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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5.26 10:39

불후의 명곡2, "노래 잘하는 가수 이승철, 전설이 되다"

에일리가 이승철을 침범하고 울랄라세션이 시청자를 울리다.

▲ 사진출처='불후의명곡2' 방송캡처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무어라 적어야 할까? 이런 때 참으로 난감하다. 어떤 말을 어떻게 써야 이승철이라고 하는 한 가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말이란 그래서 참으로 졸렬하기도 하다. 글은 그보다 더 한심하다. 고작 몇 줄의 글로 이승철이라는 한 인간을 표현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된다."

결국 찾아낸 한 마디일 것이다. 한 번도 최고였던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그때 그는 또다른 불미스런 일로 대중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연배의 다른 가수들의 경우 흘러간 옛이름으로 불려지는 가운데 그를 포함한 몇몇만이 여전히 현역으로 당당히 대중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어지간한 대스타조차 한 번에 보내버릴 수 있는 최악의 이슈들 가운데서도 그가 여전히 스타로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바로 그 비결일 것이다. 이승철은 노래를 잘한다.

타고난 미성이었다. 듣는 이를 윽박지르거나 놀래키는 특별함보다는 듣기에 편한 세련된 평범함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후천적인 노력으로 그는 다양한 소리들을 낼 줄 안다. 거칠고 세고 편하고 부드러운 여러가지 다양한 색깔의 목소리를 통해 노래가 갖는 감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낼 줄 안다. 탄탄한 발성과 넓은 음역, 그리고 음악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까지, 그래서 이승철의 노래는 쉽다. 결코 쉽지 않은 노래들이건만 이승철이 부르면 너무나 쉽게 들린다. 그래서 더욱 듣기에 편하기도 하다. 이승철의 노래만 들을 수 있으면 다른 것은 모두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승철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모든 일들을 잊을 수 있다. 오로지 음악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그의 지금을 있게 만들었다.

이제는 대가로서의 아우라까지 느껴지고 있을 것이다. 젊은 날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가고 인격적으로도 한층 원숙해져 있다. 여유가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그를 지탱해 온 것은 다름아닌 음악, 그리고 오로지 이승철만이 가능한 그의 노래였을 것이다.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된다. 그것도 아주 노래를 잘한다면 대중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찾을 것이고, 음악과 자신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주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또한 재능이고 실력일 테지만 말이다. 그도 어느새 한국 대중음악계의 원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전설이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문명진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소울의 진수를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별다른 기교 없이 간결하게 부르고 있는데도 오히려 더 묵직한 감동을 받고 마는 것은 그 소리가 나오는 깊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저 깊은 심연에서 끌어올려진 듯한 슬픔의 감정은 노래보다도 더 슬프다. 그러면서도 철저히 절제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점일 것이다. 천순서만 아니었다면 제법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허각의 '서쪽하늘'은 울랄라세션과의 인연을 통해 더 특별한 의미를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허각의 감정표현은 이미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하나하나 곱씹듯 노래가 갖는 의미를 되짚어 충실히 자신의 감정으로 살려낸다. 노래가 갖는 섬세한 감정의 선이 허각의 감정과 어우러져 하나의 감동으로 전해진다. '서쪽하늘'은 필자가 그다지 좋아한 노래가 아니었음에도. 하필 전설석에 앉은 가수가 다름아닌 오디션 시절 그의 심사위원이었던 이승철이었다.

영지가 부른 '마지막 콘서트'는 이승철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노래였다. 영지의 노래였다. 영지의 '마지막 콘서트'였다. 아마 그것이 낯설게 느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연지 자신의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기존의 이승철의 노래를 편곡해 부르는 자리였다.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된다. 느껴지는 감정까지 너무 다르다. 이승철의 노래를 편곡해 부르는 경연의 자리가 아니었다면 평가는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아쉬웠다. 결과는 어쩔 수 없었다.

에일리의 '희야'를 들으면서는 부활 시절의 이승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는 이승철도 마치 다른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여인을 다시 불러세우려는 듯 처절한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에일리는 그보다 더 처절했다. 그것은 차라리 분노였다. 간절한 애원이기보다는 그보다 더 절박한 염원이었을 것이다. 벌써 다른 세상으로 간 이를 다시 불러들이려는 초혼의 노래였다. 한 편의 무가를 듣는 느낌이었다. 불길한 음울함마저 느껴진다. 과연 에일리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에일리의 '희야'다.

이홍기의 '말리꽃'은 이승철의 말처럼 한없이 올라갔고 한없이 커져갔다. 긴장한 탓일까? 아니면 부담감 때문이었을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노래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좋게 표현하면 정직하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서툴다. 거칠지만 이홍기만의 매력이 느껴진다는 것은 하나의 장점으로 존재할 것이다. 힘을 빼고 부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울랄라세션의 '방황'은 퍼포먼스의 말그대로 끝판왕이었을 것이다. 물론 울랄라세션은 노래도 된다. 중간에 연기까지 함께 보여준 버라이어티 바로 그 자체였다. 임대장 임윤택은 이제 없지만 다섯 명이 하나처럼 무대를 채워간다. 퍼포먼스형 아이돌은 많지만 퍼포먼스 그 자체를 추구하는 팀은 그리 흔지 않다. 울랄라세션이 갖는 가치다. 정통의 퍼포먼스를 탄탄한 노래에 실어 대중에 보여준다. 유일하게 이승철과 비교가 불가능한 그들만의 무대였다. 임윤택이 그 자리에 마치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임대장과 함께 하고 있었다.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불후의 명곡2>의 매력하면 대기실에서의 왁자한 한 바탕의 수다일 것이다. 출연가수들의 평소 보지 못했던 날모습들이 고르란히 방송을 통해 대중에 보여지고 만다. 그닥 대단할 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재미를 이끌어낸다. 중심에는 MC 정재형과 문희준이 있다. 한 바탕 축제와도 같다. 모두가 즐겁다.

아직 6팀이나 더 남아있다. 이번주 우승했다고 울라라세션이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으리라는 예상은 어느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응원한다고 성적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누가 과연 울랄라세션을 꺾을 것인가. 남는 것은 실력과 그리고 약간의 운 뿐이다. 이기면 좋다. 남은 가수들 역시 실력이 출중한 이들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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