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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18 09:10

남자의 자격 "자연으로 돌아가는 의미, 부러운 넉넉함을 보다"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자기를 위한 포상, 꿈을 꾸다.

▲ 사진='남자의 자격'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오히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더 많은 시간을 더 강도높은 노동에 할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남자의 자격 - 남자, 그리고 자연인으로 살아보기>편에서 보이는 바로 그대로다. 배고프면 산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다. 몸을 씻고 싶으면 맑은 물을 찾아 훌훌벗고 몸을 담그면 된다. 굳이 더 맛있는 것을 찾으려 할 필요도 없고, 물을 데우거나 남들의 몸을 피해 가려야 할 이유도 없다. 나머지 시간은 아니 먹을 것을 찾아 산을 헤매는 동안에도 그다지 큰 노력이나 준비가 필요치 않은 놀이로 채운다.

찌그러진 양은냄비라도 갓도정한 쌀을 정성껏 씻고 물을 맞추고 불조절을 잘해서 제대로 지어 바로 먹으면 그 밥이야 말로 맛있는 밥일 것이다. 굳이 더 편하자고 미리 쌀을 도정하고, 그리고는 불조절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전기로 밥을 짓는 도구를 만든다. 더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한 가지라도 더 많은 기능이 요구되고, 미적인 만족을 위해 디자인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렇게 아낀 남은 시간을 사람들은 전기밥솥을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느라 허비한다.

좋은 샴푸와 향기로운 비누, 멋드러진 욕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물, 머리를 말리려면 헤어드라이어도 필요할 것이다. 크고 폭신한 순면의 수건도 필요하다. 항상 뽀송하게 마른 수건을 준비하자면 세탁기도 있어야 하고 건조대도 있어야 한다. 요리를 하려 해도 멀리서 사들인 다양한 고기며 야채며 양념들이 식탁에 추가된다. 더 이상 누구도 근처의 산으로 먹을 것을 찾아 오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대신 그것들을 사기 위해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이 더 넓어지고 더 다양하고 더 질좋은 식재료들이 사람들을 유혹하면서 그를 위한 비용 또한 갈수록 늘고 있는 중이다. 사실은 집 주위에서 나는 것들 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맛있을 수 있고 배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오히려 그런 번거로움을 자초하고 만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이유일 것이다. 이 또한 인기의 자기애적 이기다. 더 편해지고 싶다. 더 한가해지고 싶다. 자신이 놓인 그리고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여러 관계나 분주한 일상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딱 먹을 만큼만. 딱 자기가 살 만큼만. 더 바빠지기도 싫고 더 힘든 것도 싫다. 다만 그를 위해 다시 그 만큼의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몇 시간을 산을 헤매며 먹을 것을 구하는 대신 딱 그 만큼만 일하려 한다. 그래서 방송에서도 자연인들은 거의 혼자다. 가족이 있으면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애되는 것도 구속받는 것도 많다.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들이 꿈꾸는 전원의 삶이라는 것도 결국은 지금보다는 보다 한가한 의미있는 삶을 찾고자 하는 욕구 아니던가.

하필 자연인으로 출연한 김씨돌씨나 이도사 모두 사회적으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노년에 접어든 이들이라는 점은 그래서 시사하는 점이 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이의 자연으로의 탈출이란 다른 말로 도피다. 확실히 김씨돌씨나 이도사와 같은 자연인들과 지하철역에서 노숙하는 노숙자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던가? 당당함이다. 자신감이다. 그로부터 오는 여유다. 돈을 벌지 못해도, 더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해도, 그럼에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았던 이의 여유가 어쩌면 고단하고 빈곤하기까지 한 삶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항상 여유가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적확하게 짚고 있을 것이다. 한창 자기일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일 나이의 주상욱이나 김준호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들은 자기의 일을 해야 한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일을 하고 자기가 목표로한 것들을 성취해야 한다. 김태원이나 김국진, 아니 최연장자인 이경규조차도 어쩌면 많이 이를 것이다. 아직 이루고자 하는 바가 많다. 아직 다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다. 번거롭고 대로 피곤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살아가는 의미이며 보람이다. 이룰 것을 다 이루었다면, 아니면 그 사이 짬짬이 방송에서 나온 것처럼 문득 산으로 들어가 쉬어보는 것도 좋다. 누구보다 먼저 이경규는 산을 오르다 말고 눈밭에 눕고 있었다. 아이처럼 눈썰매를 타며 즐기고 있었다.

인간이란 결국 문명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인간이란 모든 관계의 집합이라 했던가? 관계란 역할이다. 작용이다. 곧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다.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지쳤을 때, 혹은 다른 삶의 방식을 찾고자 했을 때, 단지 그런 예외적인 경우에 그 대안으로서 자연인이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상에는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삶이란 인적도 드문 산속이 아닌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도시의 거리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또한 부럽지 않은가.

누구나 꿈을 꾼다. 농촌으로. 혹은 자연으로. 그러나 그 번거로움을 견딜 자신이 없다. 그러다가 오히려 인간세상의 번거로움이 더 힘들고 피곤해지면 자연속의 번거로움을 찾아가는 꿈을 꾸어 보기도 한다. 결국은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만다. 이상하고 낯설다. 어색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한 번은 꾸어봐도 좋을 듯 싶다. 언젠가는.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은퇴를 하고 남은 시간을 나만을 위해 의미있게 보내려 한다면. 말했듯 아쉽다면 가족과도 함께 그같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는 것일 게다. 하기는 그조차 구속이고 짐일 것이다.

무위란 어쩌면 극단의 인위일 것이다. 인간은 결코 무위의 존재가 될 수 없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인위인 까닭이다. 그것이 문화이고 문명이다. 그것이 곧 인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명문대 법대를 졸업했고, 중소기업의 경영자였으며,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자신의 삶을 그 상으로 자신에게 주려 한다. 먼 이야기다. 하지만 잠깐의 일탈 정도야 이 또한 일상의 활력소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래서 스스로에 만족하여 기특한 자신에 상을 주고 싶을 때, 아마도 그때라면 그리 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해도 좋은 자랑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할 것이다.

스스럼없는 삶이 좋았다. 거리낌없이 아무렇지 않게도 즐기는 그 넉넉함이 부러웠다. 작은 웅덩이를 바다삼아, 빨간 함지를 배삼아, 삽으로 노를 저으며 뱃놀이를 즐긴다. 어설프게 물에 빠지면서도 그것이 차마 즐겁다. 벌거벗고 물속에 뛰어들고, 간도 되지 않은 음식을 슴덩슴덩 손크게도 만들고. 18년된 멸치야 아무려면 어떤가. 죽지만 않으면 된다. 멤버들이 구경꾼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 그들은 치열하게 인간세상에 발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마지막 미션이다. 이제 다음주면 마지막회다. 2009년 봄, 바로 지금무렵 소리소문없이 시작한 <남자의 자격>이 온갖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까지 오게 되었다. 웃음이 있었고, 공감이 있었고, 시큰한 감동도 있었다. 남자의 한심함과 남자의 강함과 남자의 꿈과 남자이기에 주어지는 숙제가 있었다. 마지막에 약간 아니 아주 많이 헤매며 겉도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남자의 자격>의 일부로서 지금은 받아들일 수 있다. 실망조차도 프로그램을 이루는 일부다. 정리의 시간이다. 마지막에 어울리는 미션이었다 생각한다. 언젠가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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