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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7.27 08:54

유령 "허무한 우연과 방심, 작가의 선택을 받다."

이야기속 영웅들이 승리하는 이유, 신이 정의를 선택하다

▲ 사진='유령'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허무하다. 이제껏 고조되어 온 긴장과 위기가 어이없이 방심과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 한 순간에 정리되어 버린다. 고작 이런 끝을 보자고 그동안 그토록 안달하고 안타까워하고 노력과 희생을 기울여 온 것이었던가? 기껏 기대를 가지고 지켜본 결과가 겨우 이런 것이던가?

이미 김우현, 아니 박기영(소지섭 분) 자신이 신경수(최정우 분) 수사국장 앞에서 그가 조현민(엄기준 분)에게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었다. 그리고 김우현은 사이버수사 1팀에 소속되어 있었고, 권혁주(곽도원 분) 이하 사이버수사 1팀은 그동안 남상원과 신효정의 죽음에 대해 수사하며 조현민의 턱밑까지 바짝 쫓아와 있었다. 당장 대형팀의 존재를 알고 세이프텍의 백신에 해킹프로그램이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태균(지오 분)이 세이프텍 백신의 베타버전이 들어 있는 하드를 분석한다는데 아무런 대비도 없을 것이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설사 그런 확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경찰이 항상 2인 1조로 행동하도록 원칙을 정한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만만하다고 해도 그 또한 성인남자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성인남자를 최소한의 소란만으로 짧은 시간 안에 제압하기란 어지간한 프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소한 유강미(이연희 분)가 처음 등뒤에서 총을 겨누며 나타났을 때 도주를 시도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주었어야 비로소 그에 걸맞는 실력이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강응진(백승현 분)의 손에는 그 흔한 무기조차 들려 있지 않았었다. 이태균의 저항이 격렬해서 싸움이 조금만 길어지면 어떤 다른 변수가 나타나게 될 지 모른다. 그들은 지금 범죄를 저지르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다못해 아이들이 서리를 할 때도 망보는 아이가 있다. 더구나 이태균은 경찰이다. 경찰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이태균의 주위에 다른 경찰이 있을지 모른다. 현역경찰로써 다른 경찰들에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이태균 역시 가지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상황이 길어지면 자칫 경찰이 들이닥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야 만일의 상황과 맞닥뜨리더라도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대책없이 낙천적인 '대형'팀은 그런 위험한 임무를 자신만만하게 혼자서 처리하려 한다. 그렇다고 혼자서 총을 겨누며 다가오는 유강미를 제압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하기는 조현민부터가 그렇다. 아무리 주가가 폭락하고 빚더미에 앉았다고 모든 사람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고, 절망과 체념 속에서 그래도 죽지 못해 연명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것도 나름의 복수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단지 게임중독자라는 이유만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칼부터 꺼내들 것이라 확신하게 되는 근거는 필요할 것이다. 칼을 꺼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휘둘러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려 할 것이다. 그렇게 조현민의 계획부터가 즉흥적이고 낙천적이며 안이하다.

과연 박기영을 죽이려 하는가? 아니면 경찰에 체포되도록 하여 원래의 정체를 밝히고 의도했던대로 신효정의 죽음의 책임까지 물어 그를 무력화시키려 하는가? 박기영을 찾아간 자체도 대책이 없었다. 그 순간 박기영을 죽이거나 최소한 무력화시켰어야 했다. 김우현의 아이를 미끼로 협박을 할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박기영이 자신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족쇄를 채워야 했었다. 협박만으로는 경찰과 협력하고 있는 박기영을 굴복시킬 수 없다. 더구나 박기영에게는 조현민에게 불리한 치명적인 증거들이 여럿 있었다. 차라리 박기영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 하던가. 의심하는 것과 확신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확신을 박기영에게 주고 말았다.

방법이야 많다. 오히려 열쇠는 박기영이 쥐고 있었다. 그는 그 열쇠를 활용해 조현민의 협박을 바로 역으로 치고 들어간다. 협박을 하려면 그런 시도까지도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최승연(송하윤 분) 기자를 납치한다거나. 가장 취약한 인물일 것이다. 박기영에 대해 조사했다면 최승연의 존재도 당연히 알았어야 했다. 박기영과 가까이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주의로부터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조현민은 그보다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어 김우현의 아들을 인질로 삼는 방법을 선택했다. 체포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 그가 분노하는 것은 아버지를 죽임에 이르게 한 이 사회의 거짓된 정의다. 아버지에게 강요된 누명을 벗기고 결백을 밝힌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다시 한 번 진실을 밝혀 심판하고자 한다. 조현민 자신마저 희롱하려 한다. 의도한 죄였지만 자신 또한 죄인이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그동안 조현민에게서는 단 한 순간도 죄에 대한 후회나 자책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조현민이 인간이 되려 해봐야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제작비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국내굴지의 세강그룹의 대표가 직접 인질극을 벌여야 할 정도로 그의 주위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다. 강응진도 마찬가지다. 처음의 '대형'팀의 규모로 본다면 한두사람 정도 더 그를 따라나설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트레일러에서 작업하고 있는 멤버는 고작 두 사람이 전부다. 조현민이 직접 나서야 하고, 강응진이 혼자서 해결하려 나서야 하는 상황처럼. 모든 게 허술하다.

'대형'팀을 잡는 과정도 힘빠지기는 마찬가지다. 하필 그 순간만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대형팀의 권도영(이원근 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하필 박기영의 해킹프로그램이 그의 컴퓨터에 침투하고 있었다. 겨우 해킹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차단했을 때는 그들이 타고 있는 트레일러가 박기영의 앞을 지나간다. 어떤 치열한 머리싸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먹고 먹히고 뚫리고 뚫는 해커들의 싸움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연과 방심으로 인해 허무하게 결론이 내려지고 만다.

신이 대형팀을 버렸다. 작가가 대형팀을 버렸다. 끝낼 때가 되었다. 이제 곧 드라마가 끝날 때가 되었다. 정리를 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대본을 쓰고 촬영하는 드라마에서 더 이상의 고도의 장치나 구조가 나타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연에 맡긴다. 방심에 맡긴다. 신의 사랑을 받는다. 작가의 선택을 받는다. 정의가 승리할 수 있는 이유다. 악이 갖는 거짓된 힘은 작은 파탄으로도 큰 균열을 만들며 스스로 허물어져버리고 만다.

흥미가 사라졌다. 모든 싸움은 끝났다. 일방적이다. 작가가 주인공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신이 조현민을 버리려 하고 있다. 이미 예정된 싸움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몰아서 한꺼번에 예정된 결론으로 몰아가려 한다면 드라마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과연 조현민에 대해 얼마나 연민하고 얼마나 분노하고 증오하게 되는가만 남는다. 그리고 김우현이 되어야 했던 박기영의 선택도 남는다. 그는 박기영으로 돌아가게 되는가? 아니면 김우현으로 남는가?

권혁주와 최승연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미친소에게도 봄날은 온다. 유강미와 박기영의 관계 또한 소리소문없이 여기까지 왔다. 불친절한 작가다. 사실상 러브라인은 없는 것과 같다. 과정은 없고 결론만 있다. 드라마 자체가 유령이다. 과정은 없고 결말만 있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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