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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8.29 07:47

[TV줌인] 주군의 태양 "스토리보다 메시지, 단조롭고 지루하다"

더 늦지 않기 위해, 주중원 태공실에 솔직한 감정을 전하다

▲ 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국방부 홍보영화에도 스타배우들이 적잖이 출연한다. 하기는 국방의 의무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고,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은 유명배우들에게 있어 그 또한 군대에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일 테니 말이다. 전문감독과 스태프, 그리고 국방부라는 든든한 스폰서, 수요시장 역시 확실하다. 그러나 역시 아무리 유명한 배우를 데려다 찍었어도 국방부 홍보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다.

정부나 특정한 기관이 대중을 계몽하기 위해 만든 홍보영상물이 재미가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재미란 스토리에서 나온다. 스토리란 캐릭터와 사건, 배경에 의해 정의된다. 그런데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제작된 영상들은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메시지 주제다. 물론 기타 다른 창작물에도 작가가 의도한 주제라는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나 재미를 전제로 비평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후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완성도에서나 재미에서 만족하지 못했을 때 주제는 그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러나 명백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창작물의 경우는 다르다. 창작물 자체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트레일러이며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한다. 캐릭터도, 배경도, 사건도, 작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오로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강하게 선명하게 대상에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를 통해 생산되는 스토리 역시 천편일률적인 단순한 내용이기 쉽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어떤 대상에게 전하는가 하는 것이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나 재미보다 메신저로서의 기능적 역할이 더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이다.

주제는 좋다. 전근대의 유산일 것이다.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다. 사회를 이루는 독립된 단위로서가 아닌 보호자에 종속된 객체로써만 존재한다. 즉 아이에 대해서는 보호자가 전적으로 책임지며 또한 전적으로 모든 권리를 가지게 된다. 때리든 욕하든 굶기든 그것은 전적으로 보호자의 권리 아래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의 일에 사회가 함부로 나서서는 안된다. 물론 옛날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도 그같은 인식이 사회 전반에 강하게 남아 있다. 내 아이를 내가 어떻게 한다는데, 자기 아이를 자기가 어떻게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누구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죽어간 아이들이다. 추위에 떨면서, 혹은 굶주림에 지쳐서, 폭력으로 인한 공포와 고통에 신음하다가. 외로운 죽음 앞에 눈물을 흘려주는 이조차 없었다. 그들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는 이마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외로운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려 했다. 서로를 위로하려. 서로를 보듬으려. 서로를 기억하려. 비록 세상에서는 잊혀진 아이들이지만 인형 안에서 그들은 서로를 기억했고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과연 누가 아이의 영혼을 끌어들이는 그같은 공포스런 인형을 만들었는가.

하지만 이야기는 재미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직선적이다. 그나마 초반 인형속 아이들과 어울리다가 태공실(공효진 분)과 같은 고시텔에 살고 있는 형제 가운데 동생인 이승준(홍은택 분)이 체온이 싸늘하게 식으며 이상하게 되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긴장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놀이터에 버려져 있던 낡은 인형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고 그것이 이승준을 유혹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형이 태공실에게로 넘어가고 다시 너무나 전형적인 아동학대 부모가 나타나면서 드라마는 단지 아동학대에 대한 캠페인 동영상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역시나 너무나 전형적인 학대당하는 아이의 그림에 태공실은 주저없이 아이의 집으로 찾아가 몸싸움 끝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고, 그리고 이어 주중원(소지섭 분)마저 아이의 그림을 보고는 바로 태공실의 뒤를 쫓아 아파트로 달려가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향한다. 아이 어머니의 신고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상황에조차 비서실장인 김귀도(최정우 분)에 의해 만화같이 너무나 쉽게 해결되고 만다. 연설은 필수다.

물론 필요하기는 했다. 주중원이 솔직해져야 했다. 더 이상 주변만 맴돌아서는 안되었다. 강우(서인국 분)가 적극적으로 태공실에게 다가서려 하고 있었다. 이 이상 태공실을 방치한다면 다시 주중원에게 돌아올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고마워한다. 사랑한다기보다는 그런 자신에게 호감을 가져주는 자체를 매우 고마워하고 있었다.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절박함과 절대 이와 같은 행운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의무감이 그녀를 강하게 떠밀고 있었다. 태공실이 좋아하는 것은 주중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시작이어야 한다.

사실 태공실과 강우가 서로 이어지기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았다. 가장 먼저 태공실이 자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강우에게 숨기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강우를 만날 때마다 강우를 속인 데 대한 죄책감과 함께 강우를 위해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자기비하의 모멸적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안된다. 강우와 함께 있기 위해서는 태공실은 태공실이어서는 안된다. 태공실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연기해야 한다. 강우는 그런 또다른 태공실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기만이다. 태공실이 가장 솔직해 질 수 있는 것은 주중원의 곁이었다.

그러나 자기를 부정하고 비하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그래서 강우의 관심도 감사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감히 자신이 주중원에게. 설마 주중원이 자기에게. 주중원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주중원이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계기로는 물론 너무 약하다. 하지만 원래 주중원의 내면에 그같은 선량함이 있었고, 그것을 애써 감추고 있던 주중원의 마음의 벽이 태공실에 의해 약해진 상태에서 아이의 그림을 통해 일깨울 수 있게 되었다면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 솔직해진다. 자신은 태공실을 좋아하고 있다. 태공실도 솔직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나마 드라마적 긴장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비서실장에게 부탁해서 받아놓은 차희주와 당시 사라진 목걸이의 사진을 강우가 무심코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주중원을 납치한 범인이 다시 주중원에게 접근할 것이라 여기고 주중원의 아버지가 붙여놓은 감시인이었을 것이다. 태공실의 책상서랍에 있을만한 사진이 아니었다. 더구나 강우는 그 순간 질투하고 있었다. 태공실이 바라보는 주중원에게, 그리고 주중원을 바라보고 있는 태공실에게.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태이령(김유리 분)에게도 역할이 주어질지도 모르겠다. 도석철(이종원 분)의 얄팍한 음모가 주중원을 감싸고 있다.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순간 시련은 함께 찾아온다. 드라마다.

아무튼 무거운 주제를 다루려 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주제가 너무 강한 나머지 드라마를 잡아먹는다. 다른 가능성이 모두 배제된 채 너무나 뻔하고 단순한 이야기로 흐를지 모른다. 주중원의 캐릭터도 태공실의 캐릭터도 사라진다. 태공실은 조금 더 하찮아지는 쪽이 좋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먼저 풀려나 나가려는 주중원의 손목을 애처롭게 붙잡고 있던 태공실이 더 사랑스럽고 어울린다. 너무 용감했다. 너무 강했다. 주중원도 너무 물렀다. 설교도 물론 너무 길었다.

어려울 것이다. 귀신과 현실의 사랑 이야기를 조화시킨다. 과거의 범죄에 대한 스릴러와 현재의 유쾌한 사랑을 적절히 버무린다. 도석철의 음모는 적당히 흥미를 자극할 정도에서 선을 지키고 있다.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귀신의 이야기는 너무 무겁고 사랑은 또한 너무 가볍다. 사랑보다는 사람이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듯 끌려간다. 스릴러는 아직 실체가 드러나 있지 않다. 강우는 조금 더 무겁고 강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매력있다. 아쉽다. 더 재미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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