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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10 08:00

최고의 사랑 "소년 윤필주, 남자가 되다!"

탑속에 갇힌 야수 독고진...

 
강세리(유인나 분)가 악역인 이유가 있었다. 악역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악인 것.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악을 일깨우는 것.

윤필주(윤계상 분)는 애써 마음을 정리하려 하고 있었다. 일생의 가장 큰 반항이라던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퍼즐조각을 맞추면서,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자기를 지키고자 애써 구애정(공효진 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강세리가 그 앞에 나타났다.

"정리요? 그쪽은 그게 그렇게 잘 돼요? 거짓말! 나와 같다면서요? 윤필주씨도 속 뒤집어진다고 했었잖아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 나처럼 바보같고 망가진 모습 보이기 싫으니까."

윤필주가 끝까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 순간 강세리에게 휴지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세리를 인정한 것이다. 강세리가 진심임을 알기에 차마 더 이상 그녀에게 기대하게 하고 싶지 않다. 때로는 잔인한 것도 배려가 될 수 있다. 솔직하게 자기를 내보이며 홀로 슬픔을 삭이는 강세리는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윤필주는 차 안에서 홀로 자기가 맞춘 퍼즐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다 정리했는데... 하나하나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비로소 묻어두고 있던 구애정에 대한 간절함이 깨어난다. 구애정과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쉬움과 미련을, 무엇보다 아릿한 아픔과 그래도 그녀를 원한다는 절실함을 일깨운다.

"하나도 정리가 안 됐네."

그렇게 쉽게 정리가 된다면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을 테지. 구애정이 사과를 하려 윤필주를 찾아갔을 때 그녀의 과일바구니를 뒤집고, 바나나를 짓밟고, 구애정의 다리마저 걸어버린 것은 단순한 우연만이 아닌 무의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을 찾는다는 핑계로. 그 조각은 결국 구애정이었다는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화를 내고 싶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조차 패대기를 치겠다며 조심스럽게 과일을 쏟아 놓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조 자기를 지키고 싶은 에고였을 것이다. 그렇게 갑옷을 두르고 좋은 사람인 것처럼 자기마저 속이려 했었는데...

"이미 시작된 방송은 이렇게 패대기치지 말고 차근차근 하나씩 주워 담아서 마무리 해요. 모양새 좋게."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단지 자기를 지키려 자기마저 속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강세리의 진심이 담긴 눈물이 일깨우고 만 것이었다. 강세리의 악다구니를 들으며, 그녀의 눈물을 보면서, 그녀와 자신이 다르지 않음을. 그녀의 말처럼 자신 또한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고 만 것이었다.

"네, 당신 심장에 대해서 구애정씨는 잘 모르고 있죠? 확실하게 얘기해 주세요. 당신, 죽을 수도 있는 겁니까?"

비로소 독고진(차승원 분)을 바라보는 윤필주의 눈빛이 비슷해졌다. 지독스럴 정도로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독고진의 눈빛과 닮아 있다. 과연 그가 독고진을 찾아간 것이 순수하게 구애정만을 걱정해서일까? 아니면 그것을 기회로 독고진으로부터 구애정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일까?

어느새 어리기만 한 소년의 모습에서 한 사람의 남자로 성장해가는 윤필주의 모습이 뿌듯하기까지 하다. 순수한 소년이 나쁜 남자로 자라난다. 남자는 원래 나쁜 것이다. 나쁜 남자이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와 자기의 것을 지킨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바란다고 내어주려다가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윤계상이 매력있다.

그리고 문득 귀에 들어오는 대사,

"공주가 되기에는 바디가 너무 짐승 아니에요? 야수다, 야수. 감자 키우는 탑속의 야수."
"높은 탑에서 세상 내려다 보면서 오만 잘난 척 다 하며 살다가 바닥으로 내려오게 될 거에요."

장 마리 르프랭스 드 보몽, 보몽부인이 18세기에 쓴 동화 "미녀와 야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더 유명한 작품이다. 여기에서도 오만에 빠진 왕자는 마녀의 저주를 받아 야수의 모습이 되어 성에서 고독에 갇힌 채 살아가게 된다. 그런 야수가 되어 버린 왕자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린 것은 다름아닌 미녀의 사랑. 독고진은 탑속에 갇힌 라푼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구애정은 그것이 톱스타로써의 독고진의 허위가 아닌가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구애정도 그것을 안다. 비록 인간이 아닌 야수의 모습이지만 독고진에게는 그 야수의 모습이 더없이 어울린다는 것을. 인간으로서는 살아갈 수 없다. 한 번 야수가 되었다가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 야수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인간이 되어 버린 야수는 경멸의 대상이다. 그를 구속할수도 그것을 드러낼 수도 없다는 안타까움.

