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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9.27 09:03

[TV줌인] 주군의 태양, "반전에 반전, 차희주가 돌아온 까닭"

태공실과 차희주의 이유, 차라리 미워하도록 하겠다!

▲ 주군의 태양 포스터 (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오로지 인간만이 자아를 갖는다. 존재로써 '나'를 인식한다. 유일하며 독립된 존재로써 '나'를 인식하고 끊임없이 확인하려 한다. 사랑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미움의 대상이 되겠다. 차희주로써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차희주로써 증오의 대상이 되겠다. 

태공실(공효진 분)과 차희주(황선희 분)가 비로소 서로 마주보고 선다. 서로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초라해지기 싫어 차라리 떠나고자 하는 태공실과, 자신이 아닌 차희주와 사랑에 빠진 주중원의 모습에 차라리 미움받고자 죄를 저지르고 마는 차희주와. 차라리 차희주가 아닌 한나였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주중원이 사랑한 것이 자신을 대신한 차희주가 아닌 한나 자신이었다면 그녀는 어쩌면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차희주는 죽는 거야, 아니면 난 주중원을 죽일 거야! 제발 네가 차희주로 죽어줘!"

주중원을 납치한 것은 차희주여야 했다. 주중원을 납치하여 잊지 못하도록 불길한 내용의 책들을 읽도록 만들고, 더구나 납치의 불안과 공포에 짓눌려 있던 주중원의 앞에 나타나 차희주의 모습으로 평생 기억하게 될 배신의 상처를 새겨넣었다. 이제 차희주만 죽으면 영원하 주중원은 차희주가 죽던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차희주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과 저주를 차희주의 이름과 함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차희주가 돌아온 이유였다. 차희주가 굳이 주중원의 아버지에게서 목걸이를 받아간 이유이기도 했다. 흔적이었다. 서명이었다. 자신이 그랬다고 하는 증명이었다. 아무도 자신이 차희주임을 알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한나의 인생을 훔쳐 대신 살고 있음을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고독하다. 한나로써 대신 살아가며 누리는 풍요와 안락보다 자신의 행위가 철저히 잊혀지고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못견디게 만든다. 나는 이렇게 대단한데. 내가 이렇게 놀랍고 대단한 일들을 저질렀었는데.

잊었다는 사실보다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화가 난다. 자신의 뻔한 거짓말에 너무 쉽게 속아넘어간다. 깨닫게 해주고 싶다. 나중에라도 모든 사실을 알고 후회하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무엇보다 인정받고 싶다. 그것이 나였다. 당시 주중원의 앞에 있던 것은 다름아닌 차희주 자신이었다. 주중원을 농락하고,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지금껏 고통속에 차희주라는 이름을 저주하게 만든 그것이 모두 자신이 한 일이었다. 조롱한다. 비웃는다. 얼마나 바보인가. 얼마나 한심한가. 죽은 것은 차희주라는 이름으로 주중원이 사랑했던 한나였다. 주중원을 사랑했던 한나였다. 그것을 아직도 주중원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을 쫓아 공항에 나타난 주중원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하게 당시의 사실들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게임이었다. 알아차린다면 그것으로 자신은 다시 한 번 주중원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주중원을 비웃으며 주중원을 농락한 자신에게 다시금 만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째서 그녀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될 목걸이를 자신을 대신해 차희주가 되어 버린 한나의 납골묘에 남겨두고 온 것일까? 누군가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불러주기를. 차희주를.

뒤틀린 자아였다. 열등감에 짓눌려 형체를 잃어버린 자존이었을 것이다. 주중원은 차희주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차희주가 아니다. 차희주를 사랑하는데 정작 차희주인 자신을 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더욱 깊숙이 자신을 숨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랑을 받기보다 숨어서 대신해서 증오를 받기를 바란다. 모든 진실이 밝혀졌으니 차라리 후련하다. 경찰에 체포되고도 차희주는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한나는 자신의 동생이었다.

