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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3.15 10:08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오빠잖아, 너! 오영 오수를 보다"

죽고자 하던 그녀가 살고 살고자 하던 그가 죽으려 하는 이유

▲ 사진제공=바람이분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오빠잖아, 너! 남자 아니고."

그동안 그녀 오영(송혜교 분)의 세계는 빛바랜 흑백사진과도 같았을 것이다. 퇴색되어버린 하얀 빛과 더욱 선명해진 짙은 그림자의 음영이 만들어내는 세계였다. 형체도 없고, 당연히 색도 없다. 그저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을 경험에 의지해 희미하게 느낄 뿐이다.

과연 눈앞의 오수(조인성 분)가 진짜 자기의 친오빠인가? 상관없었다. 언젠가 죽을 것이다. 반드시 죽고야 말 것이다. 그 이전에 자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도저히 그 답을 찾지 못하겠다. 나란 이 세상에 어떤 의미이고 가치로서 존재하는가? 살고 싶지만 살고 싶다고 하는 그 이유조차 그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무시했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어쩌면 눈앞의 오빠 오수가 사실은 진짜 자기의 친오빠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는 느끼고 있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어했을 뿐이었다. 오수가 자기에게 건넨 그 약이 그의 말처럼 실제 자기를 한순간에 고통없이 죽음에 이르도록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독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니 처음으로 의심이라는 것을 떠올려 본 것치고는 그녀는 너무나 쉽게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리고 그보다 더 쉽게 다시 의심을 거두고 오수를 자기의 친오빠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사는 세계처럼 너무나 쉽고 단순하며 간결하다.

그래야 했으니까. 그래야만 했으니까. 필요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간절히 필요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오빠 오수였다. 오빠 오수만 그녀의 곁에 있어주면 되었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믿을 사람이라고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절망과도 고독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라도 상관없었다. 그럴수만 있다면 설사 진짜 자기의 오빠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녀에게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자기는 죽게 될 것이다. 죽고 난 다음에야 진실이 무엇이든 그녀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래서 믿었고, 그래서 의심하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그녀는 의심을 접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좋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너무나 짧은 찰라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죽을 운명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자기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체념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왕에 죽을 수밖에 없다면 당당히 추해지지 말고 받아들이자고. 그렇게 그녀는 살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보이지 않게 꼭꼭 숨겨두고 있었다. 애써 당당함으로 자신을 두르고, 태연함으로 자신을 가리며, 그래도 괜찮다고 자신마저 속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다가왔다.

"대체 나한테 뭘 원해?"
"살고 싶다는 말! 살고 싶다는 의지!"

죽지 말라고 말한다. 죽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살라고. 살고 싶다고 말하라고. 간절히 살고 싶다는 솔직한 자신을 드러내라고. 그런 자신을 원한다고. 차라리 그녀의 곁을 무심하게 떠날지언정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자기는 필요로 한다고. 살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자기를 위해서라도 그녀가 살아주었으면 한다고 간절히 말하고 있다. 살고 싶다고 말해도 좋다고. 설사 헛된 바람일지라도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처음으로 그녀는 그런 오수의 바람에 응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를 위해서라도 살고 싶다고.

그녀를 옭죄고 있던 단단한 껍질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희뿌연 빛과 잿빛 그림자로만 이루어져 있던 그녀의 세계는 단지 그 껍질로 인해 두껍게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색이 돌아오고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로소 오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전히 그녀에게 오수란 자기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오빠로서 여겨질 뿐이지만 그녀의 애써 감추고자 하는 무의식은 오수를 어느새 오빠가 아닌 남자로 느끼기 시작한다. 내외한다고 말한다. 오빠가 아닌 남자로 느끼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전처럼 오수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이룰 수 없다. 다만 너무나 단단한 껍질과 그 껍질에 의지해 왔던 그녀의 여린 내면은 그 사실을 한순간에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전히 그녀는 혼란에 놓여 있다.

껍질을 깬 것은 오수 역시 마찬가지다. 오수로 인해 조무철(김태우 분)도 껍질을 깨고 자신을 돌아보려 하고 있었다. 자기에게 살아갈 의미란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격따위 자기에게는 없다고 역기고 살아왔었다. 죽지 못해 살아간다. 죽는 것이 의미가 없다.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없으니 죽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 그래서 더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죽음이야 말로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자신의 삶을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것이므로. 그것은 완벽한 소멸이다.

