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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25 07:13

기적의 오디션 "연기오디션이 성공하기 쉽지 않은 이유"

공채탤런트선발의 추억을 떠올리다...

 
처음 SBS의 새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의 컨셉을 들었을 때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었다. 굳이 이것을 <기적의 오디션>이라 이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것도 리네임의 일종인가?

아마 마지막이 2004년 MBC의 공채 31기였을 것이다. 그나마 MBC가 가장 마지막이었고, KBS와 SBS는 그 전해 전통이 끊기고 말았다. 대한민국 스타연기자의 산실이었던 공채탤런트의 전통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바로 거대기획사 출신 연기자들.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었다. 1961년 처음으로 KBS TV방송국이 개국하면서 이듬해 1962년 TV드라마에 출연할 전속연기자를 선발하기 위한 첫공채탤런트 시험이 있었고, 이때 지금도 국민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혜자, 오현경, 정혜선, 박병호, 그리고 얼마전 별세한 박주아씨 등 많은 연기자들이 연기인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이듬해 TBC에서도 이순재와 윤소정이라는 공채 1기를 배출하고 있었고, 이보다 한참 늦게 1969년 MBC 역시 김애경, 임현식, 조경환, 박은수 등을 공채 1기로 채용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탤런트라는 이름의 TV전문배우 오디션이었다.

당시 오디션 모습을 TV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딱 <기적의 오디션> 그대로였다. 아니 오디션이라는 게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앞에는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고, 지망자는 그 앞에 나와 자기가 준비한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심사위원들은 그 실력과 가능성을 보고 합격여부를 결정해 통보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은 소수가 공채탤런트가 되어 방송국 소속으로 단역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자기 이름을 대중들에 알리게 된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아마 그것이 <기적의 오디션>이 공채탤런트 선발이 아닌 오디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공채탤런트란 반드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즉시전력감을 뽑는 자리는 아니었다. 공채탤런트로 선발되었다고 <기적의 오디션>에서처럼 막대한 상금에 CF와 드라마 주연자리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었다. 공채탤런트가 되고 나서도 오랜 수련기간이 필요했다. 선배로부터 배우고, 작은 배역에서부터 현장에서 배우고,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비로소 기회가 주어졌다. 아마 <기적의 오디션>에서도 당장 합격자를 뽑고 기회는 주겠지만 SBS 자체로 이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양성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각 방송사 탤런트실이라는 막강한 인적커넥션 아래에서, 방송국이 제작하는 드라마에 우선적으로 출연할 수 있는 기회까지, 아직 연기력이나 여러가지가 크게 미치지 못해도 소속탤런트로써 기다려주는 아량도 있었다. 공채탤런트가 되고 한참이 지나서도 단역이나마 기회를 주고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은 지금은 없는 것이다. 어차피 기획사를 통해 데뷔한 배우들이 드라마까지 장악하고 있는 지금, 외주제작이 늘어나며 방송국의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은 지금에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방송국으로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오디션이며, 예능의 일환으로써 일회성으로 소모되려 한다.

어쩐지 과거의 공채탤런트가 생각나 반가우면서도, 더 이상 공채탤런트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음을 확인한 씁쓸한 자리였다고나 할까? 공채란 딱 기획사와 계약을 맺는 그 순간까지다. 그 이후로는 방송국 입장에서도 단지 자사의 오디션프로그램 출신이라는 이상의 의리도 책임도 없다. 그나마 같은 오디션 출신이면 인적 연계라도 이루어질까?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흥미를 가지고 SBS의 이제까지 없었던 연기자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래서 내린 결론이란 어째서 세계적으로도 음악 오디션에 비해 연기 오디션 포맷으로 성공한 사례가 드문가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이래서 연기 오디션이 음악 오디션처럼 성공하기 힘들다.

