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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3.01.03 09:26

대풍수 "다가오는 이인임의 최후, 역사의 격랑이 시작되다."

이성계가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드라마다.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이인임이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실각한 것이 1383년, 그러나 요동이 명의 지배아래 들어간 것은 그로부터 4년이나 지난 뒤인 1387년이었다. 이때까지 요동은 칭기즈칸의 공신 무칼리의 후예로써 대대로 요동의 군권을 세습하고 있던 나하추의 지배 아래 있었다.

원말 스스로 심양행성승상이 되어 군벌로써 독립해 있던 나하추는 한때 고려를 공격했다가 이성계에게 패퇴하기도 했었는데, 이때 이성계가 보인 실력에 깊이 감복하여 고려와 화친하여 고려조정으로부터 정 1품 삼중대광사도의 벼슬까지 받고 있었다. 그러나 1386년 명에 의해 북쪽으로 밀려나 있던 북원과 연계하고 있던 그를 토벌하고자 명태조 주원장이 장군 풍승에게 토벌을 명령하면서 결국 나하추는 이듬해 명예 항복하여 해서후에 봉해지게 된다. 요동에 대한 지배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계기인 동시에 바로 그 다음해 최영에 의해 요동정벌이 추진되는 배경이기도 했다.

즉 이인임(조민기 분)이 실각하게 되는 우왕 9년 1383년이라면 이성계(지진희 분)가 국경을 넘어봐야 국경 너머의 요동은 여전히 나하추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뜻이다. 고려조정으로부터 벼슬까지 받고 있었고, 그 이유가 다름아닌 자신을 패배시킨 이성계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면 이성계가 곤란을 겪을 일도 전혀 없었다. 명이 요동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도 그로부터 3년 뒤. 드라마는 이런 식으로 역사를 필요한 만큼 뒤틀기도 한다. 이인임이 실각하기 전 우왕(이민호 분) 자신이 최영(손병호 분)의 딸을 후비로 맞아들이는 장면도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성계의 정의감이나 최영의 우국충정보다는 더 이상 이인임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기기 시작한 우왕의 선택이 이인임의 실각을 결정하게 되었을 터였다. 최영의 말이 아니더라도 권력자가 부패하는 것이야 동서고금에 흔히 있는 일이고, 공민왕 사후 혼란스럽던 정국을 안정시킨 공이 분명 이인임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최영도 이성계도 아직 이인임을 대신할만한 위치에 있지는 못했다. 이인임이 제거된 뒤 우왕이 친정에 나선 것은 바로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왕이 될 것이기에 아니 왕이 되어야 하기에 그 모든 동기와 과정들이 이성계 한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우왕을 대신할 절대권력으로써 명이 나하추를 대신해 국경 너머에서 이성계를 기다리고 마는 이유인 것이다. 우왕을 대신해 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하기는 바로 그래서 절대악으로서 이인임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이성계가 왕이 되어야 하는 당위를 부여하기 위해, 이성계가 왕이 되고자 결심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 조선이 건국되고 정작 우왕이 신돈의 아들 신우가 되고 아들 창왕과 더불어 반역열전에 실리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고려사에 기록된 이인임에 대한 내용들 역시 그런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드라마이기에 이인임은 더욱 악해야 하고, 그 악을 수련개(오현경 분)가 더욱 독하게 나누게 된다. 이인임을 타락케 하고 죄를 짓게 만드는 악녀일 것이다. 마치 섹스피어의 비극에 나오는 비운의 타락한 영웅 맥베드처럼. 역사는 바로 이 두 사람에게로 수렴하게 된다.

최영이 결심한다. 최영의 결심이 중요한 이유는 이미 당시의 고려는 중앙군이 붕괴되다시피 하면서 장군 개인의 사병에 크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구의 발호로 인해 바닷길이 막히면서 거둬들인 세금마저 개경의 조정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고, 더구나 내륙 깊숙이까지 왜구에 의해 약탈당하면서 고려조정은 그 권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인임의 주도로 천도까지 논의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때 대대로 명문의 후예로써 군부에서도 인망이 두터웠던 최영의 존재는 그야말로 한 나라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최영이 움직이면 고려의 군이 움직인다. 이인임이 제대로 반항조차 못하고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제압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실제 역사속 정변은 드라마에서보다 빠르게 보다 간단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인임이 있어 고려가 안정될 수 있다. 당시 상황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납득가능한 이유일 것이다. 원이 북쪽으로 물러나고 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남쪽에서는 왜구가 극성을 부리며 고려와 고려의 백성들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격변하는 국제정세와 왜구의 현실적 위협 앞에서 갈수록 대처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던 고려조정이 그나마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이인임이 조정의 실권을 틀어쥐고 더 이상의 혼란을 막은 공이 결코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인임이 실각하면 그 자리는 누가 대신할 것인가? 역사에서 최영은 우왕을 바라보았고, 드라마에서 최영은 단지 우왕을 동정할 뿐이다. 하기는 죽었을 어미의 품에서 아직 응석을 부리고 있는 가엾은 우왕일 것이다. 이성계는 결국 왕이 되어야 한다.

