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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6.28 08:33

각시탈 "마침내 돌아선 이강토와 기무라 슌지, 식민지의 모순을 묻다."

기무라 슌지,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하여 조선과 조선인을 탄압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일본인과 조선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총독부의 총독이 있고, 그와 호형호제하는 경무국장이 있으며, 그와 대립하는 키쇼카이와 기무라 타로(천호진 분)도 있다. 차라리 이시용(안석환 분)이나 우병준(김규철 분)은 민족을 명분으로 각시탈과 대립한다. 그러나 이들은 같은 민족이고, 같은 국가에 충성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입장이 달라 함께 공존하지 못한다. 그들의 대립으로 이강토(주원 분)와 기무라 슌지(박기웅 분)의 오랜 우정도 끝난다.

결국은 인간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민족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서로 다른 민족이더라도 오랜동안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다 보면 하나의 민족으로 녹아들기도 한다. 민족이 달라도 서로 친구가 될 수 있고, 또 서로 연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기도 한다. 전쟁중에도 적국의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리는 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흔한 이야기다. 당장 이시용(안석환 분)이나 우병준(김규철 분)과 같은 이들 또한 조선인임에도 일본인인 기무라 타로와 지나칠 정도로 잘 어울리고 있는 중이다. 기무라 타로는 더구나 원래의 조선 이름을 버리고 사토 히로시라고 하는 일본 이름을 갖고자 하는 이강토에게 자기는 어떤 경우에도 기무라 타로일 것이라며 꾸짖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과 이념을 떠나 함께 어울린다. 어째서?

어쩌면 역설일 것이다. 기무라 타로와 우병준 등이 함께 어울리기에 각시탈은 그들을 심판하려 한다. 각시탈이 그들을 심판하려 함으로써 우병준 등은 더욱 기무라 타로와 밀착한다. 경무국장 곤노 코지(김응수 분)가 기무라 타로를 공격하려 하자 곤노 코지의 명령을 받든 이강토는 기무라 슌지와 서로 원수가 된다. 기무라 슌지는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다시 기무라 타로와 연결되어 있던 우병준 등을 찾아가 기무라 타로가 속한 조직에 접근한다.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편을 나누게 된다. 내 편과 네 편. 안타깝게도 이강토는 내 편이 아니다.

그렇게 벽을 쌓는다. 그렇게 깊은 골을 판다. 서로 넘을 수 없다. 서로 넘으려 해서도 안된다. 서로 넘으려 한다면 그것은 변절이다. 배신이다. 기무라 타로가 이강토를 경멸하는 이유다. 어쩌면 그는 우병준과 이시용 등에 대해서도 마음속으로 깊이 경멸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각시탈이나 곤노 코지에 비한다면 그들은 그가 쌓은 벽과 골의 안쪽에 있다. 그 순간 그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또한 기무라 타로에게 있어 진심일 것이다. 어째서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다툼이 끊이지 않는가? 조선인과 일본인이 다투고, 다시 일본인과 일본인이, 조선인과 조선인이 서로 다툰다. 그러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이 하나로 어우러지기도 한다.

어쩌면 드라마 초반 목담사리(전노민 분)가 재판정에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해 일갈한 장면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민족과 민족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에도 기원이 있다면 민족간의 다툼과 갈등에도 기원이 있다. 일제강점기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식민지를 침탈하고, 식민지로써 침탈당하고, 지배하고, 또한 지배당하고, 그 모든 모순과 부조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민족을 나누고 그것을 경계로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고 다투고 차별하는 그 모든 이유들에 대해 묻게 된다. 어째서 서로 가장 신뢰하는 친구사이이던 기무라 슌지와 이강토는 원수가 되었을까? 목단(진세연 분)이 오랜 우정을 쌓아 온 기무라 슌지에게 결별을 선언해야 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이강토가 목단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다.

단지 일본인이고 조선인이라고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일본인이기 때문이고 조선인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지배하고 있었다. 일본인은 1등 국민이었으며 조선인은 2등국민이었다. 철저히 차별받고 지배당하던 입장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기무라 슌지는 바로 그런 일본인으로서, 그것도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첨병이던 경찰서장을 아버지로 두고 조선에 발을 딛게 되었다. 과연 그런 기무라 슌지의 눈에 비친 조선이란 어떤 대상이었을까?

그런 사람들을 본다. 아직 새끼일 때는 작고 귀여우니 일단 데려다 기른다. 그러다가 점차 덩치가 커지고 전과 같은 귀여운 모습을 잃게 되면 그대로 내다버린다. 아예 더 이상 자라지 말라고 먹는 것을 강제하기도 한다. 영양실조에 걸려 성장이 멈춘 모습을 보면서 기뻐한다. 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털도 날리고, 제법 말썽도 피우고, 때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람에게 대들기도 한다. 살아있는 생명으로써 너무나 당연한 모습들일 테지만 그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멋대로 가진 기대와 환상이 깨어지며 심지어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마저 나온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싫다. 인간이고 동물일 테니까.

