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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2.24 08:55

남자의 자격 "준비되지 않은 권력의 무서움, 적나라한 실체를 보다."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준 칼처럼, 김준호에게서 가능성을 보다.

▲ 사진='남자의 자격' 로고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돈을 모아 칼을 하나 샀다. 아주 야무지고 날카로운 무광처리까지 된 휴대용 칼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놀다가 손을 베고 말았다. 무엇이든 벨 수 있을 것 같아 휘두르는 사이 어느새 자기 자신마저 베어 버리고 만 것이다.

권력이란 바로 그와 같다. 칼보다 더 단단하고 더 날카롭다. 더 흉폭하고 더 잔인하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당시 어렵게 돈을 모아 칼을 샀으면서도 그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저 좋아 보여서 샀고, 멋있어 보여서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그 날카로움에 취해버렸다. 하물며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나마 인정해줄만한 것은 김준호 한 사람 뿐이었을 것이다. 개그맨이다. 아니 코미디언이다. 1996년 SBS 공채 5기로 코미디에 입문한 이래 지금껏 콩트만을 해왔다. 예능이 대세가 된 지금도 <개그콘서트>의 터줏대감으로써 거의 간판격의 왕성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리얼버라이어티인 <남자의 자격>에 왔으니 콩트를 하지 말란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다른 사람들은 단지 한풀이였다. 김국진은 단지 그동안 독선과 독단으로 멤버들을 괴롭히던 이경규를 응징하는데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이경규 역시 자신이 권력을 잃었을 때 당해야 했던 수모를 돌려주는데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동안 <남자의 자격>에서 소외되어 왔던 막내로써, 그리고 매번 하차와 은퇴를 강요당하면서도 한 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소심한 비주류로써, 그러나 다만 윤형빈이나 이윤석이다 자신들이 당한 것을 되갚기에는 이번에도 역량이 부족했다. 그동안 너무 만만하게 보인 탓일까, 차라리 권력을 쥐었음에도 윤형빈과 이윤석을 얕잡아 보는 것이 있었다. 그나마 이윤석은 채 권력을 누려보기도 전에 김준호에게 자신의 권좌를 내어주고 만다.

거의 유일했다. 단순한 한풀이가 아닌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쓰여지는 권력이란 김준호가 거의 유일했을 것이다. 주상욱은 말할 것도 없다. 권력이 탐난다. 권력을 가지고 싶다. 그 이후의 계획따위는 없다. 그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탐하듯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멋대로 휘두른다. 아이에게 칼을 맡긴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다. <남자의 자격>이라고 하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본업인 콩트코미디를 선보인다. 그것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 재미있기도 했다. <남자의 자격>이 리얼버라이어티라면 김준호의 콩트야 말로 김준호만의 리얼리티일 것이다.

결국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준비도 없이 덜컥 권력부터 손에 쥐어진 때문이었다. 어찌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권력을 휘두르고 본다. 무조건 복종과 아부를 보이는 멤버들로 인해 브레이크조차 없다. 속도조절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권력을 쥐려 했는지, 권력이란 어떤 의미인지, 리더를 위해 준비된 소품조차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권력에 취했다. 준비되지 않은 개인에게 권력은 얼마나 위험한가?

사실 그래서 이념이 있는 것이다. 이념이란 주의다. 주의란 곧 보편이다. 그리고 보통이다. 나만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보편과 보통을 생각한다. 그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마치 자기 일처럼 고민한다. 이념이 나쁜 것이 아니다. 이념을 가지고 싸우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 콩트를 하지 말라는 이경규가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기회를 노려 자신의 주종목인 콩트를 선보이려 하는 김준호가 있다. 그래서 <남자의 자격>도 재미있다. 중요한 것은 재미이며 바로 그 재미를 극대화시켜주는 것이 다름아닌 김준호의 콩트인 것이다. 민주주의란 이와 같다.

그저 권력이 좋아서. 권력을 누리고 싶어서. 주상욱은 그런 점에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안좋은 예였을 것이다. 차라리 이경규의 폭주는 이해해도 주상욱의 전횡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오로지 주상욱 자신만의 권력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일방적이고 고립된 권력이었다. 반면 이경규의 독선과 독단은 평소 이경규 자신이 보여온 모습과 더불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보여지고 있었다. 최소한의 방향성이 있다. 그것도 이경규 나름의 이념이라면 이념일 것이다. 그보다는 고집이다.

과연 권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이전에 과연 권력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유일하게 그 답을 들려준 사람이 바로 김준호였던 것이다. 그래서 비록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가장 납득할 수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순간에조차 그는 개그맨으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아마 급조해서 만들어진 '남격촌'과 그 '리더'의 역할치고는 가장 안정되고 가능성도 엿보였을 것이다.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한참 웃었다. 그러면서 소름이 돋았다. 보는 자신은 이렇게 우스운데 정작 저 상황 속에 필자 자신이 있다면 과연 어떠할까? 대통령이라고 하는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뽑는 선거가 바로 직전에 있었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을 가진 개인이란 어떻게 변해가는가. 개인에게 권력이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가치로써 쓰이는가.

무서웠다. 소름끼치도록 섬뜩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었다. 김준호는 타고난 코미디언이다. 삐삐머리에 내복차림도 불사한 김태원의 노력도 재미를 더해준다. 이경규는 이경규 자체로써 웃기고 이윤석은 자신의 한심함으로 웃음을 준다. 주상욱은 천연덕스럽다. 김국진은 그런 상황에조차 어색한 선량함을 보인다. 가장 권력과 어울리지 않는다. 윤형빈은 막내생활이 너무 길었다. 조금은 짓궂은 막내역할도 좋았을 것이다.

지난주 이번주 오랜만에 <남자의 자격>다웠다. 재미있었고, 그러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현실이며 실제다. 인간이란. 그리고 권력이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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