간단한 예다. 이를테면 <위대한 탄생>에서 한 참가자가 부활의 "소나기"를 부른다. 다 부를 필요가 없다. 단지 하이라이트만 짧게 불러도 그것으로 그 노래가 주는 감동은 그대로 전할 수 있다. 잘한다, 못한다, 그 이전에 사람들은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최소 한 회 분량이 70분이 넘어가는 드라마에서 단 한 장면을 연기해 보여준다면 거기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노래에도 기승전결이 있다. 하나의 노래는 하나의 드라마다. 노래의 경우도 만일 누군가 하이라이트의 한 마디나 두 마디 정도 부르고 만다면 도저히 아무 느낌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괜한 샤우트를 하고, 아주 감동적으로 애드리브를 넣고, 하지만 그것이 앞뒤맥락 없이 나오게 되면 청자는 단지 당황스러울 뿐이다. 왜 저러고 있는가. 아무리 멋진 샤우트이고 아름다운 애드리브라도 유기적 서사를 잃게 되면 그저 의미없는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대사 한 마디 몸짓 하나가 그렇다.

그나마 멋지기라도 하면 좋은데. 그 한 장면만으로도 소름끼치도록 전율이 오고 감동할 수 있다면. 하지만 단지 한 꼭지의 연기를 보고 감동하려면 보통 재능과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음악오디션에서도 감동을 높이기 위해 개인의 서사를 동원한다. 하물며 서사 없이 단지 연기력으로만. 과연 그 연기력을 판단할 수 있는 전문적 안목을 가진 시청자는 몇이나 될까? 아직 서툰 아마추어의 연기에 전혀 이어지지 않고 홀로 떨어져 존재하는 짧은 서사에서 어떤 재미나 감동, 그 이전에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오디션이라고 하는 형식. 도전자가 있고 그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이 있고. 확실히 덕분에 <기적의 오디션>에 대해서는 심사위원에 대한 호평이 많다. 비로소 오디션이라고 하는 형식 자체에 집중한 탓이다. 그러나 <슈퍼스타K>든 <위대한 탄생>이든, 그 원조격인 <브리티시 갓 탤런트>나 <아메리칸 아이돌>이든 단지 도전자와 심사위원이라는 포맷에 의해서만 재미와 감동을 얻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청자 자신이 심사위원이 되어 도전자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 내용이 재미가 없으면 재미도 감동도 없는 것이다.

딱 필자일 것이다. 물론 과연 <기적의 오디션>이 성공할 것인가? 모른다. 어쩌면 유독 <기적의 오디션>만은 연기 오디션으로써 드문 성공사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화제를 모으는데도 성공했고 그다지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앞뒷 맥락이 배제된 꼭지연기에 대해 오히려 위화감을 느끼며 불편해하는 대중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적의 오디션>에 대한 또다른 평가 '오글거린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관건이라고나 할까? 아마 그런 점에서 보다 오디션이 본격화되면서 도전자 개인에게 보다 많은 시간과 기회가 할애되었을 때가 승부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사가 배제된 예선에서의 꼭지연기가 서사 속에서 이야기를 가지고 완성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혹은 꽁트를 자기들끼리 구성해 보라 할 수도 있을 테고, 하나의 장면을 가지고 애드리브를 넣어 팀별로 완성해보라 할 수도 있을 테고. 모노드라마는... 과연 소화할 역량이 되려는가.

어쨌거나 그래도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아무리 오디션에서 합격했다지만 바로 주연배우. 차라리 오디션에서 합격하고 나서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하면 어떨까? 아니 오디션 합격자를 여럿 뽑아서 단역부터 일정 기간을 두고 그들이 주연을 따내기까지 진정한 리얼리티 서바이벌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중이라는 냉정한 심사위원 속에 단역부터 시작해서 연기를 검증받고 스타성을 검증받고 그래서 마침내 주연을 따내고 대중앞에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을 내보인다. 바로 주연이라는 것은 너무 쉽고 빠르지 않은가. 진정한 배우를 걸러내는 오디션일까?

기대 이전에 취향이 아니라는 것이 가장 아쉽다. 이야기 없는 단순한 꼭지 연기로, 더구나 시청자를 끌어들이기에는 턱없는 부족한 연기를 지켜본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다. 그것을 재미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필자로서는 무리다.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까?

오디션 전성시대에 단지 숟가락 하나 얹고 끝내려는가, 또 하나의 주류를 만들어내려는가. 판단은 결국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 내려지리라. 필자와는 상관없이. 그것은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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