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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7.20 18:49

연예인과 사생활 "연예인은 사생활도 비즈니스다"

연예인이 때로 공인으로 오해받는 이유...

원래 개인이란 사적 개인과 공적 개인을 아우르는 개념일 것이다. 사적 개인이란 자기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개인이며, 공적 개인이란 관계 속에서 인식되는 개인이다. 이를테면 나는 나일 테지만, 그러나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고, 형제이며, 친구이고, 동료일 터다.

사귀는 것이야 내가 사귀는 것이고 결혼하는 것도 내가 결혼한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위를 맞는 것이고 며늘이를 들이는 것이다. 형제들 입장에서도 매제이고 형부이며 형수이고 올케다. 사생활이지만 무관할 수 없다.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 일이니까 신경 꺼!"

그게 아무리 개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도 그렇게 무 자르듯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예 서로 상관않고 살수 있다면 모를까.

그게 문제인 것이다. 아예 서로에게 상관하지 않고 산다면 서로의 사생활이야 아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더 가까워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서로의 사생활이 겹치는 부분이 생긴다. 신경이 쓰이고, 관심이 가고, 어쩐지 남의 일 같지 않다. 어저면 사람과 사람의 사이란 그러한 서로의 사적 영역이 겹치는 정도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지는 것일 게다.

아주 가까운 연인이라면 하다못해 마시는 커피 취향까지도 신경쓰게 될 것이다. 아주 오랜 친구라면 친구가 담배피는 것까지 간섭하고 싶어질 것이다. 오래도록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해 왔기에 최근 부쩍 술마시는 일이 잦아진 것이 걱정스러워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 일이니 관심 갖지 말라고 한다면 그만큼의 거리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예인이 때로 공인으로 오해받는 이유일 것이다. 연예인이란 감정노동자를 넘어 감동노동자다. 감동이란 인간의 감성 그 심연을 건드리는 것이다. 심연을 건드리며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들려주는 노래, 드라마, 연기, 혹은 액션들. 아니면 그들이 하는 말이며 행동, 일상들. 대상과 자신의 거리가 무한히 0에 수렴하게 될 때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더 대중에 알려졌기에 그들 자신의 삶 가운데 대중과 공유하는 부분이 나타나게 된다.

사생활에 대한 개념이 투철한 미국에서 사생활침해가 일인 파파라치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연예인이 누리는 부와 명성, 사회적 지위는 대중의 연예인에 대한 관심과 지지로부터 나오며, 그 관심과 지지에는 연예인의 사생활까지 포함된다. 연예인이 누리는 모든 것들에는 바로 그러한 사생활에 대한 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간주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 만큼 대중은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 요구할 권리가 있다.

말하자면 연예인의 사생활이란 연예인 자신이 대중에 주는 감동 만큼 대중과의 공적 영역에 속해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대중은 관심을 가지고 영향을 받는다. 연예인이 입는 패션이며 사용하는 일상용품들이며 모든 것이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모방되어지고 혹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생활이 사생활만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연예인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도 비즈니스의 대상이 된다.

연예인이 입는 옷이며 신발이며 액세서리며. 연예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도. 그러면서 연예인 자신도 대중이 호감을 가지고 자신에 지지를 보내게끔 일상 자체를 설계하게 된다. 대중이 바라는 모습으로. 대중이 요구하는 판타지로써. 더구나 자본의 요구와 미디어의 필요가 만나면서 연예인의 사생활은 더욱 의도를 가지고 꾸며지게 된다.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보다 능동적으로 그 관심을 이용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믹일 것이다. 사실은 많은 대중도 그것을 안다. 지금 보여지는 것들이 단지 대중에 보이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대중의 판타지에 충족하고자 꾸며지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서도 모른 척 속아주는 것이다. 그런 쪽이 더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도록 자본과 미디어는 연예인의 일상까지 설계하여 보여주고, 대중은 그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고 즐긴다. 연예인 자신과 자본, 미디어, 대중이 하나가 되어 만드는 한 바탕의 큰 연극판이랄까?

연예인의 사생활이 더욱 연예인 개인만의 것이 아니게 된 이유다. 물론 미디어야 연예인 하나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사라지면 다른 연예인을 찾아 보여주면 그만이다. 오히려 연예인을 망가뜨림으로써 더욱 대중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미디어의 입장에서는 좋다. 반면 연예인을 데뷔시키고 그 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자본이나 그들로부터 만족을 얻으려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요구와 필요에 맞는 사생활의 관리가 필수적이다. 바로 그것을 댓가로 지금까지 대우를 받고 이익을 얻어 온 이상 온전히 자기만의 사생활이라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배신이기도 하다.