차희주의 이름을 기억해달라. 결국은 그 말이 열쇠였던 셈이다. 차희주를 죽이고 차희주라는 이름을 저주하게끔 만들고서 영국으로 돌아온 차희주는 다시 만난 외사촌 김귀도(최정우 분)에게 그렇게 윽박지르고 있었다. 모든 행동의 원인이었다. 모든 행위의 동기였다. 차희주를 죽게 만든 것도. 주중원을 납치한 것도. 다시 돌아온 것도. 돌아와서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도.

다만 차희주에 비해 태공실은 자존심이 강하다. 그런 자신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추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태공실과 주중원은 너무 다르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더 초라해지기 전에 주중원의 곁을 떠나려 한다. 주중원은 괜찮을지 몰라도 태공실 자신이 불편하다. 비틀린 것을 펴고 억눌린 것을 바로잡는다. 차라리 떠난다.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비루한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기는 싫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진실을 외면한다.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주중원이 글자를 읽지 못하던 이유다. 귀신이 주중원의 곁에 가면 형체를 잃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중원 자신이 허깨비다. 실체가 없는 세계를 산다. 진실을 외면한 채 편리한 대로 믿고 쉽게 여기고 살아간다. 그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중원은 태공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었다. 태공실이 떠나려 한다. 그런 태공실은 주중원은 여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다.

태공실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 태공실이 의식을 잃고 있던 3년 동안 그 남자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라면 특별해지지 않을 수 있다. 자신과 주의를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태공실이 생각하는 존엄이란 평범함이다. 남들처럼 밤에 잘 수 있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주위에 폐 끼치지도 않는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적인 모습들일 것이다. 주중원의 곁에 있으면 자꾸 특별해지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 자신도 평범해질 수 있다. 간절항 소망이다.

결국 태공실이나 차희주나 만족을 얻는 대신 후회를 남기고 만다. 자존을 지키는 대신 후회와 미련을 넘기고 만다. 여전히 태공실은 주중원을 사랑한다. 차희주가 바란 것도 주중원의 사랑이었다. 차희주는 그것을 영원히 잃었다. 태공실도 이제 그것을 놓아버리려 하고 있다. 주중원은 차희주에 대해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혜택받는 삶을 살아온 이의 무심함일 것이다. 차희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다. 태공실은 어떨까? 공은 주중원에게로 넘어간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태공실에게 자존이란 지켜야 할 전부이지만, 주중원에게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선택은 더 여유있는 쪽에서 해야 한다.

강우(서인국 분)의 사랑이 끝나간다. 단 한 번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간절히 기다려왔건만. 그런 강우를 보는 태이령(김유리 분)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흐른다. 이름을 불리고 싶다.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고 싶다. 일관된 주제다.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고민일 것이다.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다.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서 사랑하면서도 헤어진다. 어쩌면 차희주의 비극이다. 차희주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한나의 삶 따위가 아니었기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 강우와 태이령은 어떨까?

아무튼 반전에 또 반전이었을 것이다. 주중원을 납치한 것이 차희주였다. 그런데 그 차희주와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차희주가 있었다. 차희주의 쌍동이 언니 한나 브라운이었다. 한나 브라운이 주중원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한나 브라운이 차희주를 언니라 부른다. 한나 브라운이 아닌 차희주였다. 주중원이 사랑한 차희주 역시 한나 브라운이었다. 주중원은 차희주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아예 차희주의 존재도 몰랐다. 죽은 것은 차희주가 아니었다. 신출귀몰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바뀌며 진실 또한 끊임없이 뒤바뀐다. 주중원 역시 믿음이 아닌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진실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다짐과 각오가 필요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기에 떠나보낸다. 거짓말이다. 차라리 미움받는다. 그렇게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고 싶다. 떠나고자 하는 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은 함께 하는 것이다. 선택은 정해져 있다. 이제 주중원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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