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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11.24 01:26

상속자들 "신데렐라 컴플렉스, 그 오해에 대해"

신데렐라는 단지 욕망의 신기루일 뿐이다

▲ '상속자들' 포스터(SBS 제공)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만난 그 무도회에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들 역시 초대받고 있었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이유였다. 아예 갈 수 없는 신분이었다면 그렇게까지 간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정의 도움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무도회장에 나타났을 때도 신데렐라를 막아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도회가 끝나고 왕자가 구두의 주인을 찾을 때 나라 안의 처녀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왕자와 시중들은 신데렐라가 마지막 처녀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왕자가 신데렐라와 결혼하겠다 했을 때도 그를 말리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바 역시 하나일 것이다. 왕궁에서 열리는 무도회인데 관리가 그렇게 허술할 리 없을 것이다. 계모와 의붓언니들이지만 어찌되었거나 신데렐라의 가족이었다.

한 나라의 왕자 쯤 되면 사랑만으로 배우자를 맞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평생에 어쩌면 한 번 있을 결혼이다. 그 결혼을 통해 맞이할 한 사람의 배우자다. 희소한 만큼 그 가치는 매우 높다. 왕실의 식구가 되는 것이고 장차 왕위를 이을지 모르는 귀한 신분의 배우자가 되는 것이다. 얼마든지 비싼값에 팔아치울 수 있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내놓기에는 그로 인해 얻어질 이익이 너무 크다. 그래서 차라리 결혼과 공식적인 배우자의 자리는 가장 비싸게 사 줄 수 있는 상대와의 비즈니스를 위해 남겨두고 자신의 감정을 위해서는 그 나머지만을 허락한다. 근대 이전 유럽의 사교계에서 결혼과 연애를 구분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었다. 아니 아예 공식적인 배우자 이외에 애인을 따로 두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왕자가 신데렐라에게 한 눈에 반했다 하더라도 굳이 신데렐라를 왕자비로 맞이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결혼전에 애인 하나 두는 정도는 흠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왕자는 신데렐라를 굳이 아내로 맞이했고 궁정의 왕실관계자들은 그것을 전혀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신데렐라의 가족들은 왕실의 무도회에 초대받고 있었다. 그 말이 의도하는 바는 최소한 신데렐라는 왕자가 자신의 배우자라는 비싼 자리를 기꺼이 내주어도 좋을 신분과 위치에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라고는 없는 한미한 처지에서 느닷없이 신분이 올라가 왕자비가 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왕실무도회에 초대받았다는 자체가 그만한 신분에 있는 귀족이거나 부유한 상공인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신데렐라의 이야기란 사악한 계모에 의해 정당한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던 한 소녀가 원래의 자리를 되찾는 내용이었던 셈이다. 백설공주가 산속 오두막에서 일곱난장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고 일곱난장이의 동거인이라는 것이 그녀의 신분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소공녀 세라를 찾아온 아버지의 동업자도 그녀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준 것이지 없던 신분을 상승시켜 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근대의 신화였던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신분상승도 꾀할 수 있었다. 신데렐라는 그렇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전혀 엉뚱한 신분상승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아마 신데렐라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떻게 천한 것들이 왕실의 가족이 될 수 있는가 분노하지 않았을까?

결국은 신데렐라 컴플렉스라는 말 자체가 근대 이후 대중의 신분상승의 욕구를 담아내는 하나의 아이콘이었던 셈이다. 신데렐라를 일부러 비천한 처지로 끌어내림으로써 신데렐라를 굳이 자기와 동일시하려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20세기 영국의 왕세자 에드워드는 미국인 미망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세자의 자리마저 내놓아야 했었다. 찰스 왕세자 역시 이혼녀인 지금의 애인을 여전히 정식 부인으로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왕실 자신이 그 권위를 낮추거나, 아니면 그에 걸맞는 신분만이 왕실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을 때도 명문귀족이던 다이애나 왕세자비 역시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차은상(박신혜 분)과 함께하기 위해 굳이 출생의 비밀마저 밝히며 지금의 위치에서 굴러떨어지려 한 김탄(이민호 분)의 선택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제국그룹의 둘째아들, 그것도 경영권 승계를 가시권에 두고 있는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절대 차은상의 곁에 있을 수 없다. 그렇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다. 차은상 역시 마찬가지다. 저 높은 곳에 있는 김탄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녀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차은상은 자신의 신분에 대해 모두의 앞에서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만이라도 김탄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김탄이 있는 곳까지 기어올라가려 한다.

확실히 고전적인 신데렐라의 공식을 그대로 밟고 있다 할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지금의 낮은 신분을 대신할만한 특별한 능력이라든가 자신만의 장점 같은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하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에 치여 컴플렉스 덩어리가 되어 버린 평범한 여자아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랑의 방식은 특별하다. 그들의 사이에는 너무나 큰 현실의 벽이 있고 그 벽을 넘기 위해 나름대로 발버둥치는 중이다. 언젠가 헤어짐을 기약하고 있던 전현주(임주은 분)와 김원(최진혁 분)처럼. 과연 차은상은 자신이 끝까지 김탄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일까?

신데렐라는 없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데렐라는 없었다. 그래서 혁명이 필요하다. 자기가 내려오거나, 아니면 자신이 위로 올라가거나. 그런데도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것은 아직 학교이고 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같은 동급생으로 있을 수 있다. 학교 밖에서라면 만날 일도 없을 사이들인데 친구가 되어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굳이 배경을 학교로 선택한 이유가 아닐까. 

꿈을 깨뜨린다. 그저 믿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 꿈꾸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왕자들은 낮은 신분의 처녀들에게 반하고, 왕자가 반한 처녀들은 항상 허름한 차림의 평범한 아가씨가 되어 버린다. 공주들이 사랑한 남자들 역시 하나같이 평범하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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