바로 그것이 연예인인 때문이다. 아티스트와 자본과 미디어, 그리고 대중. 아티스트란 가진 바 달란트 하나로써 존재하지만, 연예인이란 이 모두를 아우름으로써 존재하게 된다. 아이돌은 그 가운데 가장 첨단에 있다. 자본과 미디어에 의해 대중에 소비되어지도록 가공된 존재. 그런 만큼 연예인 자신은 물론 각 주체들은 그의 사생활이 큰 관심을 가지고 개입하게 된다.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위해서. 사생활이지만 사생활이 아니다.

연예인의 어쩌면 사소한 사생활에도 그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하는 것이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그만큼 연예인의 사생활과 얽혀 있는 것들이 많다 보니, 연예인의 사생활이란 연예인 자신의 사생활만이 아닌 연예인과 자본, 미디어, 대중이 갖는 관계 속에 공유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니 그런 만큼 개인의 사생활이지만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연예인이 공인으로 오인받는 이유다. 아니 어쩌면 연예인은 공인일 것이다. 연예인 자신의 일상마저 그런 식으로 일반의 대중과 공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안타까운 것이다. 누군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써놓은 일기장의 글을 가져다 공개하고는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 무척 스트레스일 것이다. 그런데 트위터에 아무렇지도 않게 써 놓은 일상의 대화들이 어느새 언론에 의해 기사가 되어 원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의미가 부여되어 해석된다. 그로 인해 비난까지 듣고.

하다못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신경쓰인다. 사람을 사귀고, 사랑을 하고, 때로 헤어지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감시당하는 느낌일 것이다. 실제 감시당하고 있다. 대중에 의해. 미디어에 의해. 연예인 자신을 지키려 하는 자본에 의해.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날 경우 그는 철저히 단죄받는다. 잘못해서가 아니다. 바로 그러한 공적 관계 때문이다.

물건을 조금 어지른다고 모르는 사람 사이에 문제가 될 것이 뭐가 있을까? 술 좀 많이 마신다고 겨우 얼굴이나 아는 사이라면 그다지 신경쓸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라면. 친구이고 연인이라면. 그래서 더욱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감시의 대상이 되고, 개인을 더욱 억누르게 된다. 자기의 삶이건만 자신의 삶이 없다.

연예인이 흔히 빠지는 우울증의 이유일 것이다. 대중이 인식하는 자신과 자기가 인식하는 자신과의 괴리. 더구나 자본과 미디어의 힘을 빌어 더욱 대중이 필요로 하는 자신을 연기하게 될 때 정작 자신은 어디에도 없게 된다. 사람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움을 느낀다. 그로부터 자신은 없음을 확인할 때.

아무튼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갖는 숙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이란 자본과 미디어, 대중의 합성어라 할 때. 연예인의 일상에는 분명 자본과 미디어, 대중의 요구와 필요가 함께 공존한다.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한 연예인의 사생활은 단지 개인의 사생활일 수만은 없다. 그래서 연예인이란 일상마저 비즈니스라 말한다. 자본의 필요와 대중의 요구, 그리고 미디어.

따라서 연예인이 스스로 사생활을 지키고자 한다면 선을 그어두어야 한다. 최소한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주체 - 사실상 미디어란 대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 대중들에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는 노력일 것이다. 어차피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들리지 않으면 있어도 없는 것이다. 아예 공유할만한 부분을 만들지 않는다. 이미 대중에 공개하고서 그것을 단지 사생활이라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공개된 이상 그것은 이미 단지 연예인 자신의 개인적 일만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대중은 알고 싶고, 미디어는 알리고 싶다. 그러나 자신은 알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새 대중은, 그리고 미디어는 그런 감추어진 부분들에 대해서마저 들추어내고 판단하려 들게 된다. 그나마 자본은 이해를 같이 하기에 이런 때 연예인의 편에 선다. 대중들에 보이고 들리는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관리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 물론 당사자인 연예인 자신과.

어쩌면 연예인에게 사생활이란 없는 것이 아닌가. 연예인에게도 사생활은 있다고 주장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난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키고자 하는 사생활이 있다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개인의 영역이 있다면. 그러나 대중의 요구와 자본의 필요가 있는 한 그조차도 단지 비즈니스의 대상이 된다. 사생활조차 그 대상으로써 소비된다.

그러나 대중을 감동시켜야 하는 것이 일인 이상에는. 그만큼 대중과 많은 접점을 가지고 공유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그들이 누리는 인기의 원천이다. 대중적 관심과 공감과 지지. 하지만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누군가는 영영 떠나 버리고. 그렇게 맞이하는 불행이 적지 않다. 항상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꿈을 꾼다. 희망을 갖는다.

안타까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좋으니까. 감수해야 할 부분과 끝내 견디지 못하겠거든 다른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와 그렇게 때문에 노력해야 하는 것들. 말 그대로 숙명일까? 감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연예인이란. 동정이란 어줍잖다.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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