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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12.13 09:15

대풍수 "공민왕의 비극적 죽음, 더 이상 고려에 왕은 없다."

소름끼치도록 설득력있는 비운의 왕 공민왕의 죽음, 감탄하다.

▲ 사진제공=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참으로 불행한 왕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어느 여염의 평범한 남자였다면. 왕전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한 개인이었다면. 그저 왕이라는 지존의 자리를 누리려고만 했어도 좋았다. 여전히 원의 그늘 아래에서 권문세족과 결탁하여 무난하게 영화만을 누리려 했었다면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민왕은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신념이 있었다.

고려를 원래의 자주국으로 되돌리겠다. 무신들에 이어 원을 등에 업은 권문세족에 의해 유명무실해진 왕권을 바로세우겠다.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권력을 틀어진 뒤로 권력자들의 전횡과 부패로 말미암아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고려의 내정을 바로잡겠다. 왕된 자의 의무인 동시에 왕으로서 자신의 것을 되찾으려는 의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즉위 첫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전민변정도감은 불과 즉위 1년만에 일어난 조일신의 난으로 인해 왕의 입지만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즉위 5년째 되는 해에는 외척인 홍언박 등을 내세워 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빼앗긴 땅을 되찾는 한편 원을 등에 업은 기씨일파 등의 권문세족을 숙청하는 등 일대 개혁을 단행하지만 이 또한 원의 반발과 홍건적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말았다. 신돈을 앞세웠던 마지막 시도 역시 신돈 자신의 타락과 기득권세력의 반발로 인해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원은 여전히 고려에 있어 부담스러운 존재였고, 수 백 년을 왕을 대신해 고려를 지배해 왔던 기득권 세력은 강성하기만 했다. 잦은 외침 또한 공민왕을 좌절케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노국공주의 죽음 때문만이었을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아내의 죽음이 공민왕이 끝내 주저앉고 마는 이유의 전부였을까? 노국공주가 죽고 후궁을 들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반야에게서 모니노라는 아들도 낳았다. 여전히 그는 왕이었고 비록 신돈을 앞세우기는 했지만 노국공주가 죽은 뒤로도 공민왕은 고려를 바꾸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 고단했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시련들이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 노국공주의 죽음은 단지 한 계기였을 뿐. 노인들이 좋았던 젊은시절을 추억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노국공주가 살아있었을 때는 뜻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남은 것은 껍데기뿐인 무기력한 자신 뿐이었다.

이성계(지진희 분)가 공민왕(류태준 분)을 몰래 찾아가 만나는 장면에서 등줄기에 소름이 돋으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역사속 공민왕의 실제 모습이었을 것이다. 노국공주의 죽음은 단지 핑계다. 무엇하나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그토록 강한 의지로 모든 어려움을 무릅써가며 고려를 바꾸고자 했음에도 무엇하나 뜻대로 이룬 것이 없는 무력한 왕을 위한 간절한 자기변명이었을 것이다. 노국공주를 사랑해서. 노국공주를 잃은 것이 슬퍼서. 그보다는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허전한 자신이 안타까워서. 겨우 버티고 있던 그의 의지가 그렇게 한순간에 허물어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왕도 무엇도 아니었다. 단지 지난날을 추억하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한때 왕이었던 존재였을 뿐.

이성계도 그것을 알았다. 물론 이인임(조민기 분)도 알았다. 공민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이인임은 왕을 죽인 것이 아니었다. 공민왕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그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왕에 대한 경외도 작은 연민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왕이되 왕이지 못한 이의 최후는 이렇게 초라하다. 무엇을 향한 미련인지 이인임을 올려다보는 공민왕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애잔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류태준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된다. 그는 완벽하게 자신만의 공민왕을 역사로부터 끄집어내어 시청자 앞에 데려다 놓았다. 이것이 바로 공민왕이다.

역사가 숨가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공민왕이 죽었다. 공민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 모니노의 뒤에는 어머니 반야(이윤지 분)가 아닌 권신 이인임(조민기 분)이 있다. 사실 역사에서 이인임의 우왕에 대한 충성심만은 진짜라 할 수 있었다. 아니 차라리 우왕을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다. 드라마에는 악역이 필요하고, 사서에도 끝내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숙청당한 이인임은 간신의 대표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가 악역을 맡는다. 목지상(지성 분)은 해인(김소연 분)과 함께 그와 맞서게 될 그 때를 준비한다. 이성계가 동북으로 돌아간다. 최영과 함께 이인임을 제거하는 주역이다. 최영의 딸로써 우왕의 비가 되는 영비를 어떻게 묘사하려는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제목만 대풍수이지 사실은 역사의 이야기다. 드라마로 재미있게 각색한 역사 그 자체의 이야기다. 최근 보기드문 역사드라마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풍수'라고 하는 소재를 앞세움으로써 역사를 풀어내는데 더 자유로워졌다. 더 과감해질 수 있다. 독창적이면서도 개연성있는 역사에 대한 해석이 드라마적인 재미와 녹아든다. 항상 감탄한다.

다만 아쉽다면 이정근(송창의 분)과 목지상의 대립이 그다지 분명하게 부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역사에 매몰된 탓일까? 목지상과 해인의 로맨스 또한 상당히 소홀하게 넘어가고 있다. 개인의 드라마가 약해지고 있다. 이인임과 함께 모략을 꾸미는 이정근의 모습이 그래서 공허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역사에 대한 묘사가 좋아서 지켜본다. 역사에 대한 묘사가 좋다는 것은 역사를 살아가는 개인에 대한 묘사가 훌륭하다는 뜻이다. 아마 앞으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비중을 할애할 듯 보이기도 한다. 예고편이 부쩍 흥미를 자극한다.

격동의 시대다. 시대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시대와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인임의 야심이야 어떻든 이정근은 단지 어머니 영지옹주(이승연 분)과 어려서부터 짝사랑해왔던 해인을 독점하고픈 욕심 뿐이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그같은 어쩌면 사소한 감정들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듯.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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