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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6.29 10:24

유령 "유령이 만들어지는 지점, 사람은 현실에도 관념에서도 살아간다"

사람이 유령이 되는 이유, 증오와 탐욕의 독이 인간을 불사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사람이 죽으면 양신인 백은 하늘로 올라가고 음신인 혼만이 땅에 남게 된다. 양신이란 선천적인 것이다. 그래서 정한 것이다. 음신이란 후천적인 것이다. 그래서 부정한 것이다. 땅위에서 살면서 묻은 때와도 같다.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이 부정한 것이 되어 세상을 떠돌기 시작한다. 흔히 귀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달리 유령이라고도 부른다.

어째서 유령은 만들어지는가? 실재와 존재의 사이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그 무엇도 아닌 채 떠도는 그들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조현민(엄기준 분)과 세강그룹의 총수이며 그의 작은아버지이기도 한 조경신(명계남 분)의 사이에는 남모를 사연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필경 탐욕일 것이며, 원망이고 증오일 것이다. 자신의 육신마저 불살라 귀신이 되고자 하는 지독스런 원념이다. 살인혐의로 체포된 조재민(이재윤 분)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 귀신보다도 더 귀신같이 섬뜩했다. 도대체 과거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또 다른 유령의 정체도 밝혀졌다. 과연 그 유령에게는 어떤 절박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형사로서 유능한데 그러나 여전히 한직을 떠돌고 있다. 차라리 아예 겉돌고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디지털과는 전혀 거리가 먼 현장통으로써 굳이 사이버수사대에 소속되어 있는 중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조각 하나가 눈에 띈다면 그것은 이미 의도된 것이다. 권혁주(곽도원 분)처럼 그 과정이 투명하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처음부터 팬텀은 사이버수사대 안에 강력한 아군을 숨겨두고 있었다. 한 사람이라면 다른 용의자가 있을 테지만, 두 사람 이상이라면 반드시 한영석(권해효 분)은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의 용의자는 당연히 권혁주로 하여금 남상원의 죽음에 대해 다시 수사하도록 유도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조현민의 계획은 바로 남상원의 죽음에 대한 경찰의 재수사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면 권혁주는 굳이 남상원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억은 물론 그 정체마저 모호한 김우현(소지섭 분) 또한 언제 남상원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을 터였다. 무엇보다 조재민이 세강그룹의 부회장으로 확정되기 전에 그를 끌어내려야 했다. 누구일까? 어쩌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 네 명, 다섯 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령이다.

아예 노골적이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분명 남상원을 죽인 것은 조현민 자신이다. 어째서 그는 남상원을 죽였는가? 그가 어떻게 남상원의 죽음을 조재민이 그런 것처럼 위장했는가는 이미 드라마 가운데 모두 상세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조현민이 의도한 것과, 그 의도한 것이 엇나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처음의 의도가 꼬이고 엇갈리며 어느새 김우현과 만나게 되었다. 정확히는 김우현이 되어 있는 박기영과 만나고 있었다. 조현민과 그 주위에서도 김우현에 대한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가지고 있다. 진정으로 조현민이 의도하고 있는 바로 그것과 운명처럼 김우현이 아닌 박기영은 서로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조현민에 협력하고 있는 모두는 단지 세강그룹이라고 하는 대기업의 경영권에만 관심을 가진 것일까?

아무튼 존재감이 없다.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무서움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굳이 억지로 조현민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지 않는다. 말은 최소한만. 표정도 최소한만. 행동도 최소한만. 진정 유령과 같은 존재다. 소리없이 다가와 죽인다. 흔적도 없이 다가가 죽인다. 그는 차라리 저주와도 같다. 현실의 잔인한 살인사건이 무존재의 담담함과 어울리며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이미 그는 조현민 자신이 되어 있다. 드라마에 어울리는 유령이 되어 있다. 김우현도 아니고 박기영도 아닌 그가 그런 조현민을 만난다.

반전 아닌 반전이었다. 충분히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한 시간이라는 미묘한 차이는 소름끼치는 긴장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두 시간도 아니다. 10분도 아니다. 딱 한 시간이다. 딱 알아차릴 만큼의 여유만을 두고 한영석은 김우현에 앞서 남상원의 노트북을 가져간다. 바로 뒤쫓는다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쫓지 않기에는 미련이 남는다. 딱 그 만큼만 앞서 있다. 조현민과 김우현의 거리이기도 하다. 한영석과 조현민이 만나는 순간 그것은 또다른 반전의 예고가 된다. 조현민이 바라는 것은 세강그룹보다도 더 큰 어떤 염원일 것이다.

조금씩 조현민이 어떻게 경찰로 하여금 - 특히 권혁주로 하여금 조재민이 남상원을 살해한 범인이라고 여기도록 유도했는가가 나온다. 권혁주가 이를 간다. 그러나 그 순간 김우현은 그같은 함정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경찰이 아니었던 때문이다. 경찰이 아닌 해커였기에 그는 정상적으로 사건을 파헤쳐간다. 아직은 어렵다. 조재민에게 씌워진 혐의는 무겁고, 검찰 또한 이미 조현민의 편이다. 경찰로서 권혁주는 무력감과 동시에 분노를 느낀다. 자신을 농락한 자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차라리 환희에 들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적을 물어뜯고자 하는 맹수의 웃음이었다.

유령과 다른 유령과 또다른 유령, 그러고 보면 권혁주만이 인간이다. 그만이 오롯이 땅을 딛고 앞을 보며 살아간다. 사이버세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는 기호 뿐이다. 기의 없는 기호는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관념의 세계에서 기호란 의도를 갖는다. 의지가 기호를 결정한다. 관념이란 의지가 지배하는 세계다. 권혁주는 차라리 짐승과도 같다. 현실을 떠나 살아갈 수 없다.

단순한 사이버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이버세계란 인간의 관념의 연장이다. 사이버가 있기 이전에도 인간에게는 관념의 네트워크가 있었다. 그것을 단지 지금은 사이버로 치환한다. 그것이 시작이었으며 이제 그 끝에 이르고 있다. 사람은 현실에도 관념에도 살아간다. 바로 그 현실과 관념의 사이에도 유령은 산다. 온전한 현실도 온전한 관념도 아닌 경계로써. 그림자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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