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26 15:04

내사랑 내곁에 "봉선아와 고진국의 심상치 않은 인연"

드라마란 사람의 이야기다.

 

설마 고진국(최재성 분)과 봉선아(김미숙 분)가 서로 아는 사이였을 줄이야. 더구나 하숙집 딸과 하숙생이면 무언가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정말자(사미자 분)의 딸 이소정(이의정 분)을 고진국과 결혼시키려 한 야심은 이렇게 무위로 돌아가려는 모양이다.

정말 흥미롭다. 사실 자칫 잘못하면 욕먹기 쉬운 설정일 것이다. 어째 모두가 연관이 있는가? 이소룡(이재윤 분)의 할머니 정말자와 이소룡의 외할머니로 여겨지는 강정혜(정혜선 분)마저 고등학교 동창으로 나오더니만. 하필 그 회사에 이소룡은 다니고 있고, 거기에서 도미솔(이소연 분)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물론 당연히 고진국이 고석빈(온주완 분)의 큰아버지이니 거기에서 고석빈과 도미솔이 마주치기가 딱 좋다. 그런데 이제 고진국과 봉선아까지. 아예 대놓고 작위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색하다거나 억지스런 느낌이 없는 것은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미솔이 회사에서 고석빈과 마주치고 그를 피했을 때 도미솔을 쫓는 고석빈의 뒤로 그의 아내 조윤정(전혜빈 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도미솔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그 사실에 당황해하는 이소룡과 함께 고석빈의 빈자리에 허탈해하는 조윤정이 있었다. 고석빈의 일로 상처받은 도미솔이 영웅이와 마주하고 있을 때에도 이소룡은 그녀에게 보내줄 파일을 걱정하고 있었고, 조윤정이 상처받은 마음을 술과 춤으로 달랠 때 고석빈도 술을 마시며 고뇌하고 있었다.

마치 격자로 나뉘어진 무대와도 같다. 물리적 거리마저 무시한 채 벽 하나가 세워져 배우와 배우 사이의 거리가 나누어지고 그러나 모두는 한 무대 위에 서 있다. 도미솔이 상처입는 것은 고석빈과 그의 아내 조윤정 때문이다. 조윤정이 상처받는 것도 도미솔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고석빈 때문이다. 고석빈은 조윤정과 도미솔에 대한 의리, 혹은 사랑으로 고민한다. 그런 점에서 이소룡은 순수하게 도미솔의 일만 생각하면 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입장으로 전혀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드라마라고 하는 한 지점에서 서로 엇갈리며 교차한다. 그에 반응하며 그에 절규하며 그리고 행동해간다.

하기는 서로의 물리적 거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참 걸리고 말았을 것이다. 도미솔이 고석빈의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도미솔과 이소룡과의 인연도 이어지고 같은 공간에서 도미솔과 고석빈은 갈등할 수 있었다. 우연이 아니었다면 도미솔과 고석빈이 다시 만나는 것도,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이소룡과 고석빈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첨예하게 대비되는 것도 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경로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공간 안에 있기에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즉 하나의 닫힌 세계일 것이다. 연극을 위해 준비된 무대처럼 드라마를 위해 준비된 세계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닫혀 있다. 그런만큼 관계는 유기적으로 촘촘히 이어져 있고, 따라서 모두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는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하필 도미솔의 외삼촌 봉우동(문천식 분)이 이소룡의 고모 이소정과 그런 관계가 되었던 것처럼. 이 역시 도미솔과 이소룡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리라. 아니 그 전에 이소룡의 어머니가 도미솔의 담임이었다는 점에서 갈등을 예고한다. 복잡하고도 첨예한 감정들이 별다른 장치 없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예비되어 있다.

하긴 그래서 이제 겨우 15회일 것이다. 상당히 지난 줄 알았다. 그동안 겪은 여러 사건들을 생각한다면. 하지만 그에 비하면 이제 겨우 15회. 괜하게 서로 복잡하게 꼬거나 멀리 돌아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고석빈과 도미솔이 만나기 시작한 그 순간 이미 그 주위로 고석빈의 여동생 고수빈이 지나고 있었고, 그 사실을 안 배정자(이휘향 분)은 바로 도미솔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분명 도미솔 가족을 발견하고 그들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터인데도 배정자가 그들을 찾고 영웅이를 만나는데 걸린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그녀의 고민과 영웅과의 만남은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고석빈과 배정자의 충돌도 극적으로 고석빈과 도미솔이 만난 그날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일 것이다. 관계가 복잡하다. 서로 너무 다양한 감정과 사연들로 얽혀져 있다. 그런데 그것을 에두르려 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화려하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시간을 끌지도 않는다. 직구다. 가장 빠른 직구다. 그래서 모두는 한 그라운드 위에 서 있고, 서로의 직구를 맞을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바로바로 반응이 나타난다. 도미솔의 눈물과 이소룡의 설렘과 고석빈의 고뇌와 조윤정의 상처. 봉선아의 고단함과 배정자의 이기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자의 허튼 욕심 또한 그래서 배정자의 욕심과 충돌한다.

