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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29 09:30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그가 없는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는 것, 오영의 절망"

그 없이 산다는 것, 그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사랑하다.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랑이라고 하는 축복이며 또한 저주일 것이다. 그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가 곁에 없는 지금도 마치 함께 있는 것처럼 그를 느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그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차라리 절망과도 같이 외롭고 시리다. 하물며 우연히라도 오영(송혜교 분)를 볼 수 있었던 오수(조인성 분)와는 달리 오영은 지나고 나서야 친구인 손미라(임세미 분)를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어쩌면 영영 오수를 다시 볼 수 없을 지 모른다.

사랑하면 죄인이 된다. 어쩔 수 없다. 사랑하게 되는 순간 우주는 자신이 아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를 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하기 전에 먼저 그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다. 그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다.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상대의 입장이나 생각따위 전혀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신의 기쁨을 위해 그리 일방적으로 행동하고 마는 지독한 이기이며 에고일 것이다.

더 잘해 줄 것을. 더 잘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리해서는 안되었다. 반드시 그리했어야 했다.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미련을 남기고 만다. 차라리 자신이 아니었다면. 그럼에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의 곁을 지키고자 한다. 하필 어째서 자신인가. 고작해야 뒷세계의 도박꾼에 지나지 않는 자신을. 고작 앞도 보지 못하는 한심한 자신을. 그래서 오수는 문희선(정은지 분) 앞에서 절규하고 오영은 홀로 남아 그를 떠나보내고 만 자신에 절망한다. 굳이 그렇게 모질게 대하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그렇게 그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해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단지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믿고 쉽게 결론짓고 싶었을 뿐이다. 오수는 그렇다. 그런 존재다. 그런 남자다. 무죄라 말할 자격이 자신에게는 있었는가? 오수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겠다 말했다. 비로소 오영도 그 의미를 깨닫는다. 이해나 용서따위는 필요없이 오영은 다시 왕비서 왕혜지(배종옥 분)에게 전화를 건다. 외롭고 보고 싶다. 아니 단지 말을 걸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다. 늘 곁에 있던 그녀의 빈자리가 무척이나 휑하고 허전하다. 하기는 그녀가 진정 바라는 것은 어쩌면 왕혜지가 아닌 오수였을 테지만.

왕혜지도 안다. 오영에게 그렇게 내쫓기고 나서 그녀는 비로소 오랜만에 부모를 찾아뵈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그저 먼발치에서 잠시 지켜보고 말았을 뿐이었다. 거리낌이 있었다. 아내와 자식까지 있는 남자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에 있는 자신을 경멸하여 없는 자식으로 여기던 부모와 그런 부모를 인정하고 죄스러워하면서도 한쪽 구석에 원망하는 마음을 감추고 있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딸이라 여기던 오영에게 버림받고 아무곳에도 갈 곳이 없을 때 그녀가 찾은 것은 바로 그 부모였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만나서 살갑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해도 그저 멀리서나마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말했듯 오영은 그것이 되지 않는다. 후회는 쌓여가는데 그것을 다시 되돌릴 기약이란 없다. 보지도 못한다. 아니 과연 살 수나 있을까? 수술이 성공해서 살아나게 되더라도 다시 후회들과 마주할 자신이 없다.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오수를 이해하려 한 댓가였다. 왕혜지를 이해하려 한 결과였다. 그 결과 오영은 정작 자신을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조무철(김태우 분)이 말한다.

"나라도 나를 이해하지 않으면, 너무 안됐잖아, 내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서한다. 설사 그것이 전혀 위로도 용서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믿고 살아간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어떻기든 살아갈 이유를 찾고 힘을 얻는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간다. 자기만이 특별하다 여기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도저히 어쩔 수 없었노라 스스로 납득하며. 굳이 이해하는 척 용서하는 척 그런 자신을 변명하고 만다. 그렇게라도 사람은 살아간다.

너무 순수해서일까? 오수도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사장이 파놓은 함정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려 한다.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그런 자신따위. 그러면서도 그 순간까지 그는 오영을 사랑하는 자신을 그 이유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오수를 사랑할 수조차 없는 무력한 자신을 오영은 용서하지 못한다. 자신을 벌하려 한다. 자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리석고 무력한 자신에 대한 징벌이며 살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모든 기억과 추억마저 버려둔 채 혼자서 떠나려 한다. 그저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며 기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환멸을 담아서. 그렇게 그녀는 오수를 사랑했다.

드디어 막바지다. 조무철이 칼에 맞았다. 다음을 기약한 오수의 말은 조무철의 죽음과 함께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오영이 죽으려 한다. 죽어가는 오영을 오수가 발견한다. 오수를 위한 김사장의 함정은 정교하고 치밀하다. 살아가려 했지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조무철과 죽으려 했지만 살아갈 수 없기에 죽으려 하는 오영, 죽을 수 없었지만 살아갈 수 있었기에 죽을 수 있게 된 오수, 그리고 그를 끝까지 지키려는 박진성(김범 분)과 문희선. 엇갈린 감정들이 서로 뒤엉키며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그들은 사랑할 수 있을까? 살아날 수 있을까?

송혜교는 참으로 아름다운 배우일 것이다. 외모도 아름답지만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복잡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의 선들이 가슴이 먹먹하도록 아름답게 다가온다. 부옇게 안개가 낀 것만 같다. 그것은 눈물이며 절망이다. 사랑이며 희망이다. 때로는 무채색처럼 때로는 유채색처럼 그녀를 중심으로 드라마가 피고 또 지기도 한다. 조인성의 어눌함은 오수가 갖는 여러 색깔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오수란 어쩌면 그렇게 서툰 남자였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그 간절하면서도 잔인하도록 헤집고 지나가는 감정의 폭풍이 꺾이고 비틀리며 하얀 눈안개를 피워낸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오영이 떠올라 서툰 친절을 베풀며 우연히 마주친 시각장애인 여성을 따라나서는데 그 발걸음이 운명처럼 오영에게 이르고 있었다. 오영을 생각하는 오수의 선의가 그를 그리로 이끈 것이었다. 상징적이지 않았을까? 오영을 지켜보는 오수와 그것을 모른 채 지나치던 오영. 그들은 마침내 다시 만났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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