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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9.28 10:38

아랑사또전 "홍련과 방울, 중심을 잃은 은오와 아랑의 멜로..."

기대가 실망을 만들고 실망이 재미를 잃게 한다.

▲ 사진제공=im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사또란 참 좋은 자리다. 하는 일 없이 매일같이 논다. 아니 하는 일이 있다. 그야말로 처음으로 관아에서 실제 업무를 담당할 나졸을 뽑아 배치하고 있었다. 김은오(이준기 분)가 사또의 자리에 오른 이래 처음으로 사또답게 처리한 사또의 업무였다.

오죽하면 지난 26일 13회에서 시장에서 만난 백성이 새로운 사또인 김은오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할 때 뜬금없다 여기고 있었다. 송사를 하나 후련하게 처리한 것이 있는가? 아니면 민원을 받아 제대로 해결한 것이 있기를 한가? 지역의 실력자인 최대감(김용건 분)의 곳간을 연 것은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원래 사또의 업무와는 전혀 거리가 있다. 마치 이미지만으로 막연한 기대를 갖고 투표하곤 하는 어느나라의 유권자들과 닮아 있다고나 할까? 사또가 어떤 자리이고 무엇을 하는 직책인가 누구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입법을 제외한 사법과 행정, 군사의 모든 책임과 권한이 사또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재판을 하고, 행정업무를 수행하며, 세금을 걷어 조정에 보내고, 유사시 야전지휘관으로서 제 몫을 다한다. 임진왜란 당시 밀양부사로 있던 박진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본군의 침입이 있자 밀양의 관병들을 모아 항전에 나섰고, 초전에서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영천의 전투를 지원하여 최초의 승리를 거두고 있기도 했었다. 동래성에서 순국한 송상헌 역시 원래는 문신 출신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일개 귀신과 사랑싸움이나 하며 놀고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사또여야 할 이유란 전혀 없었다. 아니 차라리 사또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제목이 <아랑사또전>이니 김은오는 사또가 되었다. 그러나 사또가 되어 하는 일이란 전혀 없다. 하기는 그와 대척점에 있는 최대감(김용건 분) 역시 지역의 실력자라고는 하지만 사람도 세력도 없이 이름 뿐이다. 하다못해 해가 저물면 노비들까지 모두 외거로 돌아가고 집안이 텅 비어 버린다. 아무리 전직 고관이고 일대의 부가 모두 최대감의 소유라 할지라도 이렇게 허술해서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겠는가. 그러니 최대감의 대사조차 때로 공허하게 들리고 만다. 말이 사또이고 세도가니 그렇다 여기는 것이지 개인 김은오이고 개인 최대감에 불과한 것이다.

김은오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랑(신민아 분)은 또 어떤가? 그냥 미끼다. 도구다. 수단이다. 김은오가 아랑을 사랑한다. 주왈(연우진 분)이 아랑을 사랑한다. 홍련(강문영 분)이 아랑을 탐낸다. 옥황상제(유승호 분)와 염라대왕(박준규 분)이 그녀를 이용하려 한다. 그녀가 하는 것은 없다. 그저 사랑한다. 애절하게 사랑한다. 귀신인 이유는 그것이 헤어짐을 기약한 만남인 때문이다. 헤어질 것이 두려워 차마 사랑조차 솔직하게 마음껏 하지 못한다. 발칙할 정도로 발랄하던 코미디는 흔하고 지루한 멜로가 되어 버렸다.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대한 본능적 집착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자존과 자아에 대해 눈뜨게 되는 주왈의 변화조차 그래서 사소하게 느껴진다. 어차피 사랑에 빠진 사람이란 어딘가 이상해지고 마는 것 아니던가 말이다.

그나마 흥미롭다면 주왈에 대한 홍련의 감정일 것이다. 어째서 그녀는 주왈의 정혼자인 이서림에 대해 그토록 적의를 내보였던 것일까? 주왈에 대해 유독 감정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 또한 심상치 않은 예감을 갖도록 한다. 지금이야 중년을 넘어선 서씨부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홍련의 내면은 아직 젊은, 영원히 늙지 않는 선녀 무연이다. 아랑의 몸을 가지게 된다면 그녀는 젊은 아랑이 될 것이다. 무영이 말한 인간이 됨으로써 깨닫게 되는 감정이란 어쩌면 그것을 가리키고 있지 않을까?

오히려 주인공은 김은오나 아랑이 아닌 홍련인 듯하다. 이야기 역시 홍련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다. 김은오와 아랑조차 홍련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단지 주변에 불과하다. 홍련과 홍련의 본신인 선녀 무연과 그 무연과 인연이 있는 저승사자 무영(한정수 분), 그리고 배후의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의 이야기다. 그래서 김은오와 아랑의 사랑은 생뚱맞다. 기껏 고조되었던 극적긴장마저 그들을 만나면 풀어지고 만다. 풀어진 가운데 긴장하는 것이 아닌, 긴장한 것이 풀어지는 것이다. 꽤나 허탈하다.

방울(황보라 분)의 캐릭터가 그래서 빛을 잃는다. 흥미롭다. 책으로 신기를 배웠다. 무당 주제에 별 희한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 많다. 거의 무속의 백과사전 수준이다. 천상에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그녀의 선조들은 잘도 책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것을 찾아내는 방울도 방울이다. 어쩌면 그녀 역시 천재과였던 것일까? 차라리 홍련과 방울을 주인공으로 김은오와 아랑을 주변에 배치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기대는 사라지고 새로운 재미를 찾아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것도 꽤 재미있기는 하다. 이야기가 균형을 잃고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홍련이 주인공인가? 아니면 방울이 주인공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란 과연 무엇인가? 그저 사또라는 타이틀만을 앞에 내건 김은오와 아랑 두 사람과 귀신의 애절한 멜로였던 것일까? 그러기에는 설정과 제목이 너무 아깝다. 기대한 필자의 잘못이 가장 클 것이다.

홍련이 흥미롭다. 주왈이 흥미롭다. 은오와 아랑의 사랑도 흥미롭다. 천상과 지상과 영계의 이야기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아랑사또전>이 원래 하려던 이야기였던가. 기대가 재미를 만들고 실망을 불러일으킨다. 못만든 드라마가 아니라서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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