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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2 08:18

시티헌터 "드라마가 실종되다!"

사회비판이라는 주제만이 앙상한 아쉬운 마무리...

 
결국 여기에까지 오고 말았다. 그렇게 너무 사회비판이라는 거대서사에 집중하느라 드라마로써의 기본적인 재미마저 놓아 버린느 것은 안니가 우려했더니만.

눈을 의심했다.

"우리한테 주식을 나눠주면 우리도 이제 주주가 되는 거야?"
"우리도 회사 빚을 나눠지는 거래. 우리가 근로자면서 주인이고 그런 거래!"
"우리 꼭 나아서 회사로 복귀하자.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살려 보자!"

마치 민방위 훈련 가서 보는 정부홍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면 계몽적인 목적의 공익광고를 보는 느낌이었을까? 대역배우를 연상시키는 어색한 연기와 선동적인 구호성 대사들. 이것은 결코 드라마라고 할 수 없었다.

역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데서 오는 부작용일 것이다. 재벌과 관련해서도 이것저것 건드릴 것이 많은데 그것을 하나하나 다 해결하려 하다 보니 마지막에 서둘러 마무리짓느라 이런 무리수가 나오고 마는 것이다. 마치 지난 17회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 이진표(김상중 분)의 입을 빌어 이윤성(이민호 분) 자신도 모르게 출생의 비밀이 드러났듯이 말이다. 적절히 구조를 만들고 구성을 다듬어 이야기를 진행하며 이야기 속에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아야 할 텐데 여유가 없으니 이렇게 설명으로 끝내고 마는 것이다.

덕분에 불쌍하게 된 것이 여주인공 김나나(박민영 분)와 상당한 비중을 예감케 했던 김영주의 전처 진세희(황선희 분). 김나나는 초중반 이윤성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진세희 또한 수의사의 신분으로 여러 차례 이윤성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했었다. 분명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드라마에서 이들 둘의 비중이 상당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긴 초반 이윤성의 부탁으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던 배식중은 이제 완전히 부엌떼기로 전락해 하는 일이란 거의 없어졌다.

잠입을 해도 이윤성 혼자. 도청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모든 것은 이윤성 혼자서. 천재만(최정우 분)을 잡아 검찰청 앞에 데려다 놓을 때에도, 더구나 김나나는 아예 천재만의 하수인에게 납치되어 탑위의 공주님처럼 왕자님 이윤성이 구해주기만을 바라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과연 김나나가 단지 이윤성이 기다리라 말했다고 마냥 눈물만 흘리는 그런 캐릭터였던가? 그에 비하면 지금의 김나나는 단순한 비련의 여주인공에 불과하다.

하긴 그나마 진세희는 이제 감초 조역에 불과한 최다혜(구하라 분)보다도 분량이 적어졌다. 아예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회차마저도 적지 않다. 이윤성이 다치는 일이 줄어들었으니까. 진세희 없이도 김영주는 김나나와 이윤성과 직접 접촉하고 있고. 과연 원래 진세희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그 역할마저 모호하다. 있으나마나한.

결국은 드라마를 포기한 결과일 것이다. 드라마란 결국 구조다. 인물과 배경과 사건. 그런데 워낙 할 말이 많아 그것을 모두 배경과 사건에만 할애하고 있으니 인물이 비어 버린다. 각각의 캐릭터 사이에 이야기를 집어넣을 여지가 사라져 버린다. 이윤성의 원맨쇼가 늘고 김영주가 부쩍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물론 여건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실시간으로 대본을 쓰고 촬영까지 진행하느라 시간이 쫓겨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탓에 보다 수월한 길을 찾으려한 탓도 적지 않을 것이다. 천재만을 궁지로 몰아넣을 때 이진표가 단지 천재만이 연락한 대상들과 요정에서 술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장면과 같은 것이 그런 예일 것이다. 그냥 한 데 모아놓고 가볍게 끝내자. 이 역시 몇 마디 독백과 설명으로 끝내고자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그래서 남은 것이란 단지 그래도 일정부분 통쾌하기도 했던 주제 하나 뿐이라 할 것이다. 주제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그 과정의 이야기도 모두 생략된 채, 천재만은 나쁜 놈이었고 그 나쁜 놈을 이진표와 이윤성이 응징한다. 비유하자면 어렸을 적 부르던 그 노래와 닮아 있다고나 할까?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드라마 시작했다~ 드라마 끝났다!"

주제의식은 좋았다. 그러나 주제의식만 좋았다. 결국은 드라마일 것이다. 재미를 얻자고 보는 TV드라마인 것이다. 사회비판도 좋지만 TV드라마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나마 현재 경쟁상대들이 허술하니 망정이지 <최고의 사랑>이 아직까지 방영하고 있었다면 상당히 위태로웠다. 더불어 사회비판이라고 하는 카타르시스가 시청자를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그렇더라도 그것이 과연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를 보장하는가.

이제는 연기도 뭣도 없이 네러티브마저 사라진 채 파편화된 장면과 장황한 설명만이. 그나마 남은 이야기라는 것도 최다혜가 이윤성에서 김영주로 갈아탄 것이 가장 크게 보일 정도다. 아버지로부터 배웠다는 낚시에 이윤성을 함께 데리고 간 최응찬(천호진 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그냥 별 필요도 없는 장면일 뿐. 이렇게 여유없이 설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제 겨우 2회 남았다.

천재만을 검찰청에 내려놓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스크를 하고 나오게 하여 그 안에 자신을 숨기려 하고. 그러나 김영주에게 간파당하며 쫓기다가 마스크까지 벗기우게 된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까지는 필요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슬슬 김영주에게 정체를 들킬 때도 되었다. 역시나 급한 마음에 두는 무리수다. 단 그래도 그림은 나온다.

아쉽다. 사실 시작도 그리 썩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반은 상당히 훌륭하게 짜임새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디가 문제였을까? 직설적인 사회비판에 대한 일반의 찬사가 작가를 취하게 만들어버린 것일까? 중심을 잃고 표류하며 정작 중요한 드라마는 뒤로 물린 채 사회비판만을. 그래서 결국 드라마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사두사미라 해야 할 것이다. 뱀머리로 시작해서 뱀꼬리로 끝났으니. 마치 생텍쥐베리의 보아뱀과 같은 모양새다. 중간만 비대하게 부풀어져 있다. 그게 못내 안타까운 것이다. 훌륭하게만 마무리지었으면 더 좋은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 텐데도.

남은 2회, 과연 이진표의 가장 잔인한 복수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자면 이윤성이 최응찬이 아버지인 것을 모른 채 그를 대상으로 복수를 해야 할 텐데. 그러나 이경희도 알고 최응찬도 안다. 김나나도 어렴풋 눈치채고 있다. 여기에서도 드라마는 포기할 것인가.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마지막 기대를 가져 보며.

드라마는 어찌되었든 드라마임을. 드라마로써 완결되는 치밀함과 완고함이 필요하다. 중심이 바로잡혔어야 했다. 가능성 있는 드라마 하나를 이렇게 잃어 버렸다. 아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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