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5 07:48

남자의 자격 "아무도 그 분의 노래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이들의 얼굴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왜 그 분이 15년만에 노래를 했을까요? 아무도 그 분의 노래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도 안했던 거구요. 이제는 그 분이 하시는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전성기로 돌아가시리라 믿습니다."

사실 다른 이야기를 생각했었다. 이 주제로 써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렇게 방송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문득 김태원의 이 한 마디가 마치 벼락처럼 머리를 울리고 말았다. 이것이다!

실제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이 방영되고 시청한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노인분들에게도 저같은 꿈과 열정이 있었구나!"

윤형빈도 그와 같은 취지의 말을 했었다. 전혀 몰랐다고. 알지 못했다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배우 이주실씨(68세)도 과연 충실히 지휘자의 요구에 맞춰 합창에 자신을 맞출 수 있겠느냐는 박완규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제발 그래주세요. 이제 나이가 70이 가까우니까 누구도 가르치려 들지 않아요. 저 사람 가르쳐도 아예 안 되는 것, 아니면 포기하죠. 저는 그런 것 싫어합니다. 아니 정말로 배우는 것 좋아해요."

꿈이란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열정이란 젊음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배우고 익히고 앞으로 나아가고, 그런 것은 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긴다. 노인들은 이제 꿈도 열정도 학습과 발전의 의지도 사그라들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재라고. 단지 모든 것을 불태우고 사그라든 재처럼 지난 삶을 돌이키며 남은 시간을 살아갈 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까?

물론 아주 오래전에는 그랬을 것이다. 평균수명이 그리 길지 않던 시절. 환갑만 넘어도 장수했다고 마을잔치를 열고 했었다. 은퇴라는 개념도 없어서 도저히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현업에서 물러나 한적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노년이란 휴식기간이며 말 그대로 삶을 정리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50대면 대개 은퇴를 한다. 그런데 이미 평균수명이 70세를 넘어섰다. 의료기술도 발전해서 60을 넘긴 노인들도 여전히 젊은이처럼 건강하다. 아직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은퇴라는 이름으로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런데도 과학의 발달로 남은 시간은 넉넉한 것을 넘어 아득하기까지 하다. 기운은 넘치고 시간은 남아돌고 할 일은 없다. 어찌하겠는가?

말 그대로다. 인생은 60부터다. 인생은 52세부터다. 은퇴하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인생을 써가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식도 모두 장성하여 더 이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은퇴를 통해 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그때야 말로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위한 삶을 시작할 때이기도 할 것이다. 은퇴를 앞두고 이제 자기에게 상을 주고 싶다고 말하던 방송국 기술감독 조경범(54세)씨나 같은 방송국 카메라 감독인 한홍근(54세)의 경우처럼. 호텔 CEO로써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 지원했다던 권대욱(61세)씨나 전직 펀드매니저로써 합창단에 응모한 전웅(64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제까지 일과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아보자.

바로 그것이 자기로부터의 소리였을 것이다. 자기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이제는 조금 자신을 위해 살아도 좋지 않겠는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미뤄둔 꿈을 이루어 가면서, 남은 삶을 자기만을 위해 충실하게 살아도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한 채 은퇴후 무료한 삶을 보내다 그렇게 시들어간다.

노인요양시설에 봉사를 몇 차례 갔다 온 적이 있었다. 대부분 잊혀진 이들이었다. 가족들로부터. 주위로부터.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외로운 분들이 많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에 비하면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이들은 얼마나 밝고 건강한가? 아무리 평균수명이 높아졌어도 같은 60대라고 여기기에도 하나같이 너무 젊었다. 삶이 끝나버린 사람들과 이제부터 삶이 시작인 사람들의 차이였을 것이다. 사람이 죽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질 때다. 자기로부터 잊혀졌을 때 사람은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 자기로부터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들과 그 목소리를 들은 주위로부터 떠밀려 나온 사람들. 가족들이 추천하고, 아들과 딸이 대신 응모를 하고 남편과 아내가 오디션장까지 찾아오고, 함께 설레고 함께 떨려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안타까워한다. 과연 그런 자기로부터의 목소리를 스스로, 혹은 주위에서 듣지 못했다면 그분들은 그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엄마가 푸른 드레스 입고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탈락한 것이 너무 안타까운 권해옥(55세)씨의 딸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었다. 딸의 편지 내용에 눈물을 훔치며 권해옥씨가 털어놓은 구구한 사연은 얼마나 그분이 노래를 소원하고 소망하는가를 절실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엄마의 바람을 알아준 딸이 있었기에 권해옥씨도 비록 오디션이라는 형식으로나마 노래에 대한 간절한 꿈을 대신해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이 분은 오디션에서 합격할 수 있기를 바랬었는데. 푸른 드레스에 대한 권해옥씨의 고백은 이번 청춘합창단 오디션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사연 가운데 하나였다.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들어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굳이 부르려 하지도 않았을 뿐이었다. 항상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었다.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포기했기에.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것이다.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로부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단지 시청자로 남아 방송을 통해 그분들의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나도 오디션에 참가해 볼 걸.

