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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4.03.14 07:38

[김윤석의 드라마톡] 감격시대 18회 "멜로의 함정, 사랑으로 통하다"

멜로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멜로는 한국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이며 또한 한계일 것이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누구보다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와 여자가 함께한다. 감정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격한 감정들이 서로 엇갈리고 뒤엉키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랑하는 것만으로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사랑하고 엇갈리고 부딪히고 화해하고 다시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들이 수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때로 너무 지나치다. 의학드라마인데 병원에서 사랑만 한다. 역사드라마인데 단지 시대만 바뀌어 사랑만 하고 있다. 첩보드라마에서도 적을 눈앞에 두고서도 사랑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 개연성이 무너진다. 장르만의 고유한 개성과 특성마저 사라진다. 그냥 사랑만 한다.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일 것이다. 신의 기적이 복잡하게 얽힌 갈등과 여러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듯, 사랑이 상황을 타개하고 전개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인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행동처럼 예측할 수 없고 설명하기 쉬운 것도 없는 탓이다.

김옥련(진세연 분)을 구하기 위해 신정태(김현중 분)는 상하이 조계 공보국의 담을 넘는다. 그리고 도야마 아오키(윤현민 분)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만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정태는 도야마 아오키에게 1대1 대결을 제안한다. 그러나 신정태의 의도에 따라주는 듯하던 도야마 아오키가 돌연 태도를 바꿔 미리 매복해 놓은 저격수들로 신정태를 죽이려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신정태는 도야마 아오키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답은 가야(임수향 분)였다. 신정태가 김옥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공부국의 담을 넘었듯 가야 역시 신정태를 구하기 위해 공부국의 뒤뜰에 불을 놓는다. 공부국은 혼란에 휩싸인다.

▲ KBS 제공
물론 많이 허술하다. 당장 신정태를 죽이려고만 했다면 도야마 아오키는 불을 끄느 것을 미루더라도 매복해놓은 저격수들에게 신정태를 죽이라 한 마디 명령만 내리면 되었을 것이다. 많이도 필요없다. 두세명만 남겨 신정태를 쏘게 하고 나머지로 하여금 불을 끄도록 했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순포들에게 불을 끄러 가도록 지시하고 그 뒤를 따르던 자신을 신정태가 붙잡았을 때 도야마 아오키는 신정태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방아쇠만 당기면 신정태는 죽었다. 그래서 다시 도야마 아오키는 공부국에서 급히 빠져나가는 가야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공부국에 불이 났다는 보고를 듣는 순간 도야마 아오키는 누가 무슨 이유로 불을 냈는가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신정태를 위해 자신을 말리러 왔다. 말로는 아니라 하지만 가야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신정태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도야마 아오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신정태를 함정에 빠뜨려 죽이려는 순간 공교롭게도 공부국에 불이 났다. 가야를 사랑하기에 가야의 필사적인 의지를 거부할 수 없었다. 가야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 가야가 마음에 품고 있기에 신정태를 죽이려 하지만 그런 가야조차 사랑하기에 가야를 거역해가며 신정태를 죽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은 가야의 뜻을 쫓아 신정태를 살려준다.

무리한 해석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그나마 그렇게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그토록 신정태를 죽이고 싶어했고, 신정태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공부국에 불이 났다면 공부국장으로서 당연히 최우선적으로 그것부터 처리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불을 끄면서도 얼마든지 신정태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포기했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사랑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 절체절명의 위기를 해결하고 이후 신정태가 공보국의 담을 넘고서도 무사한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을까?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그야말로 만능의 주문이다. 조직을 배신하는 것도, 적의 품에 안기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기에 빠뜨리는 것도, 그리고 거대한 조직을 무너뜨리는 것도. 신정태를 사랑한 가야가 신정태를 구하기 위해 도야마 아오키가 국장으로 있는 상하이조계공부국에 불을 지른다. 신정태를 사랑하는 김옥련이 황방의 정체를 알면서도 신정태를 위해서 황방과 계약을 맺고 소속가수가 된다. 신정태의 선택도 앞당겨진다. 충분히 성장하기도 전 신정태는 황방이기기 위한 행동에 들어간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것 치고 남은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황방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일국회를 와해시키는 것도 결국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닐까. 공부국에 불을 질러 도야마 아오키를 방해하고 신정태를 구했다. 그 사실을 그대로 회주에게 보고했다. 가야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회주는 가야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가야를 지키기 위해 신이치는 남모를 계획을 세운다. 신이치로부터 그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도야마 아오키 역시 신이치와는 다른 자기만의 계획을 행동에 옮기려 한다. 일국회 회주로부터 가야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국회 회주 도야마 덴카이(김갑수 분)의 의도를 거스르거나 앞서가야 한다. 어느쪽이든 일국회가 처음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싸움이 사라졌다. 아니 싸움을 하더라도 주먹보다 말이 먼저 앞선다. 악취처럼 진동하던 진한 남자의 피냄새 땀냄새가 흔적도 없이 깨끗이 지워진다. 정교하고 치밀하고 예쁘고 멋있는 영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중국무협영화나 드라마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이유다. 최소한 아시아에서 액션은 한국산이 가장 거칠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여긴다. 가장 싸움같다. 그런데 이제는 잘 만들어진 영상같다. 영상으로서 아주 잘 만들어졌다. 그나마도 이제 신정태는 싸움보다는 머리쓰는 일에 더 주력한다. 좌충우돌의 무모한 싸움꾼 시라소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김수옥의 역할을 도꾸(양태구 분)가 대신한다. 김옥련으로 하여금 황방과 계약하게 만들고 황방을 이용해 스타로 키워준다. 다른 점이라면 원래의 김수옥은 김옥련 자체를 상하이 최고의 스타로 만들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도꾸는 신정태를 누르기 위한 도구로써 김옥련을 황방의 의도에 맡기고 있을 뿐이다. 황방에 의해 만들어진 가수. 빛이 사라진다. 그저 가련한 주인공 신정태의 연인만이 남는다. 신정태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과연 남의 일이다. 황방이 장개석 군대를 지원하는 것은 장개석이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의 일이다. 남의 일처럼 군자금을 대느라 버거워하는 황방과 설두성을 비웃는다. 모일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고향은 단동. 만주는 장개석과 국민당의 영향력 밖에 있다. 마찬가지로 황방에게도 조선인이나 조계의 외국인들, 그리고 아편에 중독될 다른 중국인 역시 남이다. 잔혹하면서도 신랄한 묘사일 것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싸움이다. 더 이상 무모하게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몸으로 부딪히고 주먹으로 맞서지 않는다. 일품이던 박치기는 이제 볼 수 없을 지 모른다. 무술을 쓰기 시작한다. 어느새 무공의 고수가 되어가고 있다. 그보다는 계략으로 노회한 황방의 방주 설두성과 맞선다. 정재화(김상오 분)에게는 도야마 아오키가 접근한다. 피비린내보다 메마른 살벌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왕백산(정호빈 분)과는 싸워야 할 것이다. 아쉽다. 이제와서 무척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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