하지만 비로소 깨닫는다. 그런 것들이야 말로 한낱 얄팍한 자기기만에 불과했다는 것을. 다른 누가 정의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는. 산다고 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하는 것 역시. 살아갈 자격따위 다른 누군가가 인정해주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죽은 문희주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면 그는 그에 걸맞는 삶을 죽은 그녀를 위해서라도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이 그녀의 이 세상에서의 짧았던 시간들을 더욱 의미있게 가치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녀에 대한 죄의식을 핑계로 도망친 방탕한 삶따위 도리어 죽은 그녀를 하찮게 우습게 만들 뿐이다. 지금이라면 죽은 그녀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지금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볼 수 있겠다.

그래서 죽으려 한다. 살아갈 이유를 찾았기에. 죽더라도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허무한 죽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살리려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자 자신이 죽는다. 물론 자신이 죽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다. 죽은 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기를 학대하는 일따위 자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위의 모두를 떠나보내고 그리고 그는 의미있는 삶을 위해, 그래서 가치있는 삶을 마무리짓기 위해 조무철을 찾아나선다. 그 순간 그는 누구보다 강열하게 살고자 하고 있고 살아가고 있다.

죽으려던 여자가 살려 한다. 살고자 했던 남자가 죽으려 한다. 살고 싶었기에 죽으려 했던 여자가 비로소 살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본다. 죽더라도 살아야겠다는 본능보다 강렬한 욕망을 일깨운다. 그리고 단지 죽을 수 없었기에 살고자 했던 남자는 살아야 할 가장 절실한 이유 앞에 비로소 죽어도 좋은 이유를 찾게 된다. 살 수 없기에 죽으려 했고, 죽을 수 없었기에 살고자 했다. 그러나 죽어도 살아야 했고, 살아야 하기에 죽으려 한다. 이렇게 쌍동이보다 더 닮은 두 남녀는 서로를 향해 더욱 치열하게 엇갈린다.

이미 오수의 정체는 오영의 주변에 의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장성(김규철 분) 변호사도, 왕혜지(배종옥 분) 왕비서도 모두 그의 정체를 안다. 단지 필요에 의해 오수의 감정을 이용하고자 그를 잠시 오영의 곁에 내버려두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오수의 정체는 비밀이 아니다. 오수의 정체가 과연 언제 밝혀질까 마음 조일 일도 없다. 이미 파국은 예정되었다. 오수의 죽음처럼.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한다. 사랑인 걸 모르면서도, 그리고 사랑인 걸 알면서. 오수를 위해 살려하고, 오영을 살리려 오수는 죽으려 한다. 이보다 더 간절하고 치열한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누가 누구를 속이고 누가 누구를 위장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박진성(김범 분)은 여전히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 있다.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와 어려운 가정형편은 그로 하여금 가족에 대한 더욱 강한 집착으로 자신을 감싸도록 강요했다. 그것은 박진성이 남자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어떤 것이었다. 오수는 그런 박진성에게 아버지이며 형제이며 또다른 자신이다. 그를 향한 의리를 지키는 것은 바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극단의 이기다. 그의 오수에 대한 의리는 바로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만족이다. 문희선(정은지 분)에 대한 사랑조차 그런 그를 바로 일깨우지 못한다. 껍질과 함께 부서지거나, 아니면 다른 계기가 찾아오거나. 가족은 그를 강하게 때로 슬프게도 만든다.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사랑한다. 그러나 결국은 사랑한다. 역설이며 반전이다. 처절하다. 그럼에도 처절해서 그 사랑이 더욱 아름답고 간절하다. 살고자 하는 의지란, 죽어도 좋다는 그 결심이란, 죽음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사랑이라면, 죽음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다. 죽음 앞에서 그들은 그렇게 더 진실해진다. 그들의 주위의 어느 누구보다 진실한 사람들보다도 더. 오수를 사랑하기보다 집착하는 진소라(서효림 분)의 표정이 슬퍼진다.

어쩌면 진소라의 오수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이 어떤 반전의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수를 갖기 위해 그를 최악의 궁지로 내몰았다. 목숨마저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으로 그를 내몰고 그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 했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진짜 오수가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더 이상 그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강요받는다. 죽은 오수라도 가질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오수의 죽음조차 함께 할 수 있는 그녀의 다른 선택은 무엇일까? 김사장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들은 순간 오영을 찾아가려 한 그녀의 행동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죽음을 앞에 두고 비로소 솔직한 자신을 찾은 조무철의 모습에서 해피엔드를 예감한다. 그는 오수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오수가 사는 길이다. 그것을 박진성만 알지 못한다. 오영도 모른다. 단지 오영은 그를 위해 살려 할 뿐이다. 겨울이 끝나가는 바람이다. 맵지만 따뜻한 생명의 온기가 느껴진다. 겨울에도 바람은 분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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