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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26 07:33

TOP밴드 "100인 100색, 밴드음악은 밴드가 만드는 음악이다."

가슴 조이는 예능을 위한 실시간 전광판에 대해...

 
역시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게 <TOP밴드>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은 무리다. 아니 <TOP밴드>이기에 절대 무리일 것이다.

마냥 좋다. 그냥 좋다. 단지 밴드라는 이유만으로도. 어색하고 서툰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그래서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이 들려오는 것들에 대해서조차. 그것이 밴드다.

확실히 옥석을 나누는데 적절한 미션이였다고 생각한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명반의 음악을 연주하라. 그것은 곧 100대 명반 속의 명곡들을 어떻게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재생산하겠느냐는 밴드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좋은 연주자란 소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단순히 악보에 그려진대로 따라 그 소리를 재현하는 것만을 연주자라 하지는 않는다. 같은 악보를 단지 충실히 재현하고 있어도 좋은 연주자의 연주에는 그만의 개성이 묻어난다. 그리고 밴드란 그런 연주자들이 - 보컬 또한 목소리를 연주하는 연주자라 했을 때 - 모여 이룬 팀일 것이다. 어떤 소리를 만드는가. 그들의 소리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자작곡은 오히려 쉽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 잘하든 못하든, 서툴든 모자르든 그것으로 그들의 이야기라 하면 그대로 통한다. 극단적으로 단지 자기 음악에 취해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그의 세계로써 허용된다. 응석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음악일 때.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명곡이고 히트곡일 때. 바로 그것에 도전해 그 안에서 자기 소리를 찾고 더해서 들려준다는 것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음악을 알아야 하고 자기가 추구하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 음악 안에 있는 자신과 그리고 그 음악에 더하고자 하는 자신을 알아야 한다. 손자가 말하는 지피지기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기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떤 음악에 강점이 있는가.

기타에게도, 베이스에게도, 키보드에게도, 트럼본이나 섹스폰, 혹은 다른 악기파트에게도. 각자 자기가 추구하는 소리가 있고, 그이기에 가능한 소리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모여서 하나의 음악이 된다. 그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밴드음악을 만든다. 그들 팀은 어떻게 100대명반이라는 훌륭한 재료를 가지고 각자의 소리를 더해 조화를 이루어내는가.

자기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하며 남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자기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제대로 하나 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소리를 낼 수 있는가? 옆의 동료는, 친구는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소리를 내려 할 것인가? 그렇다고 자기가 내려는 소리의 색깔을 잃지 않는 것. 자기의 개성도 놓지 않으면서 다른 이의 개성을 함께 살린다. 밴드의 조화는 그렇게 서로가 다른 소리를 내는 조화다. 그것이 되고서야 비로소 밴드라 할 수 있다.

어느 한 개인의 특별한 재능에 의해서가 아니다. 물론 많은 밴드에서 주로 곡을 쓰고 편곡을 맡으며 음악을 주도하는 멤버가 한 사람씩은 반드시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가 만든 음악에 밴드만의 색깔을 덧칠하는 것은 다름아닌 멤버들이다. 그래서 밴드음악을 밴드에 의해 생산되어지는 음악라 말한다. 곡을 쓰고 악보를 그리는 것은 어느 개인의 몫이더라도 그 악보를 가지고 밴드음악으로서 완성하는 것은 밴드 개개인, 모두의 몫이다.

그래서 밴드 가운데는 단지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 바뀌었을 뿐인데 편곡이며 사운드가 전혀 달라지는 경우도 적잖이 찾아 볼 수 있다. 단지 주어진 악보대로 따라 연주하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라면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한 가지 개성이 사라지고 새로이 한 가지 개성이 더해지면서 전혀 다른 사운드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존재가 밴드 전체를 정의하기도 하고 바꾸기도 한다. 어느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밴드를 이루고 있는 모두가 밴드의 주체이며 주인공이다. 조금 더 앞으로 나서거나 조금 더 뒤로 물러나는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그 가운데 누구 한 사람만 빠져도 음악은 완성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섣불리 더해져도 오히려 조화를 해칠 뿐이다. 딱 그 만큼만. 바로 우리들이기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밴드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은 밴드로써 완성된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그 조화가 무너지면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실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1차 예선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고서도 정작 2차예선에 와서는 지리멸렬하고 말았던 신가람 밴드가 그런 경우다. 전혀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고교생밴드 Refresh의 경우는 기본기의 부족이 그들이 연습하던 음악이 아닌 음악에서 노출되고 말았다. 반면 라이밴드의 경우는 단점마저 장점으로 승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알마나 조화를 이루고 밴드로써 시너지를 일으키는가.

그것을 듣기에 100대명반의 명곡이란 훌륭한 과제가 아니었겠는가. 버거울 정도로 좋은 노래에, 더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음악, 그리고 자신들의 음악이 아니다. 결국 거기에서 탄탄한 팀웍을 갖춘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은 갈리고 말았다. 훌륭하게 기본기를 쌓았거나, 서로에 대한 신뢰와 자신에 대한 색깔이 분명했거나.

이것은 편곡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편곡이란 어느 한 개인이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밴드가 연주하고 부르는 것이다. 밴드에 의해 생산되어지는 밴드음악이다. 누가 처음 주도했든 결국에 소리 하나 파트 하나가 더해지며 이루어지는 앙상블. 때로 끔찍한 불협화음이 되더라도.