"걱정하지 마세요. 연장해달라고도 안 할 거고, 그리고 진심이라고 말해달라고도 안 할 거에요. 그냥 나 좋은 대로 즐길 거에요."

소풍을 가자면서도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고, 주유소에 들러서는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그리고는 엉뚱한 강세리로 오해를 받는다. 어디에도 갈 곳 없이 집으로 가려는 것을 거절당한 독고진의 손을 구애정이 잡아준다. 오해를 받고 상처를 입은 구애정의 손을 독고진이 잡아준다. 그렇게밖에는 사랑할 수 없다.

"아이, 즐겁게 해 주고 싶은데 갈 데가 집구석 말고는 없네."

구애정이 <섹션TV 연예통신>의 한 코너인 "스타데이트"의 리포터를 맡게 되었다는 말에 바로 인터뷰를 하겠다며 제작진에 전화를 넣은 것도 그런 까닭이다. 어찌되었든간에 데이트 하닌가. 사람들 보는 앞에 당당히 떡볶이도 먹고, 게임도 하고, 선물도 사줄 수 있다. 비록 방송이고 일이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히 함께 걸을 수 있다.

문득 그 장면에서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서태지의 비밀결혼을 떠올리고 만 것은 비단 필자 뿐이었을까? 어떻게 갓결혼한 어린 신부를 결혼했다는 사실마저 숨긴 채 집안에 가둬두어야만 했을까?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못했단다. 어디 나가서 서태지 - 아니 정현철의 아내라고 이야기도 못하고 다녔단다. 그녀의 과거는 그렇게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었다.

말한다. 어째서 거짓말을 했느냐? 어째서 그렇게 속이고 감출 수 있었느냐? 아내에게 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독고진이 구애정과의 사이를 언론에 공개해 보라.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다고 사람들에게 알려 보라. 독고진은 물론 구애정 역시 언론과 대중의 관심 속에 소모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추락하는 독고진을 구애정은 감당할 수 있을까? 추락을 경험하고서도 독고진은 여전히 구애정에 대해 전과 같을 수 있을까? 탑에 갇힌 공주. 탑에 갇힌 야수. 감자를 키우는. 윤필주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일반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

아무튼 6월 9일 <최고의 사랑> 12회의 베스트라면 역시 윤필주 앞에서 술에 취해 망가지는 연기를 해 보이려다가 그만 윤필주에게 들키고 마는 강세리일 것이다. 짐짓 연기를 하려 준비를 하고 있다가 윤필주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자 어슬렁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리고 마침 윤필주가 들어오고, 화들짝 자리로 돌아가 연기를 하려 해 보지만 그때는 이미 윤필주가 보고 난 다음. 유인나에게 딱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어떻게 해도 밉지 않은 사랑스런 아가씨다. 악역은 아직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저나 장실장은 마침내 한혜진으로 이름을 바꾸고 결혼해 살고 있는 한미나(배슬기 분)를 찾아내고 말았고, 과연 과거의 국보소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의 이야기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려는가? 역시나 작가(극본 홍정은, 홍미란)의 스포일러는 이번에도 존재한다.

"내가 구애정 안고 추락할까봐 걱정해 주는 거야? 떨어지지 않고 하늘나라 뚫고 올라갈 수도 있어!"

그것은 죽음을 암시하는 것일가? 구애정의 비상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살아서는 추문이고 죽으면 미담이다. 그렇다면 살아서도 미담으로 끝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진심이 되어 버린 윤필주와 독고진의 대결도 흥미롭다.

역시 조역이 재미있는 드라마가 재미있다. 어느새 남자가 되어 버린 윤필주가, 소녀가 되어 버린 강세리, 그리고 탑속에 갇힌 야수 독고진과 그 야수를 구하는 구애정. 결론이 난 듯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물고 물리는 이야기들이.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할 것 같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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