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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3 08:08

TOP밴드 "밴드음악이어야 하는 이유!"

밴드음악이 대중음악을 살찌운다!

 
밴드음악이란 자기완결적인 음악이다. 밴드 안에서 만들어지고 밴드에 의해 연주되고 불려진다. 물론 메이저에서 활동하자면 자본의 영향이나 미디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자기가 부르고 연주할 음악은 자기가 만든다. 그것이 밴드음악인 이유다.

그동안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중요한 변화는 누가 이끌었는가? 대개는 싱어송라이터들이 이끌었다. 애드 훠 이래로 줄곡 자기의 밴드를 만들고 활동해 왔던 신중현에서부터, 포크문화를 이끌었던 한대수와 송창식, 조용필과 윤수일 역시 스스로 곡을 쓰고 연주하고 부르던 작곡가이며 밴드의 리더였고, 발라드라는 장르를 정립한 유재하와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 한국대중음악의 지형을 바꿔버린 서태지, 듀스, 현진영, 모두가 자기 음악을 자기가 스스로 프로듀스하던 작곡가이며 무대에 서는 가수들이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간단한 것이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중간에 단계가 많아지면 그만큼 본질로부터 멀어지기 쉽다. 작곡가의 의도와 가수의 의지, 그리고 그 사이에 어쩌면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하게 작용할 자본의 목적이 존재한다. 작곡자는 좋은 곡을 쓰고 싶을 것이고, 가수는 좋은 노래를 부르고 싶을 것이고, 그렇다면 중간에 낀 자본은? 더구나 작곡가에게 곡비를 지불하고 적지 않은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 가수의 음반을 제작하고 발매하는 것은 자본의 역할일 것이다.

자본이 자본을 투자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음반을 제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가수를 데뷔시킨느 것도 궁극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다. 어떻게 벌어야겠는가? 가장 확실한 것은 대중이 확실하게 좋아할 만한 것을 좋아할 만하게 만들어 내보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국대중음악의 고질적 문제인 획일화가 나타난다. 음반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입장에서야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니 결국 팔릴만한 상품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에 이미 검증된 스타일과 장르의 곡들로.

그래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레퍼런스' 아니던가. 예전부터도 있어왔다. 국내든 해외든 히트했거나 히트할 것 같은 좋은 음악이 있다. 그러면 작곡가에게 들려주고 요구한다. 이와 비슷한 분위기로 써달라고. 아예 그래서 표절을 하거나, 보다 기술적으로 표절만을 피해 그와 비슷한 느낌으로 곡을 완성해 내놓거나. 서로가 서로를 베끼는 근친교배가 일어난다. 근친교배는 결국 기형을 낳고 만다.

바로 그런 때 재능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이 필요한 것이다.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는 자기가 직접 쓴다. 물론 그렇더라도 음반을 제작하고 판매하자면 자본의 목적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자기가 직접 만든다고 하는 전제는 어쩌면 획일화될 수 있는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음악가로부터 그 한 사람의 개성만큼이 대중음악에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한 사람이 이제까지 전혀 없던 새로운 스타일과 장르로써 대중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그때는 대중음악 전반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중현이었던 것이다. 한대수였고 송창식이었으며 조용필이었고 윤수일이었다. 서태지였고 듀스였고 현진영이었다. 이들 재능있는 개인들로부터 비롯된 새로운 개성은 확실히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고 한국의 대중음악을 보다 풍부하게 깊게 다양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폭발적 성장은 바로 그러한 재능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할 수 있었다. 유재하, 신해철, 장호일, 김현철, 윤상, 신승훈...

그런데 가만 이들 당대의 한국 대중음악을 바꿔놓았던 음악인들의 면면을 보면 한 가지 공동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직접 연주와 노래까지 책임지는 포크음악인이거나 밴드음악인인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아니 장르와 스타일은 다를지라도 포크음악과 밴드음악을 경험해 본 이들이었다. 직접 자기가 만든 곡을 연주하고 불러보았다. 나아가 자기가 부르고 싶은 곡을 직접 만들고 연주까지 하여 사운드까지 완성해 보았다. 신중현의 음악이 지금 들어도 새로운 것은 연주인으로써의 그의 완고함이 만들어낸 수준높은 사운드가 있기 때문이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가? 이를테면 현재의 기획사 시스템은 산업사회 이후의 대량생산체제를 닮아 있다. 고도로 시스템화된 가운데 거대화되고 복잡화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효율적인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산업자본과 마찬가지로 결과를 최우선으로 모든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모험은 할 수 없다. 확실한 것만을 선택해야 한다.

