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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4.04 11:20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마치 단 한 번도 죽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왕비서님이 서툰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보다 일찍 알았더라면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그들은 서툴다. 아니 누구나 서툴다. 사랑이란 예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획되어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 우연처럼 찾아가서 필연처럼 운명이 된다. 놀라고 당황하고 허둥대는 가운데 어느새 후회를 남기게 된다. 그래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 하던가.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거울에 비춘 듯한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병이 존재한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스스로를 자해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인정도 받고 싶은 마음에 특정한 대상에게 위해를 가한다. 혹시나 누군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까 스스로의 몸에 칼을 대고, 누군가에게 진정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그를 도리어 궁지로 내몬다. 더구나 그들은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비로소 깨닫는다.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줄곧 죽고 싶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진심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칼로 손목을 긋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오수(조인성 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것치고 그녀는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입원시간을 상의없이 임의로 늦춘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기를 향한 그의 감정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면 분명 그는 자신을 살피기 위해 입원시간을 알아보고 확인하려 할 것이다. 누구나 뻔히 알 수 있는 거짓말은 차라리 거짓말을 알아달라는 응석과도 같다.

자신을 상처입힌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 상처를 확인하고자 한다. 정신없이 자신에게로 달려와 그것을 확인시켜주기를 바란다. 다시 그를 보고 싶다. 다시 그와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쩌면 왕비서 왕혜지(배종옥 분)의 당시 심정 또한 자신과 같지 않았을까? 그렇게라도 자신이 그녀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그것을 직접 느끼고 확인하려 했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한다. 당시 그녀는 어렸고 지금의 자신은 너무나 무력하다. 그렇게밖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가난한 처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 말해주는 오수가 스스로를 용서하도록 만든다.

그들은 그렇게 닮아 있었다.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상처입힌 오영(송혜교 분)이나 사랑하기 위해 오영의 눈을 멀게 만든 왕혜지나, 그래서 오영은 다시 왕혜지와 화해할 수 있었다. 용서가 아니었다. 이해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게밖에는 사랑할 수 없다. 그리 절박하고 간절하게 피투성이가 되어 상처주고 상처입으며 사람은 살아간다. 오수의 후회와 죄악감을 위로했듯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려 한다. 왕혜지를 용서함으로써 그녀는 자신마저 용서하려 한다. 자신은 여전히 오수를 사랑한다.

물론 오수는 자신을 속였다. 죽은 오빠를 사칭해 자신을 기만해 왔었다. 그래서 원망하는 말도 하게 된다. 용서할 수 없다며 매몰차게 그를 밀쳐내려고도 해본다. 하지만 자신 또한 다르지 않다. 오수가 죽은 오빠를 사칭했다면 그녀는 죽은 오빠를 사칭한 오수를 사랑한다. 심지어 그토록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오빠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기보다 오수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며 오수만을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죄다. 오수를 향한 그녀의 말들은 그녀 자신을 향한 말들이기도 하다. 그녀는 끝에 말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조무철(김태우 분)을 죽인 것은 갑작스럽게 찔러들어온 칼이 아니었다. 칼은 피했다. 아니 칼을 찔러온 상대를 제압하여 다시는 밤세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밤세계를 주름답던 그도 어느 순간 전혀 예기치 않은 병에 의해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오수에게 하고자 했던 말도 끝맺지 못한 채, 자신을 그토록 싫어하던 박진성(김범 분)의 등에 업혀 쓸쓸히 죽음을 맞고 만다. 사랑과 죽음의 공통점이다. 예상할 수 없고 예정될 수 없고 그럼에도 헤어날 수 없다. 사는 것이 그렇다. 그래서 모두는 그렇게 서툴고, 그렇게 많은 후회와 미련을 남기며 살아간다. 조무철도 아직 못한 말들도 행동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비관이며 애정이다. 원래는 더 순수했어야 하건만. 더 맑고 더 투명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렇지 못하다. 울고 웃고 화내고 원망하며 다투고 미워하는 가운데 사람은 결국 어깨를 맞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투명한 것은 그런 마음들, 누군가를 그럼에도 사랑하고 올곧게 그리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하며 살아간다. 사랑하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오영은 살았고 오수도 살아서 동화처럼 말간 봄햇살 아래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한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옥의 티라기에도 너무나 크게 도드라진 아쉬웠던 장면을 말하자면, 어째서 박진성은 그때 김사장이 건넨 칼을 들고 오수를 쫓아가 찔렀는가 하는 것일 게다. 물론 김사장에게 협박을 받았다. 자칫 김사장이 보낸 사람들에 의해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들이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무리 친혈육보다도 더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오수지만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어도 연인과 가족마저 그리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차라리 울더라도 오수를 찌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 오수는 어떻게 살았고, 자신이 그토록 위하던 오수를 찌른 박진성은 어떻게 다시 일어났고, 그럼에도 어떻게 문희선(정은지 분)과 평범하게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다못해 동요한 나머지 칼이 비껴나 내장을 다치지 않은 탓에 잠시 치료받고 이내 멀쩡해질 수 있었다. 미안해하는 박진성을 오수가 위로하며 용서해주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박진성의 마음속엔 오수라는 그림자가 남아 있어야 한다. 너무 해맑다.

동화였을 것이다. 많은 동화들이 그렇게 마무리된다. 그들은 그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실제 행복한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이면에 어떤 사연들이 감춰져 있는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백조가 아름다운 것은 물아래에서 쉼없이 물갈퀴를 젓기 때문이 아니라 물 위에 드러난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간에 오수는 살았고 오영 또한 살았다. 그들은 맑한 봄볕 아래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나 사랑을 한다. 개연성은 필요없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힘을 얻고 그렇게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차라리 진소라(서효림 분)이었다면 어땠을까? 진소라의 오수에 대한 집착이 김사장을 파멸시키고 오수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 또한 일관된 주제 아래 있을 것이다. 진소라의 비중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었다. 사실상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인데 어느 순간 소리소문없이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기는 그러면 드라마가 너무 처절해질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송혜교에게는 기념비같은 작품일 것이다. 동화속 공주님처럼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당당하고 강인했으며 가녀리고 보호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녀는 사랑하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조인성은 동확속 왕자님에 어울린다. 동화처럼 마무리된다. 차라리 두 사람 모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이것은 단지 그들의 끝나지 않은 꿈에 불과하다. 그렇더라도 그 모습이 너무나 서럽도록 아름답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가 누구이든, 어떤 처지이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그리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은 사랑하며 살아간다. 마무리가 아쉽다. 하지만 동화란 원래 그런 것이다. 한바탕 꿈을 꾸었다. 누구의 꿈인지도 모르는 꿈.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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