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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7.26 08:36

각시탈, "조선인 채홍주에게 제국주의의 이유를 묻다."

마침내 목단이 각시탈의 정체를 알아차리다

▲ 사진='각시탈' 포스터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아, 극동은 지배하고 태평양을 지배하겠다는 욕망? 당신은 그걸 갖기 위해 싸우나? 참 불쌍한 여자군!"

어떻게 근대의 시민사회는 제국주의적 팽창과 만나게 되는가? 전근대사회에서의 정복전쟁과 근대의 제국주의적 팽창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달리 근대의 제국주의를 시민제국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국가적 욕망이 아니다. 군주 개인의 원대한 야망 같은 것이 아니다. 단지 이익을 찾아 떠나간 것이었다. 더 큰 이익을 찾아 국경을 나서고, 국경 너머에서도 자신의 이익이 지켜지기를 바란 것 뿐이었다. 그것을 정부가 보장해준다. 때로 무력을 동원하고, 때로 심지어 해당지역의 정부를 전복하고 원주민을 노예로 전락시키면서까지. 물론 시민은 그같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막대한 세금으로 보답한다.

극동을 지배하겠다. 태평양을 지배하겠다. 대동아공영을 이루겠다. 그러나 시민들은 묻는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가? 만주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 태평양을 상대로 사업을 더 확장시키고 싶다. 아시아에서 유럽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을 일본인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적극적으로 정부에 로비를 하고, 군부에 정치자금을 제공한다. 심지어 스스로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것이 근대의 제국주의다.

어차피 영토를 목표로 한 전쟁이란 아주 고대에서부터 있었다. 땅을 넓히고, 백성을 늘리고, 국가의 위상을 높인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군주 개인의 야심이거나 소수 지배계급의 욕망에 의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아니 바로 그같은 욕망의 주체가 소수 지배계급에서 시민 자신으로 확장된 결과인 것이다. 국민국가가 나타나고 국민이 국가의 주체가 되면서 국가적 욕망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다만 주체인 시민으로서 그같은 침략과 정복의 가운데 그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누리려 한다. 아니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

일본제국을 등에 업고 복수를 하려 한다. 일본제국에 의해 지배되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이용해 자신의 사랑을 이루려 한다. 일본인이고 조선총독부 경무국 경부다. 목단(진세연 분)은 단지 식민지 조선의 한 여성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녀의 아비는 무엄하게도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지려 했던 불량한 조선인이다. 총독에 의해 사형이 선고된 테러리스트다.

그래서 기무라 슌지(박기웅 분)는 묻는 것이다.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극동을 차지하고 태평양을 지배해서 채홍주(한채아 분)가 얻게 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기는 채홍주는 일본인이 아니다. 원래는 조선인으로 일본인의 양녀가 되어 일본인으로 행세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인이 되고 싶어할지언정 그녀의 정체는 아직 일본 안에 없다. 당장이라도 양아버지인 우에노 히데키(전국환 분)가 자신에게 실망해서 다시 조선인으로 돌아가라 명령할 것을 두려워한다. 단지 막연하게 맹목적으로 우에노 히데키의 야망을 따르려는 것에 불과하다.

역시 콘노 코지(김응수 분)와 키쇼카이가 서로 대립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콘노 코지는 고등교육까지 받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근대의 인물이다. 그에 비해 키쇼카이의 회장 우에노 히데키를 비롯 콘노 코지와 대립하고 있는 기무라 타로(천호진 분)는 여전히 봉건적인 사고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다. 일본정부의 지시를 받아 총독(송민형 분)이 추진하고 있는 내선일체와 정복자로서 조선의 서울에 수도를 옮기려는 키쇼카이의 입장 또한 부딪힌다. 안타깝게도 아니 우리로서는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그같은 충돌의 끝에 승리한 것은 비합리적인 관념과 감상의 정복론을 주장하던 군부의 과격파였다. 일본제국은 파멸로 향해간다.