봉선아와 고진국의 만남에서도 새로운 관계와 감정이 만들어지겠지. 그것은 배정자와 정말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도미솔과 고석빈, 조윤정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진짜 이소룡이 강정혜의 외손자가 맞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드라마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할 것이다. 둘의 관계가 아니었어도 드라마는 여전히 흥미로웠겠지만 또 하나의 관계와 감정이 더해지며 각 캐릭터의 반응 역시 복잡해지고 깊어진다. 갈등이 깊어지고 그런 만큼 충돌도 해결도 격렬해질 것이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단지 그렇게 복잡하고 격하기만 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면 드라마는 공허했을 것이다. 아니 그래서 드라마의 작위가 어색하고 억지스럽게 막장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너무 탄탄했다. 실제의 이야기처럼. 현실에 실제 있는 경우인 것처럼. 그런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만일 나였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섬세하면서도 세밀하게. 농도있게.

사실상 그러한 배우들의 연기가 드라마를 떠받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아니 그러한 배우들의 연기야 말로 드라마가 추구하는 바일 것이다. 드라마를 매우 정석적이라 하는 것도 그래서다. 배우들이 자신의 혼신을 다 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충실한다. 서로 갈등하고 상처입고 상처입히며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데 충실한다. 상황도 캐릭터도 관계도 그를 위한 것이다. 사람을 보여준다. 배우를 보여준다. 그 감정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드라마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다만 역시 예전에는 이런 과정들이 상당히 지루할 정도로 느리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꼬고, 멀리 돌아가고,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말한 것처럼 모두 직구다. 변화구가 없다. 서로 보이는 거리에서 직구를 던진다. 맞고 상처입고 비명을 지르고, 정작 던진 자신도 그 모습에 놀라 움츠러들고. 그 반응이 실시간으로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빠르게. 확실히 예전 드라마에 비해 최근의 드라마는 호흡이 빠르다. 최근의 드라마에 비해서도 드라마 <내사랑 내곁에>는 한참 호흡이 빠른 드라마다. 그러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안정되어 있다.

배우에 대한 아마도 제작진의 신뢰와 그런 제작진에 대한 배우 자신의 신뢰와 혼신의 연기. 막장으로 흐를 수 있는 것을 전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로 바꾸고 있다. 그만큼 캐릭터가 완벽하기 때문이다. 그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들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보는 내내 짜증이 나는 민폐캐릭터들. 봉선아의 동생 봉우동과 이소룡의 할머니 정말자, 그리고 고석빈의 동생 고수빈. 하지만 역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건들에 대해서도 짜증스러워하면서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그 동선을 따르게 된다. 어쩌면 악역보다도 더 악역같은, 밉지만 그래도 설득력 있는 매력적인 존재들. 드라마의 힘은 여기에까지 미치게 된다.

작위적이지만 적절한 설정이 서로를 얽어매며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빠름이 있다. 그러면서도 단단히 얽힌 가운데 마음 놓고 지켜볼 수 있다. 통통 튀며 살아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려는가. 설레면서도 기대하게 되고. 어느새 드라마에 설득당하게 된다. 이것은 현실의 이야기다. 실제의 이야기다. 실제의 캐릭터들의 실제 있는 이야기다. 마치 그 가운데 있는 듯.

어느새 영웅이가 다친 모습에 엄마 봉선아에게 탓을 돌리는 도미솔의 고단함과 그러나 말과는 달리 조윤정과의 인연에도 단호할 수 없는 고석빈의 고뇌, 그리고 아들로부터 거부당한 배정자의 충결과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조윤정의 상처. 강정혜는 마침내 자신이 버린 외손자를 찾으려는 듯하고, 이소룡은 미처 이어지지 않은 도미솔과의 관계가 아쉽다. 정말자의 무심함은 그의 아들을 상처입히고. 과연 봉우동과 이소정의 미래는 어떻게 이어질까. 봉선아와 고진국의 인연도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터다.

실제로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정리해 보면 그다지 없다. 있을 법한 이야기들. 어딘가에서 부딪혔을 법한 캐릭터들과 당연한 반응들. 그래서 손에 잡힐 듯 보이면서도 그러나 살아있는 이야기는 어디로 흐를 것인가 장담하기 힘들다. 흐름에 자신을 맡기면서. 그저 지켜본다. 함께 울고 웃으며 그리고 궁금해하고 기대한다. 드라마를 보는 재미일까? 참 그리운 느낌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정말 쉽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하는 드라마다. 누구 한 사람의 연기만 흐트러져도 마로 망가지는 것인데. 현실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도 드라마는 개연성을 잃게 된다. 과연 마지막까지 이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재미를 넘어 감탄하게 된다. 훌륭하다.

모바일에서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