에서 후반부 소프라노 솔로를 맡을 사람을 뽑는데 모두가 그 살인적인 고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지레 움츠려 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리더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 발 앞서 방향을 제시하고 두렵거나 지쳐 있을 따 마지막 한 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가장 위험하고 힘든 곳에 가장 먼저 발을 딛는 것이 진정한 리더인 것이다. 더 고민하고 더 갈등하며 더 노력하고 누구보다 더 많은 책임을 등에 짊어지고서.

"저두요 한계를 두자면 '나도 뮤지컬 하느라고 성악 안 한 지 6년 됐는데'하고 한계를 줄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항상 하면 되거든요. 도전하면. 어떻게든."

앞에 나가 있는 사람이 먼저 시범을 보이고 안 하려고들 해서 속상하다 하는데 누가 그것을 안 하겠는가. 처음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뒤따라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처음 가는 길이니까 멀고 무서운 것이지 앞서 가는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몸을 뒤로 사리던 분들도 막상 하려 하니 어느새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단지 하지 않으려 한 것 뿐이었다. 은연중 자신이 그어 놓은 선으로 인해, 자신이 쌓아 놓은 한계라는 벽으로 인해 단지 아무것도 않으려 멈추어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리도 목소리들이 아름답고 청아한 것을.

양준혁 역시 정작 오디션에서 그의 노래를 들었을 때 그가 과연 합창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작년 시즌1에서처럼 양준혁 역시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구멍으로 합창단에 얹혀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웬걸? 부족한 것을 알고 작심하고 노력하니 어느새 제법 테너같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양준혁 자신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것으로 선을 긋고 더 나가기를 두려워하고 안주했다면 가능했겠는가?

그래서 두번째 합창곡인 아이돌히트곡메들리가 중요한 것일 게다. 오히려 어머니들은 노래를 제법 알기도 하고 즐겁게 따라부르기도 하신다. 나이가 문제는 아니었다. 75세의 나이로 앞에 나가 춤까지 따라추는 배용자씨도 계셨다. 결국 스스로 마음에 쌓아 놓은 벽이다.

은연중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어떻게 요새 아이들의 노래를. 요새 아이들 노래를 듣고 따라부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노인분들이 따라하기에는 노래들이 너무 빠르고 비트가 강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지레 선을 긋고 경계를 짓고 마는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걸음만 먼저 다가갈 수 있다면. 물론 자식들이나 손주들 역시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바쁜 시대 굳이 그렇게 체면 차릴 것이 무에 있는가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면 손주들도 함께 손을 내민다.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고 거리를 두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 듣고 이해하려 들면 충분히 듣고 이해할 수 있다. 요체는 다른 어머니들처럼 두려워하지 않는 것.

확실히 집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살림을 하던 어머니들이 이런 점에서는 강할 수밖에 없다. 역시 세대차이를 느끼더라도 최소한 집안에서 항상 얼굴을 마주하고 지낼 테니까. 주로 밖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젊은 문화는 영 남의 이야기인 것 같고 잘 와 닿지도 않는다. 제법 즐겁게 따라부르는 어머니들과 굳은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버님들의 차이는 여기에서 드러나지 않았을까.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필자 역시 지휘자 김태원의 선택에 적극 동의하는 바다. 굳이 나이 먹었다고, 늙었다고 선을 긋고 구분을 지을 필요가 없다. 나이 먹어서도 얼마든지 젊은 그네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을 듣고 따라부를 수 있다. 몸이야 전같지 않아도 춤도 출 수 있다.

젊다는 것은 무모할 수 있다는 것. 다만 한 걸음이라도 용기를 가지고 내딛을 수 있을 때 그만큼 자신도 더 젊어지게 된다. 그렇게 합창단에 원서를 넣고 오디션을 보아 연습에 참여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모두들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하기는 지휘자인 김태원부터가 합창지휘는 처음이나. 밴드의 리더로서는 전설일지 몰라도 합창지휘는 처음부터 하나하나 윤학원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배워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그는 합창곡까지 썼다. 단지 체면을 생각하고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노래는 훌륭했고 지휘자로서도 이제는 관록이 묻어나고 있다.