콘노 코지 정도는 아니지만 소학교 교사를 할 정도로 배울만큼 배웠고 깨어있기도 깨어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 형의 영향을 받아 일본인이라고 하는 자신의 위치에 누구보다 충실하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일본인으로서 조선이 일본의 지배 아래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래서 그는 조선인 아이들을 상대로 소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애완동물 다루듯 조선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유형의 인물일 것이다. 합리적이지만 가혹하다. 친절하지만 잔인하다. 역시 일본 국내에서 기무라 슌지와 같은 이들의 입지는 매우 좁았다. 헛된 구호보다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기무라 슌지가 더 많이 있었다면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화가 난다. 그 전에 부끄럽다. 그런 과거가 있었는가? 일본인 경찰에게 어미가 고문당하고 그 자신마저 협박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처참하게 널브러진 어미를 보고 일본인 경찰들은 웃고 있었다. 기무라 슌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다. 목단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렇다고 자신을 거부하는가 화가 난다. 자신은 일본인이고 목단은 조선인이다. 자신은 경찰이고 목단은 죄인이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안다. 일반적인 패턴이다. 그의 진심이 자칫 왜곡되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그의 목단을 향한 마음은 아직까지도 진심이다. 단지 그는 일본인이고 목단은 조선인일 뿐.

결국 목단에게 각시탈의 정체를 들키고 말았다. 고전적이다. 여주인공이 위기에 놓이면서 주인공이 그를 구하려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만다. 상황조차 작위적이다. 채홍주가 가츠야마 준(안홍준 분)을 시켜 목단을 납치하고, 그것을 우연히 보게 된 이강토(주원 분)가 각시탈이 되어 그녀를 구하려 한다. 액션이 유치했다. 일단 동선이 너무 길었다. 군더더기도 많았다. 목단과 채홍주가, 각시탈과 마츠야마 준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특히 목단과 채홍주 사이에 버려지는 동작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었다.

절박함이 없었다. 치열함이 없었다. 일격에 상대의 목숨줄을 끊어놓겠다는 처절함이 없었다. 짜여진 묘기를 그저 방송에 내보내야 하니 억지로 보여주는 그런 느낌이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각시탈은 부상을 입고, 채홍주와 가츠야마 두 사람을 상대하며 목단을 탈출시킨다. 죽을 지경이 되어 겨우 돌아온 것을 목단은 탈을 벗겨 정체를 확인한다. 차라리 기무라 슌지가 이강토를 의심하며 의식할 때 더 긴장감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게 된 인물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우병준(김규철 분)이 있다. 자신의 손에 죽은 형의 유지를 물려받아 각시탈이 되었건만 형이 각시탈이 되어 하던 복수는 어느새 개점휴업상태다. 그보다는 기무라 슌지와 목단, 각시탈 사이의, 여기에 담사리(전노민 분)까지 더해지며 그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느낌이다. 덕분에 액션이 사라졌다. 호쾌하게 구일본제국과 구일본제국에 협력하던 부일배들을 혼태주는 액션히어로물에서 목단을 사이에 둔 기무라 슌지와 이강토의 멜로스릴러가 되어 가는 모양새다. 스릴러보다는 멜로에 더 방범을 찍는다. 연속성이 없다는 점이 깊은 밤 정원의 연못에서 이루어지던 아름다운 격투장면조차 허무하게 보이도록 했을 것이다.

단지 같은 조선인이라는 것만으로 담사리는 이강토를 믿어 버린다. 같은 동포다. 물론 동지들이 자기를 구하려 왔을 때 동지들을 도와 일본인 경찰을 쏘아 죽이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부터도 담사리는 이강토를 연민하며 딸인 목단을 그에게 맡길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있을까.

미개한 조선을 근대화시키기 위해 구일본제국은 조선을 합병했다. 실제 구일본제국과 조선내 동조자들이 내세우던 명분이었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근대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조선은 반드시 근대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일본의 힘을 빌어 일본을 본받고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나아가 조선인 또한 일본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민족개조론으로 이어진다.

차라리 진지했어야 했는데 희화화되어 보이는 것이 문제를 가볍게 만든다. 고민이 없으니 맹목적이기 쉽다. 어째서 반일이 아닌 항일인가. 물론 그래봐야 일본 역시 우에노 히데키와 키쇼카이의 존재 처럼 전근대적인 잔재들이 야만과 함께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그것이 태평양전쟁의 원인이었다. 패전의 원인이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이겠는가? 친일파 또한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일 것이다.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벌써 고비 하나를 넘겼다. 마침내 목단이 각시탈의 정체를 알았다. 이강토 역시 채홍주의 정체를 알았다. 기무라 슌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호쾌할 수 없는 드라마지만 그래도 액션만큼은 호쾌하기를 바란다. 여름을 날려버릴 수 있는 시원한 액션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그런 것을 많이 기대했었다. 벌써부터 많이 아쉽다. 지금으로선 아직 많이 답답하다.

이강토가 각시탈이 되고부터 힘이 빠지고 있다. 채홍주도 보다 전면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기무라 슌지와 이강토가 본격적으로 부딪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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