너무 뻔한 고육지계였다.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이성계더러는 큰 일을 위해 아들을 볼모로 남겨두라 하고는 자신은 해인(김소연 분)을 구하고자 이성계와 맞서려 한다. 목지상(지성 분)은 대단히 이성적인 인물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욱 자신의 충동을 억제할 줄 안다. 그런데 그런 목지상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이성계에게 덤벼들다 결국은 매까지 맞고 이인임을 찾아간다. 목지상이 이인임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을 알기에 수련개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청자는 것이 목지상과 이성계의 계략임을 알 수 있다. 결국은 이인임의 측근을 이인임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서였다. 정치적으로 이인임을 제거하기보다 무력을 사용해 이인임을 배제하고자 한다. 역시 드라마로서는 이쪽이 더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다. 과연 이성계와 목지상은 이인임을 죽일 수 있겠는가?

이인임이 죽는다. 물론 역사에서 이인임이 죽는 것은 위화도 회군이 있던 5년 뒤 1388년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어찌 묘사될 지 알 수 없다. 살려두기에는 그는 너무나 강하고 후환이 두렵다. 이정근(송창의 분)마저 살아있다. 반야(이윤지 분)가 이정근과 손을 잡는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제 반야에게 이정근은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버렸다. 너무 늦은 사랑이지만 또한 너무나 위험한 사랑이기도 하다. 자신의 아들인 왕을 위협하는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 이정근이다. 그로 인해 다시 아들은 위험에 빠지고 만다. 어쩌면 이리도 반야라는 여자는 어리석을까? 야심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하지 못하다. 그녀의 비극이다.

참고로 이인임과 이성계는 원래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이인임의 동생 이인립의 아들 이제가 이성계의 사위다. 1차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한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방번과 방석의 동복누이인 경순공주의 남편이 바로 그였다. 이성계가 신덕왕후 강씨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나 그녀의 아들들인 방번과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한 것들이 이와 관계되어 있다. 개경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까지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신덕왕후 강씨와 그의 일족의 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부분들이 동북면에서 나고 자란 이방원등이 신덕왕후 강씨에게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원래 자신들의 것이어야 했던 것들을 신덕왕후 강씨와 그의 자식들이 모두 독차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그같은 갈등은 표면화되지 않고 있다.

아무튼 급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이인임이 마침내 이성계와 목지상이 준비한 함정에 빠지려 한다. 이인임의 최후가 다가오려 한다. 이인임의 다음은 다름아닌 우왕이다. 우왕을 넘어서야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고 태조가 될 수 있다. 우왕의 곁에는 최영과 그리고 그의 어머니 반야가 있다.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그리고 이어진 피비린내나는 대숙청까지. 최영이 죽고, 우왕과 창왕이 죽고, 고려왕조를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충신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의 막이 오른다. 사실상 이성계의 반대편에 선 거악 이인임이 쓰러진 이상 더 이상 이성계의 앞을 가로막을 이는 없다. 드라마가 끝나가려 한다. 역사와 함께. 다만 그 끝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역사에 목지상이라는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무튼 묘한 드라마다. 제목만 보자면 어쩐지 풍수지리나 도참에 대한 내용인가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결국 드라마를 채우고 있는 것은 탁월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것을 드라마로 흥미롭게 녹여내는 작가의 역량이다. 최소한 2012년 방영된 드라마 가운데 가장 역사에 충실한 드라마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위화감이 되어 시청자와의 거리를 벌려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묘하다는 것은 자칫 어느쪽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모두를 만족하는 필자가 있는가 하면 모두에 만족못하는 시청자가 있을 수 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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