하긴 그분들만이 아니다.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과연 내게도 저 나이가 되어 저만한 꿈과 열정이 남아 있을 것인가? 지금 당장 저와 같은 꿈과 열정이 내게는 남아 있는가?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삶이지만 자꾸 돌아보게 된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자기로부터의 이야기들을.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나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오디션에 임하는 참가자들의 표정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던 이유였을 것이다. 탈락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오디션에 임하는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밝고 행복해 보였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서러운 사연을 털어놓으면서도. 그러나 그분들은 진정 그 순간을 기꺼워하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 순간의 기회를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이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움직였던 것이었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전화에 처음 대학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기쁘다던 권대욱씨나, 기쁨을 주체 못하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던 박현란(57세)씨, 하옥(63세)씨, 하기는 너무 기쁘고 설레어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 마냥 잠을 못 이루고 설쳤다는 분들이 또 무척 많았었다. 84세로 청춘합창단 가운데 최연장자인 노강진씨마저 내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런 프로그램 아니었을까? 자기도 미처 듣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만들어주는.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의 목소리를 더욱 귀기울여 듣게 해주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구나. 그런 사연들이 있었구나. 그런 멈추지 않는 꿈과 열정이 있었구나. 그분들이 아직 젊음을. 52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막내이고, 60세가 되어서도 아직 한참 젊다. 젊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분들에게.

물론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반드시 합격했으면 하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 합격한 분들이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가슴을 울려서. 그 분들이 합창무대에 서는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권해옥씨, '만남'이라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정재선(54세)씨, 그리고 딸 여섯을 기르느라 한 번 노래자랑에도 못 나가봤다는 '여자의 일생'을 부른 임태순(59세)씨. 더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하기는 누구 한 사람 떨어뜨리는 것도 심사하는 입장에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완규가 떨어진 분들을 위해 인사하자 했을 때 넙죽 큰 절을 한 이유도 그것일 게다. 죄스럽다.

선글라스를 벗은 박완규의 눈은 너무나 선량해 보였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분들과의 소통을 위해 선글라스를 포기한 그 마음이 너무나 선량했다. 김태원도 27년만에 처음으로 선글라스에서 색을 빼겠다 말하고 있으니. 임혜영씨는 말 한 마디 없어도 그 선량한 웃음과 눈물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모든 이를 대신해 웃고 눈물을 흘린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웃음과 눈물이 착하게 보이는 여성은 처음인 듯 싶다.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리고 이경규의 과거를 알고 있는 군대선임 최정열(52세)와 대학동기 김귀화(52세)씨.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 친구와는 그다지 요즘 알게 된 사람들과는 함께 만나고 싶지 않다. 필자에 대해 너무 많이 안다. 몰라도 되는 것들까지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몰라도 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모르는 채로 남겨두고 싶다. 그래도 만나면 또 그립고 반가운 것을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특히 김귀화씨의 경우는 굳이 청춘합창단 오디션에 응모했던 것일 테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게 되면 오랜 친구보다 고맙고 소중한 것도 없다. 그 만남 오래도록 계속 될 수 있으면.

내내 웃으며 보았다. 흔히 말한다. 예능이 존재하는 이유는 웃음을 주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예능을 보는 이유 또한 그로부터 웃음을 얻고자 해서다. 그런 점에서 <남자의 자격 - 청춘합창단>이야 말로 예능의 본질에 충실한 최고의 예능이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리 흐뭇하게 행복하게 내내 웃으며 볼 수 있었으니. 박수도 치고, 엄지손가락도 치켜 올리며,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 맺혔다.

서사의 승리일 것이다. 동화되었다. 이미 프로그램에 동화되고 말았다. 마치 이제 두 번째 만남이지만 오랜 만남처럼 익숙하게 어울리는 기존의 멤버와 선발된 한창단 멤버들처럼. 나 또한 그들과 같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그리 반갑고 그립다. 그분들의 웃음이 나의 웃음이다.

<남자의 자격>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억지로 웃음을 뽑아내기보다는 담담히 그분들의 삶과 이야기를 들려주며. 조금 자막이 오버하는 것도 있었지만 충분히 감동을 전하고 있었으니까. 벌써 4주째가 그래서 그렇게 즐겁다. 다음주를 기대한다. 어떤 이야기를 나를 기쁘게 할까? 행복하다. 진정.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