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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이슈뉴스
  • 입력 2013.03.02 12:13

아이리스2 "또다시 북한, 동어반복과 드라마가 저조한 이유"

아이리스1과 아이리스2의 현실은 다르다.

▲ 사진제공=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최고시청률 40%의 전작에 대한 기대와 170억이라고 하는 기록적인 제작비, 그러나 10% 언저리를 맴도는 동시간대 최하의 시청률, <아이리스2>의 성적은 이렇게 처참하다. 여느 드라마라면 그럭저럭 평타는 치고 있다 말하겠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는 <아이리스2>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무엇때문이었을까? 아마 필자가 <아이리스2>의 첫회를 보면서 느낀 어떤 지루함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심지어 지겹기까지 했다. 도대체 철지난 이야기들을 드라마를 통해서까지 몇 번을 반복해가며 들어야 하는 것일까? 피로감일 것이다. 바로 소재에 대한 피로감이었다. 북한이라니. 더구나 그 북한과 통일을 전제로 평화적인 협상을 추진하던 도중 아이리스가 그를 방해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며 전개되는 사건이 주된 내용이다. 언제적 북한인가?

북한에 대한 한국사회 일반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한 민족 한 핏줄, 그리고 다른 한 쪽은 불과 수십년 전 참혹했던 전쟁을 치르고 지금도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긴장관계에 있는 적대국가, 같은 민족이라고 하는 동질성과 서로 적대관계에 있다고 하는 이질성이 모순된 불균형을 이루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과연 북한은 같은 민족인가? 아니면 단지 적에 불과한가? 누가 그에 대한 답을 쉽게 내릴 수 있을까?

물론 여기까지는 좋다. 그래서 북한에도 비둘기파와 매파가 있다. 같은 민족으로써 통일을 지향하는 비둘기파가 있는가 하면 적대국가로써 남한과의 긴장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매파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균형이 아이리스라고 하는 외적 존재를 허락한다. 같은 민족으로써 동질성을 회복하려 하지만 그것을 방해하고 적대적 긴장을 고조하려는 외부의 방해가 있다. 그것을 막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비밀국가기관 NSS다. 한국 드라마제작환경에서 보기드문 막대한 물량과 화려한 영상 이외에도 그같은 설정이 한국사회의 일반 대중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 전작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문제는 과연 지금에 있어서도 한국사회에서, 한국사회의 일반대중에 있어서 북한은 그와 같은 균형점 위에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전히 북한이란 같은 민족이며 동질성을 회복해야 하는 대상인가? 역시나 말한 피로감일 것이다. 그토록 언젠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할 같은 민족으로 여기고 강조하고 대해왔음에도 그것이 핵개발이라는, 그것도 벌써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치명적인 위협과 공포로써 돌아오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언제까지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만 보아야 할까? 이제는 차라리 통일따위 포기하고 이대로 영영 갈라서서 남으로 살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다시 북한의 비둘기파가 통일에 대한 협상에 응해오고 남한정부에서 전직대통령이 협상에 응한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시청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이야기의 설득력은 담보되지 못하는 법이다.

거기서부터 일단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이리스라고 하는 절대악은 상수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리스라고 하는 악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우리의 선이라는 것이, 그에 협력하는 우리편의 존재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북한의 강경파가 아이리스를 통해 핵무기의 소형화에 필요한 기술과 자재들을 입수하려는 것을 저지하는 내용이었다면 납득이 되었을 것이다. NSS에 협력하는 북한의 요원 역시 현실을 반영하여 북한의 주류강경파들로 인해 숙청당하고 밀려난 유중원(이범수 분)과 같은 정도의 위치면 충분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연화(임수향 분)는 아이리스가 아닌 남한정부의 협력자로 등장했어야 했다. 북한당국에 의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그로 인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탈출도중 죽은 어머니를 묻어야 했던 김연화가 북한측 요원인 박철영(김승우 분)에게 협력하는 모습은 드라마 만큼이나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설마 드라마는 그같은 처절한 비극을 내재한 김연화의 캐릭터를 그 원인을 제공한 북한의 권력과 타협하고 화해하도록 유도하고자 했던 것일까? 북한은 그녀에게 원수이며 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김연화가 아이리스와 손을 잡고 정작 NSS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거 4공화국시절 만들어진 핵무기를 찾으려는 아이리스의 시도 역시 북한의 강경파와 만나서, 더불어 과거의 군사정권을 되돌리고자 하는 군부의 강경파들까지 얽히면서 다수의 시청자들이 안전하게 누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일상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보다 현실적인 위협들이 보다 강력한 공포로써 TV앞에 앉은 시청자마저 위협하고, 그리고 그런 위협과 공포로부터 NSS는 시청자들을 지켜낸다. 그러나 정작 NSS가 쫓았고 끝내 체포한 것은 북한으로 인해 절망해야 했던 김연화라고 하는 가엾은 희생자였다. 굳이 드라마에서까지 냉혹한 현실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드라마는 판타지다.