반면 밴드란 가내수공업이다. 어차피 자본도 크게 들지 않고 리스크도 크지 않다. 단지 밴드를 유지할 만큼만 있으면 된다. 사실 그것이 개라지정신일 테고 인디정신일 터다. 자본과 미디어로 독립되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가지고 직접 대중과 만난다. 이를테면 음악의 직거래장터일까? 인터넷을 통해 소량으로 주문생산해 판매하는 업자들 가운데 보면 그렇게 다양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상품들이 적지 않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작게 시작하려는 벤처기업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자기만족일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하고, 그래서 일정 규모가 넘어가면 보다 전문적인 큰 사업가에게 사업을 넘기고 다른 사업을 시작하고. 그러한 작은 개인의 열정과 아이디어는 주류시장에서도 큰 활력소가 된다. 때로는 그것들이 아예 시장 자체를 흔들러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정상적으로 순환하여 굴러가는 경제일 것이다. 그렇게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그 가능성으로부터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고. 멈추어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이며 흘러가게 된다. 살아있는 사회다.

대량생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시장이 있다. 자칫 규격화된 대량생산으로 인해 놓치고 지나가는 수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어쩌면 가장 절실하고 가장 큰 가능성을 품고 있는 무엇이 있을 지 모른다. 그것을 리스크가 적은 개인이나 소수집단이 찾아내면 리스크를 해결하고 보다 거대한 자본이 참여하여 키우는 것이다. 음악도 그렇게 발전해 왔다.

하긴 이렇게 길게 설명할 것도 없는지 모르겠다. 당장 <TOP밴드>만 보더라도 그렇다. 1회는 프롤로그였으니 젖혀두더라도 2회부터 3회까지의 1차예선과 4회부터 6회까지의 2차예선, 기르고 코치를 정하고 조를 나누던 7회까지. 수많은 밴드가 참여했다. 그리고 밴드의 수만큼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그나마 방송에 나온 것들만 그렇다.  과연 이 수많은 다양한 가능성을 앞에 두고서 획일적이다 천편일률적이다 말할 수 있을까? 같은 기성의 곡을 가지고서도 밴드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이, 가능성이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더욱 연예기획사의 영향력이 커지며 음악에 있어 가수나 작곡가 개인의 의지나 의도가 반영되기 어려워진 지금, 결국 대안은 바로 그러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밴드에 있는 것이다. 직접 곡도 쓰고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밴드컨셉의 아이돌과도 차별되는 부분일 것이다. 돈이 될 만한 음악이 아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 가운데. 그래서 그 가운데 대중의 입맛에 맞는 것이 없다면 도태될 테지만, 그 가운데 혹시라도 대중이 선호하는 것이 있다면 그로부터 부와 인기와 명예를 누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문제라면 그를 위한 통로 자체가 현재 막혀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어차피 미디어야 자본과 마찬가지로 시청율이라는 당장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런데 대중이 과거와는 달리 직접 능동적으로 움직여 음악을 찾아들으려 하지 않으니. 오죽하면 <TOP밴드>에 출연한 밴드 가운데서도 누군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홍대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홍대밖에 없는 것이다."

규모가 큰 국제대회에서 큰 상까지 받고, 혹은 국내에서도 두 차례나 훌륭한 밴드라고 인정을 받았고, 그러나 브로큰 발렌타인이나 게이트플라워즈같은 대단한 팀들마저 <TOP밴드>라는 오디션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듣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예 들려줄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실제 7월 22일 <TOP밴드> 신중현조 조별경연을 보려 한공공원을 찾았을 때 도저히 밴드음악을 즐겨 들을 것 같지 않던 관객들이 적잖이 만나 볼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에서부터 아직 어린 꼬마들까지. 일단 듣게 되면 그것을 좋아하게 될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통로 자체가 막혀버린 채 전혀 대중들에 들려지지 않으니 이제는 밴드음악이란 대중음악과 구분되는 별개의 분야로까지 여겨지는 것이다. 들려줄 수만 있다면.

<TOP밴드>라고 하는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에 더욱 주목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밴드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 밴드음악의 매력과 밴드음악의 가능성을. 그리고 그러한 대중들을 통해 어쩌면 정체되어 있는 한국의 대중음악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한다. 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음악인과 그로 인하 또다른 새로운 가능성과. 누구를 위한 것일까?

게이트플라워즈의 원초성과 TOXIC의 본능을 자극하는 강렬함, 브로큰 발렌타인의 스케일, AXIZ의 화려함, POE의 몽환적 카리스마, 라이밴드의 유쾌함, 리카밴드의 에너지와 반전, 하누비아즈의 시원함과 블루니어마더의 진지함. 물론 그냥 말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어쩌면 돌아보지 않았던 한국 대중음악의 원석들일 것이다. 그것들이 화려한 보석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그를 위한 멋진 진열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TOP밴드>란 것은.

아무튼 덕분에 매주가 즐겁다. 아마추어밴드의 순수한 열정이 좋았고, 그네들의 거칠지만 솔직한 추구가 마음을 두드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준높은 연주와 노래들이 진정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자작곡들 역시 훌륭한 팀들이 많았다. 헤드폰을 바꿀 고민이나 한다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사람은 이렇게 꿈이 있어 아름답다. 그것을 보여준다.

어째서 밴드음악인가? 바로 그들의 손에 들린 음악일 것이다. 해야만 해서가 아니라, 할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자기가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는 음악들. 그 수많은 개성과 가능성들이. 음악의 풍요로움은 대중의 풍요로움이다. 그것을 믿는 것이다. <TOP밴드>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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