그렇게 완성도를 떠나 각 밴드가 들려주는 10인 10색, 100인 100색의 독특한 개성들은 듣는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이런 것이 밴드음악이다. 밴드가 만들어가는 음악이다. 그 개성들만으로도 너무 대단하고 다양해서 단지 좋구나 이상은 말을 못하겠다. 좋은 음악과 더 좋은 음악과. 더구나 사이사이 원곡자의 조언이 더해지며 더욱 듣는 귀를 집중케 한다. 그것이 그들의 색이므로.

하여튼 정말이지 이제까지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오디션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2차예선에서 이미 절대평가에 심지어 실시간 경주까지. 5사람의 심사위원과 10명의 전문음악심사위원단이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가 실시간으로 전광판에 표시된다. 1위부터 24위까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생존자의 이름이 실시간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팀이 나오면 이내 높은 점수와 함께 상위에 랭크되고, 그러면 그런 만큼 또 한 팀은 떠밀려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24위 안에 남은 사람들은 그래도 희망을 안고, 24명 안에 들지 못한 팀들은 포기하고 떠나가고. 더구나 후반 시크와 진수성찬이 연달아 2위자리를 다투더니면, 마지막 순서로 바로 이어 출전한 POE와 업댓브라운에서는 계속해서 1위를 고수하던 제아파워밴드를 밀어내고 1위 자리를 갈아치우는 놀라운 드라마마저 만들고 있었다. 설마 거기에서 POE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팀이 나올 줄이야. 그것도 마지막 밴드에서.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될 지. 어떤 팀들이 나오고 어떤 점수를 얻고 그 가운데 누가 살아남을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그것이 실시간으로 보여진다는 점이 긴장을 높인다. 지금 남아 있는 24명 가운데서도 누군가는 떨어지리라.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는 출전자들과. 다시 희망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는 팀들과. 무대마저 너무 아름다워서. 아마 역대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을 것이다.

아쉽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율도 화제성도 낮은 밴드음악의 불모지라는 현실이랄까? 축제로 즐기기에는 너무 관심들이 없다. 이렇게나 재미있는데. 각 팀마다 전혀 다른 자기만의 색깔로 들려주는 음악이 좋고, 그리고 그런 팀들이 경쟁하는 피말리는 시스템이 좋고, 전통이 어우러진 무대는 심사위원마저 무대에 서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 같으니.

아무튼 팬이 될 것 같다. 특히 POE라는 팀. 그런 독특한 색깔의 음악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부르는데 원곡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원곡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POE라는 팀의 개성이 강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리메이크한 리카밴드 역시 원곡을 잊게 만드는 강렬한 개성과 또한 무대위에서 노래부르는 목소리와 전혀 다른 목소리의 반전이 흥미로웠다. 이런 좋은 밴드들이 묻혀 있었다니. 조금 더 열심히 밴드음악을 찾아들어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김종진의 말처럼,

"이런 밴드가 있음을 소개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보컬 없이 오로지 연주만으로 심사위원을 기쁘게 한 제이파워밴드 역시도. 보컬이 없이도 밴드는 아름다울 수 있다. 밴드가 있다면 가사가 실려 더 아름다워질 테지만 그러나 단지 멜로디와 비트와 연주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음악이 아닌가. 어깨를 들썩이며 귀는 TV로 쏠리고 있었다.

시간이 가는 걸 잊었다. 잊은 정도가 아니라 어느새 다운로드 받아 한 번 더 보고 있었다. 또 볼 것이다. 내가 놓친 것은 무언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은 또 무엇이 있는가?

김종진의 말처럼 이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우드스탁인지도 모르겠다. 90년대 초 쇠락해가는 록씬의 불씨를 지피고자 모였던 "Rock in Korea"프로젝트의 재현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방송사의 상업적 의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지극히 자본주의스럽지만. 원래 밴드음악이란 가장 자본주의적인 것이다. 강렬한 자기주장과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조화. 자기주장이 없어도, 멤버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도 밴드는 성립할 수 없다.

한 편으로는 제발 좋은 사람만 아는 그런 좋은 프로그램으로 남기를. 괜한 구설수로 출전자들이 상처입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면. 밴드의 저변이 넓어지고 지금 나온 밴드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출전자격에 대해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사실 음반이라는 건 필자도 지금 당장도 낼 수 있다. 배운지 오래되기는 했지만 몇 가지 프로그램을 필자도 쓸 줄 안다. 적당히 사운드 편집하고 노래 붙여서 음반을 발매하면 필자도 프로가 되는 것일까? 그러면 음반 없이 라이브무대에서만 활동했다면? 어차피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말 그대로 인디밴드다. 자기들이 알아서 기획도 하고 곡도 쓰고 프로듀싱도 하고 음반도 내는. 프로여부가 필요할까?

연습부족이라는 밴드들에 대해서도, 정작 음반도 내고 이름도 제법 알려진 밴드인데도 생계문제로 연습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들어 알고 있는 터라. 프로가 이미 기회를 누린 기득권이기에 오디션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면 밴드의 현실이란 그럴 수 있는 밴드가 그다지 없다. 그런데 단지 음반을 내고 한 것으로 프로여부를 따지며 출잔전자격을 이야기하다니.

다른 오디션과는 다르다. 다른 오디션은 스타를 꿈꾸고 배출하려 한다. 그러나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스타가 되려고 밴드를 하지는 않는다. 밴드를 하며 스타를 꿈꾸지도 않는다. 단지 음악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서로가 반갑고 기쁜 사람들이다. 그 열정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야말로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기뻤고 즐거웠고 황홍했으며 행복했다. 100대명반상의 명곡들과 전혀 새로운 감성의 연주와 노래들. 음악일 것이다. 열정일 것이다. 멋있었다.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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