시즌1의 '남격합창단'과 시즌2의 '청춘합창단'이 갖는 가장 중요한 차이일 것이다. 양준혁은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김국진 역시 베이스에서 당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경규도 연습하는 동안 한눈을 팔지 않는다. 아니 합창단 멤버 구성 자체가 이경규의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다. 테너로서도 인정받은 윤형빈과 부드럽게 분위기를 조율하는 이윤석, 처음의 의도대로 밉살스런 말투와 행동으로 합창단에 활력을 불어넣는 양준혁. 김태원의 선글라스에서도 물이 빠지고 있었다.

단지 묻어 가는 <남자의 자격>이 아니다. 그냥 얹혀 가는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아니다. 김태원을 필두로 다른 멤버들 역시 합창단 안에서 자기만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합창이라는 생소한 경험 속에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다. 박칼린조차 포기함한 유급생들이건만 '청춘합창단'은 그렇게 강하다. 모두가 가는데 그들도 역시 자신의 발로 자기 걸음을 떼 놓고 있다.

제작진의 센스에는 정말 감탄하는 바다. '청춘합창단'이라더니만 뜬금없는 '본격 청춘음악드라마'라니. '꽃보다 남자'의 주제가를 배경으로 '꽃보다 할매'라는 제목과 함께 교장 김태원의 모습이 보인다. 음악선생님 임혜영과 문제아 전현무, 유급한 이경규, 농구부 주장 출신의 소심한 귀염충희 이충희, 더구나 하필 연습장소가 초등학교다.

"존중과 배려 나눔으로 깊어가는 친구사랑"

초등학교 정문에 걸린 플랭카드가 어쩌면 그리 어울리는지. 교실에 모여 웅성이는 모습이 마치 어린 초등학생이 된 것 같다. 늦게 온 친구를 반기고, 먼저 온 친구를 원망하고, 서로 화장도 해주면서, 그렇게 모여 설레는 것은 아이들이나 머리 희끗한 마음이 어린 아이를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장면이 너무 정겹고 즐거웠다. 이것은 예능이다. 괜히 눈물 짜고 감동받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기쁘고 행복해지자는 예능이다.

베이스솔로를 연습하면서 서로의 호흡을 잃지 않으려고 끝까지 파트너인 유관희씨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권대욱씨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살피는 것.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잠시 쉬는 시간에도 서로 모여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열정과 노력이 있기에 베이스는 자신들의 파트를 테너에 넘기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김태원으로 하여금 파트를 옮길 것을 고민케 할 정도로 형편없던 베이스파트가 이제는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신뢰란 끊임없는 노력과 그로 인한 결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지휘자에 대한 단원들의 신뢰도, 단원에 대한 지휘자의 신뢰도.

그야말로 그 어느 드라마보다 청춘의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청춘드라마였다. 음악이 있어 더 아름다웠던.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들이 더 뜨거웠던. 나이를 먹어도 설렘이 있고 두근거림이 있는 한, 그리고 그를 위해 내딛는 한 걸음이 있는 한 그들은 청춘이다.

그분들이 부르는 아이돌히트곡메들리를 그래서 기대해 본다. 청춘합창단의 청춘은 단지 청춘을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그 자신들이 청춘인 때문이다. 합창단에 지원한 순간 그들은 청춘을 다시 돌려받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려는 그 열정들이.

그렇게 기대한 감동 같은 것은 없었다. 무겁고 심각한 것은 전혀 없었다. 단지 음악이 좋고 음악을 하는 자신이 좋은 오래된 청춘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봄풀내음 가득한 열정과 우정의 드라마가 있을 뿐이었다. 내내 웃으며 보았다. 흐뭇하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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