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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6.07 08:15

내게 거짓말을 해봐 "공아정과 유소란, 여자들의 우정"

성공한 진부함은 필수요소다.

 
설마했었다. 어느새 적자투성이가 되어 버린 산하 리조트를 살피러 내려간 현기준(강지환 분)이 등산로를 오르다 폐쇄된 길로 들어섰을 때, 더구나 쓰러져 뒹굴고 있는 "입산금지" 표지판을 보며 설마 이리로 공아정(윤은혜 분)이 잘못 들어가 조난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이미 <시크릿 가든>에서도 한 번 써 먹었던 장면이다. 아니 작년 겨울 방영했던 <매리는 외박중>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우연히 산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하고, 그리고 그것을 상대편에서 애써 찾아 구해주며 인연이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49일>에서도 강민호와 신지현의 관계가 산속에서의 조난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공아정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무원으로써 업무차 국제관광회의지원단 일로 숙소로 예정된 리조트를 점검하려 찾아온 것 뿐이다. 설사 리조트에서 현기준과 부딪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려면 아무런 안내도 설명도 없이 혼자서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조난을 당할까? 조난을 당하면 또 얼마나 크게 당할까? 그러나 결론은... 당했다.

공아정은 조난을 당해 쓰러져 있고, 그런 공아정을 찾아 밤늦게까지 숲을 헤매다 현기준이 쓰러져 있는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산속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떠는 그녀에게 자켓을 벗어 걸쳐주고 어깨까지 기대어 잘 수 있도록 내준다. 그렇게 밤을 지새고... 차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기준은 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었지만 공아정의 마음은 여전히 풀릴 줄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맞선까지 본다.

이것도 문제다. 좋아하는 사이다. 어떤 일로 오해가 생기고 틀어졌다. 그러자 주위의 권유를 받아들여 맞선이나 봐야겠자며 충동적인 결심을 하게 되고, 두 사람은 바로 그 맞선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로 인한 헤프닝. 한때 유행하던 코드다. 조난에 이어 이번에는 그 흔한 맞선이라는 소재까지 나오게 되다니. 더구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공아정을 현기준이 팔을 잡고 끌고 가는 장면이었다. 역시 너무 전형적이다. 진부하다.

물론 아주 같지는 않았다. 아니 결정저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현기준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 답지 않게 영악했다. 우유부단하지 않았고 과단성도 있었다. 도대체 앞으로의 분량을 어떻게 채우려는 것인지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오윤주(조윤희 분)에게 공아정을 만나고 돌아온 그 순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라 말한다. 자기는 공아정이 좋다. 고모인 현명진(오미희 분) 회장이 굳이 두 사람의 관계를 말릴 것도 아니고 이렇게 확실하게 오윤주를 정리해 버리면 어떻게 현기준과 공아정의 로맨스가 이어지겠는가 말이다. 아무런 장애도 없이 순탄한 사랑의 결말은 결혼과 출산밖에는 없다.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계속해서 현상희(성준 분)의 캐릭터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아직까지는 공아정에 대해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윤주와 현기준의 사이가 틀어졌을 때 그 탓을 돌리고 책임을 지우게 되는 대상은 공아정일 수밖에 없다. 현명희마저 오윤주에 대한 반대를 늦추어주면 그때는 그야말로 현상희가 조커로 뛰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그의 손에 이후의 전개가 달려 있다고나 할까. 다른 사람은 행동에 제약이 있다. 그를 위한 정지작업이라 봐도 좋을까?

아무튼 참 신기한 것이 여자들끼리의 우정일 것이다. <49일>에서도 신인정이 강민호와 손잡고 신지현을 대상으로 음모를 꾸미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게 공아정의 첫사랑까지 뺏어가며 공아정을 괴롭히던 유소란(홍수현 분)이건만 자기를 속인 것을 따지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현기준에게 그런 말까지 하고 있었으니.

"아니 가짜 부부 행세를 했으면 했지, 아정이는 왜 흔들어 놔? 혹시 저 여자(오윤주)와 짜고 아정이를 바보 만든 거에요?"

전혀 친구같지 않았다. 친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런 게 어디 친구인가? 원수지? 그런데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힘내라며 화이팅을 외쳐주는 것이 유소란이더라는 것이다. 어느새 현기준에게 쏠려버린 마음과 그 마음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아정의 처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바로 유소란이라는 친구였다. 그래서 친구라 했던 것이었을까?

하기는 원수라면 공아정이 그렇게 유소란에 약올라 할 일이 없었겠지. 유소란에 약올라 하며 애써 유소란을 의식해 거짓말을 하고 연극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유소란 역시 남편 천재범(류승수 분)과의 관계보다도 그 관계가 공아정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결국 서로를 끊임없이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것도 우정의 한 형태였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로서는 도저히 공감할 수 있는 세계지만 보이기에 그렇게 보였다. 작가부터가 여성작가일 테니.(김예리 극본)

아무튼 너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뻔한 전개가 실망스러웠던 회차였다. 하필 조난에 그것도 맞선에 그리고 마지막은 맞선을 보는 공아정을 강지환이 끌고 나가는 장면에서. 그러나 그런 뻔한 전개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다. 조금 더 오래 끌고 갈 것이라 여겼던 오윤주와의 관계도 바로 정리해 버리고, 오윤주가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삼각관계가 시작되는가 싶은 순간 이미 현기준은 마음을 정해 버렸다. 새로운 위험,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리라.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전체적으로 지루한 듯하던 전개가 등장인물들의 극적인 심리변화로 인해 적절히 템포와 긴장을 유지하며 끝맺음할 수 있었다. 현기준은 자기의 감정을 확실히 할 수 있었고, 공아정은 단지 토라져 있을 뿐이다. 과제는 남아 있지만 훨씬 경쾌하다. 제작진의 역량이고 배우의 역량일 터다. 재미있었다.

과연... 역시 벌써 끝은 아닐 것이기에 이후가 궁금해진다. 현기준은 어떻게 공아정을 돌려세울 것이며 아직 남은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현기준이 자신의 감정과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한 이후라도 아직 끝은 아닐 것이기에 그 다음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어떻게 될까? 기다린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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