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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5.15 09:08

[김윤석의 드라마톡] 개과천선 5회 "기억과 서사의 단절,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다"

부활이라는 흔한 이름, 진실한 자신을 위해서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하나의 인격이란 곧 하나의 서사다.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자신이 있다. 지금의 자신이란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누적된 결과다. 수없이 많은 이유들과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자신을 만든다. 지금의 자신이란 내일의 자신을 위한 재료다. 그런데 만일 어떤 계기로 인해 그같은 시간의 연속성이 단절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터무니없이 사소한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쌓여간다. 한순간에 바뀌기도 했을 테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런 자신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이 '나'다. '나'란 그런 사람이다. 관성처럼 그런 자신을 연기하게 된다. 자기에 대한 기대다. 자신이라면 분명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의식마저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 종교지도자들이 묻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너 자신의 모습인가?"

▲ MBC 제공

지금까지 쌓인 시간들의 더께를 지워낸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유와 경험들을 털어내고 그 밑에 가라앉아 있는 원래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낸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그곳에서 어쩌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한 자신의 모습과 부대낀다. 어린아이같다. 불안하고 위태하다. 김석주(김명민 분)가 아무리 김석주를 연기하려 해도 그는 더이상 김석주가 아니다. 기억상실의 이유다. 기억을 잃는 순간 김석주는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을 함께 잃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온 일들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다. 전혀 타인처럼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자신에 대해 듣고 판단하게 된다. 성격은 남아있다. 여전히 이지윤(박민영 분)을 향한 김석주의 말과 행동은 여지없다.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박상태(오정세 분)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오만하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김석주 자신에 대해서도 냉정해질 수 있다. 김석주 자신의 처지나 입장과는 전혀 아랑곳없이 양심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 도저히 그런 자신을 믿을 수 없다.

김석주가 시위중이던 어민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지윤에게 화를 낸 이유였을 것이다. 법률 상담을 해 준 댓가로 고작 드링크제 한 병이 자신의 손에 쥐어졌다. 억 단위의 돈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거대로펌의 변호사로서 차마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초라한 댓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게를 느껴버렸다. 그 온기를 알아버렸다. 자신이 무척 대단한 존재가 된 듯 여겨졌다. 그런데 한 편에서 그런 자신으로 인해 절망하고 좌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되었고 자살까지 시도하고 있었다. 과연 그런 것들이 모두 자신이 한 짓이란 말인가. 불안이고 공포였으며 동요였다. 지금 자신의 앞에 놓인 진실들로부터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다.

김석주가 지금과 같은 오로지 성공과 승리만을 쫓는 속물적인 인간이 되어 버린 사연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물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계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김석주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기억과 함께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들을 지우고 초기화시켰을 때 남은 것은 다른 사람을 동정할 줄 알고, 연민과 죄책감도 가질 줄 아는 또다른 김석주였다. 김석주 자신이 한 행위들을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고 되갚고 싶어한다. 새로운 경험들이 이제 다시 새로운 김석주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미 말한 그대로 '리셋'이다. 새로운 김석주 만들기다. 기억을 잃고 사라진 김석주를 대신해 새로운 김석주가 나타난다. 리셋을 넘어선 '부활'이다.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난다.

갑작스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기억을 잃었으니 인격마저 한순간에 뒤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이 또한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성격은 여전하다. 실력 역시 여전하다. 달라진 것은 기억이다. 과정이다. 알몸을 드러낸 원래의 자신에 새로운 경험들이 더해진다. 과거와 단절된 원래의 김석주에게 새로운 경험들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간다. 김석주가 되려 하고, 김석주의 뒤를 쫓고, 그런 자신을 의심하고 반발하며 새로운 경험과 관계들을 쌓아간다. 확인 과정이다. 김석주는 김석주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김석주가 김석주가 된다. 무명남이라는 이름을 반겨한다. 그 무명남이 이제부터 김석주다. 선의의 무게와 온기의 가치가 그를 두렵게 만든다. 껍질 속의 새끼새처럼 병실이라는 알속으로 숨어든 채 잔뜩 웅크리고 있다.

그 과정일 것이다. 드라마란, 그가 기억을 잃고 겪게 되는 사건들이란 하필 그의 옆에는 이지윤이 있다. 얼마전까지의 김석주를 누구보다 싫어하던 정의감넘치는 순진한 신참변호사다. 솔직하게 분노하고 무모할 정도로 부딪혀 온다. 장영우(김상중 분)를 통해 지금까지의 김석주에 대해서도 자각하게 된다. 자신이 맡았던 사건들에 대해, 그로 인해 아파하고 눈물짓던 이들에 대해, 그를 바라보는 자신을 향해. 장영우는 김석주의 과거다. 선택한다. 아니 강요당한다. 누구로부터도 아닌 바로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어쩌면 잃어버렸던 원래의 길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짜릿한 쾌감마저 느낀다. 벌써 내일을 기다리게 된다.

아마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 그 모델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아니 굳이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란 곧 힘이다. 힘은 곧 권력이고 정의다. 돈이 정의를 만든다. 사람을 매수하고, 사실을 조작하고, 진실을 왜곡한다. 심지어 그것을 오히려 사실로 진실로 세상에 알린다. 세상이 알게 한다. 하루를 버티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너무 버겁고 잔인한 현실이 된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란 악다구니를 쓰며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 뿐. 그조차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약자의 정의를 지켜야 할 법이 강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진실을 파헤쳐야 할 언론이 강자의 입이 되어 세상을 속이려 든다. 잘못된 것을 안다. 아마 김석주와 다들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관성이다. 그렇게 여겨왔다. 그렇게 믿어왔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습해왔다. 당연하다고. 어쩔 수 없는 이 사회의 현실이라고. 비판조차 사라진 채 오히려 그같은 현실을 알지 못하고 정의를 말하는 이를 비웃고 조롱한다. 깨어나고 보면 불의에 분노하며 억울함을 동정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는 평범한 양심들일 테지만 말이다. 그런 양심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 역시 그나마 돌아가고 있는 것일 게다. 단지 양심은 잠들어 있을 뿐이다.

기억을 지운다. 과거와 관계를 지운다. 모든 것을 초기화한다. 그렇게 알몸의 자신이 드러난다. 새로운 경험이 덧씌워진다.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간다. 안타깝게도 '부활'이란 이제 너무 흔한 제목이 되어 버렸다. 현실의 이슈들이 김석주의 새로운 탄생과 만난다. 우리들 자신이 현실의 이슈들을 새롭게 경험한다. 누구를 위한 드라마일까. 의외로 무겁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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