결국 드라마에 몰입을 하지 못하니 사소한 부분들을 가지고 걸고넘어지는 것일 게다. 내놓은 요리가 맛있으면 사소한 것들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리가 맛이 없으니 재료를 썰어놓은 모양에 대해서까지 시비를 걸고 탓을 하는 것이다. 영상은 훌륭하다. 현실적인 여러 제약들로 인해 한계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정도는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아니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 막대한 비용과 물량을 투입하여 만들어지는 외국의 어느 드라마에 비해서도 크게 뒤지지 않는 감각적이고 완성도 있는 영상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든 작품도 지루함에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흠결 투성이인 것이다. 아무리 조각미남이라 하더라도 뜯어보면 한 군데는 못생긴 부분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런 사소한 시비들로부터 비롯된다. 더 중요한 것은 드라마의 이야기 자체가 그다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어째서 아이리스는 NSS를 노리고, NSS는 그토록 필사적으로 아이리스에 대항하려 하는가? 그와 같은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심설정이 부실해자면서 그와 씨줄과 날줄로 얽히는 정유건(장혁 분)과 지수연(이다해 분)의 멜로나, 정유건과 백산(김영철 분) 전국장 사이의 출생의 비밀과 같은 것들도 함께 동반부실로 휩쓸리고 만다. 충분히 그 중심이 되는 설정들이 설득력있게 시청자들의 흥미와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데도 그런 사소한 부분들에 눈이 가고 할까?

물론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도 기술적으로 소홀했던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이 머리에 총상을 입어 뇌를 다치고 기억을 잃은 채 아이리스의 협력자가 되어 있는 정유건의 존재다. 너무 길다. 충격적인데 너무 길다 보니 '그게 뭐?'하는 생각마저 든다. 차라리 기억을 잃고 아이리스의 하수인이 되어 있는 정유건과 그를 애타게 찾고 있던 지수연이 서로 적이 되어 마주치는 장면을 드라마의 첫머리에 넣었다면 어땠을까? 비극을 예고하는 그들의 따뜻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은 그만큼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 다시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과거의 이야기로 치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은 다르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때를 잘못 읽었다.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이지만 그때와 지금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는 또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 역시 크게 달라진 뒤다. 그렇다면 그에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목적은 선동이나 계몽이 아닌 쾌락에 있을 테니 말이다. 재미있으려 보는 것이지 심각해지려 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중은 과연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재미에 동의하게 될까?

같은 말도 반복되면 지겹다. 더구나 그것이 이미 틀린 것으로 밝혀진 뒤라면 더 그렇다. 북한은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최소한 한국사회에서 북한은 결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그런데 반복되고 있다. 뻔한 NSS와 아이리스의 대립과 함께. 성의가 없다. 준비가 부족하다.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 들어간 물량과 배우들의 연기와 완성된 영상이 안타까울 뿐이다.

재미는 있다. 그것은 확실하다. 못만든 드라마는 아니다. 다만 소재가 아쉽다. 시청자의 동의가 아쉬울 뿐이다. 납득하지 못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이 드라마의 설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계속 거슬리고 부대낀다.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실을 소재로 하려면 현실을 먼저 고려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재미란 그런 것들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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