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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6 07:04

스파이명월 "이 드라마가 사는 길"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동명의 만화 원작의 일본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도 남자주인공 치아키 신이치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의 완벽남으로 나온다. 외모면 외모, 음악이면 음악, 더구나 청소와 요리 등 집안일까지. 성격마저 진지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진지하기까지 한 남자로부터 웃음을 끌어낼 수 있을까? 그런데 웃긴다. 어떻게?

바로 KBS의 월화드라마 <스파이명월>이 갖는 문제이며 한계인 것이다. 물론 여주인공 한명월을 연기하는 한예슬의 노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매회 거의 몸을 날려가며, 망가지는 것을 거리껴하지 않으며 거의 혼자서 드라마를 지탱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남주인공 강우(문정혁 분)이 저리 조용한데 지금 망가지는 것으로는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강우가 벽이라면 더욱 몸을 던져서 벽을 무너뜨리거나 벽에 부딪혀 튀어나와야 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한 걸음 더 나가기가 그렇게 어렵다. 아니 이건 한예슬이 아닌 작가의 탓일까?

<노다메 칸타빌레>에서는 노다메(노다 메구미)가 그 역할을 했었다. 끊임없이 엉겨붙고, 달라붙고, 온갖 민폐를 끼치며 치아키 신이치로 하여금 평정을 잃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한 마디로 노다메의 적극성에 치아키 신이치가 휘둘리며 그로부터 빈틈이 만들어지고 웃음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잘나고 진지한 캐릭터로써 재미를 끌어내는 한 방법일 것이다.

실제 7월 25일 <스파이명월> 5회에서도 그 단초가 보이고 있었다. 한희복(조형기 분)과 리옥순(유지인 분)으로부터 강우를 유혹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을 때 최류(이진욱 분)가 우연히 합류하며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강우의 역할을 대신하는데 한명월이 대시해 오니 놀라 그녀를 팽개칠 때 그때까지 진지하기만 하던 최류의 캐릭터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바로 그런 사소한 장치로도 웃음은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상황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노력인 것이다.

그것은 코미디에 있어 기본이다. 특히 슬랩스틱에 있어서. 그냥 넘어지고 자빠진다고 웃기는 것이 아니다. 넘어지는 것도 철저히 계산하고 넘어진다. 자빠지는 것도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가장 웃길 것 같은 순간에 가장 웃길 수 있는 방법으로 자빠지는 것을 연구한다. 강우의 표정이 어색하면 어색한 것 가지고도 웃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강우가 한명월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한희복과 리옥순이 짐짓 거짓으로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가지고 강우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면에서, 거기서 조금만 더 상황을 크게 만들어 강우를 끌어들였다면 굳이 강우도 어색한 표정 지을 것 없이 그 자체로도 웃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명월과 봉을 가지고 연습할 때도 기왕에 얻어맞고 자빠지는 것을 조금 더 극적으로 끌어낼 수 없었을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상황에, 보다 기발하고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과정을 통해. 여전히 강우는 무표정인 채로도 좋다. 그렇게 잘난 그대로 가만 있으면서도 망가진다. 자기가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의해 망가진다. 하지만 딱 거기서 멈추며 강우도 어색한 채로 남는다.

하기는 그렇다기에는 최류의 존재가 걸린다. 하필 한명월과 주인아(장희진 분) 두 여자배우는 하나같이 웃기는 캐릭터인데 강우나 최류 모두 진지한 캐릭터다. 도무지 웃을 줄 모른다. 망가질 줄 모른다. 덕분에 한명월과 주인아만 아낌없이 망가지고 있을 뿐이다. 한명월과 주인아는 코미디를 하고 있는데 강우나 최류는 정극을 하고 있다. 두 사람씩이나 정극을 하고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까? 두 사람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웃으려야 그저 어색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사실 그랬다. 강우의 생일을 축하하려 바닷가에 모든 준비를 갖춰놓고 기다리던 주인아가 바람맞는 장면에서는 원래 웃음이 터져나왔어야 했었다. 생일선물로 헬기까지 준비했는데 기름없어 돌아갔다 하고, 매니저가 옆에서 등을 들고 조명을 대신하고, 잘난 척 도도한 주인아의 그렇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대화들. 그런데도 한명월을 업고 가는 강우의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주인아의 상황은 충분히 우스운데 강우가 그 웃음마저 거두어가 버린다. 그런데 최류와 강우를 둘 다 진지한 캐릭터로 남겨두자? 그나마 최류는 준주연이라 상관없다지만 강우는 주연이다.

하긴 총체적인 문제일 것이다. 밤새 소식이 없던 강우와 기껏 강우를 찾아갔더니 2층에서 강우의 셔츠를 입고 내려오는 한명월, 충분히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다. 아니 오해하라고 만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오해를 해야 한다. 설사 강우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시청자들이 인지하게끔 그만한 리액션을 보여야 한다. 리얼한 것은 필요없다. 코미디다. 어차피 그런 드라마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강우조차 뜨악하고 시청자 또한 그러려니 한다. 하나하나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그럭저럭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도 도저히 재미없다는 소리가 계속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주인공인 강우가 진지한 만큼 나머지 캐릭터들도 굳이 강우를 몰아세울 만큼 적극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과감하지도 못하다. 딱 그 만큼이나.

답이 없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강우가 알아서 망가져주는 것이다. 말했듯 진지한 캐릭터가 너무 많다. 최류만도 이미 넘치도록 진지하다. 그런데 강우마저 진지해서야 코미디라는 드라마의 한쪽 균형이 자리도 잡기 전에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강우를 망가뜨릴 수 없을 것이면 주위에서 나서서 망가져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스럽게 강우가 휘말리거나, 강우가 휘말리지 않는 것을 웃음의 소재로 삼을 수 있도록. 그저 잘생기고 잘나고 유명한 병풍인 채로 남겨두고 말려는가.

처음에는 그 발칙한 아이디어가 좋았다. 그 다음에는 주위의 시선따위 안중에 없는 듯한 자유로운 전개가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것도 결국 한두회다. 아마 영화 한 편 길이라면 그런 재치로도 어느 정도 버티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벌써 5회다. 매번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데 인내하고 지켜볼 사람이 누가 있을까? 코미디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나조차 그 어설픔이 일상으로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도저히 참고 보아주기 힘들다.

아무튼 난해한 드라마다. 무엇보다 문정혁의 연기력 부재가 드러난다. 진지한 연기가 안 되면 망가지라는 거다. 오히려 몸을 내던져 만가지다 보면 무언가 흐름을 잡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허술한 대본까지. 기왕에 강우를 완벽남으로 설정했다면 그것을 가지고도 재미를 끌어낼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건 어설퍼도 너무 어설프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명월이 강우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을 그 기점으로 여기려 한다. 한명월이 보다 적극적으로 강우에게 다가간다면 뭐라도 변화가 생기겠지. 한예슬이 지금보다 더 망가지거나, 아니면 그를 통해 강우의 캐릭터에 변화를 꾀하거나. 그것도 없다면? 조용히 드라마를 접어야겠지. 이나마도 많은 인내심을 발휘한 결과겠지만.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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