지배자다. 일본인이고 조선과 조선인은 당시 일본에 의해 지배되어지고 있었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 굽어보는 위치에 있다. 참으로 가엾다. 참으로 곱다. 그런데 발톱을 세워 할퀸다. 으르렁거리거나 하악거리는 것은 오히려 귀엽게 보아줄 수 있는데 자신을 향해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짖으려 한다. 어떨까? 그 귀여운 동물에 의해 형제가 다치는 모습을 보아야 했을 때는. 형제가 그 동물에게 어떻게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동물이 형제를, 어쩌면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랑스러운 것은 자기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다.

어쩌면 둘 다 진실인지 모른다.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하는 소학교 교사 기무라 슌지와 불령한 조선인을 색출하고자 조선인을 억압하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경부 기무라 슌지는. 그에게 조선과 조선인이란 처음부터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작고 약하기에 사랑스럽다. 그런 조선인이 형을 죽였다. 위협적인 존재로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은 본능이다. 어긋나고 일그러진 것은 바로잡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원인은 무엇인가? 각시탈이며 불령한 선인이다. 만일 그들만 제대로 처리한다면 조선과 조선인은 원래의 그가 사랑하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리라.

이강토에 대해서도, 이강토가 전혀 기무라 슌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을 때는 그는 민족을 뛰어넘은 둘도 없는 자신의 친구였다. 하지만 그런 이강토가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더구나 이강토에 의해 아버지 기무라 타로가 체포되고 취조받는 상황을 대하며 그는 이강토에 대한 우정과 신뢰를 너무나 쉽게 저버리고 만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것처럼 너무나 쉽게 원수로 돌변하고 만다. 그는 과연 이강토를 친구로 생각하기는 했을까? 무작정 일본인들 사이에 뛰어들어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는 이강토의 모습에서 그저 비맞은 새끼강아지를 보는 듯한 연민과 동정을 떠올려 버린 것은 아닐까?

아마 이강토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무라 슌지가 그를 떠나기 전에 먼저 그가 기무라 슌지를 떠났다. 물론 아직 기무라 슌지는 이강토가 기무라 켄지를 죽인 사실을 모른다. 이강토는 기무라 슌지의 형 기무라 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도 기무라 슌지를 보는 이강토의 표정에는 조금의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보이지 않는다. 예정되어 온 일처럼 기무라 슌지는 일본인이 되고 이강토는 조선인이 되어 그와 맞선다. 일본인 기무라 슌지라서가 아니라, 조선인 이강토라서가 아니라, 일본인이고 조선인인 당시의 현실이며 필연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아무튼 덕분에 기무라 타로와 콘노 코지 국장과의 신경전이 점입가경을 이룬다. 쵸슈번 출신이라 했다. 쵸슈번이라면 당시 일본의 육군을 장악하고 있던 실세 가운데 하나였다. 메이지유신을 주도했고, 메이지유신 이후 군부를 장악하며 사츠마번과 함께 권력을 독점했다. 그 가운데 콘노 코지는 동경제국대학에서 법학부까지 마친 엘리트 가운데 엘리트였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낭인이란 주군을 잃고 떠돌던 무사를 일컫는 말이다. 메이지유신으로 세상이 바뀌며 많은 무사들이 소속과 신분을 잃고 표류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었다. 모든 것을 독점한 채 누리는 이와 그것을 바라보며 힘들게 겨우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 같은 일본이지만 둘이다. 누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중심에 있는 자와 주변에 있는 자. 주류와 비주류. 차라리 조선인인 이강토가 콘노 코지에게는 가깝다.

목담사리가 다시 조선으로 들어왔다. 같은 일본인으로서 경찰의 업무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인 기무라 타로와 콘노 코지와는 달리, 서로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어느새 목담사리와 각시탈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들 사이에는 목단이 있다. 그리고 조국 조선이 있다. 과연 이강토에게 조국에 대한 의식이 있는가는 모르겠다. 조국 조선과 조선인이라고 하는 민족의 그의 머릿속에 있기는 한 것일까? 하지만 복수를 위해서라도 그는 목담사리와 같은 길을 가야 한다.

그저 땅 한 마지기라도 자기 땅을 일구어 아내와 딸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이강토 역시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형과 아무 근심없이 행복하게 웃으며 살 수 있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이 목담사리에게 투사가 되라고 말한다. 이강토에게 영웅이 되기를 강요한다. 현실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하고, 꿈을 꿀 수 있기 위해서라도 희생해야 한다. 아내마저 희생시켰다. 딸마저 희생시키려 한다. 어머니와 형이 죽었다. 비극을 말한다. 조선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이며 조선인 가운데 배신자가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조선총독 쯤 되면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하기는 역대 9명의 조선총독 가운데 5명이 수상을 역임했고, 더구나 9명 모두 당시 구일본제국의 실세 가운데 실세이던 육군과 해군의 대장출신이기도 했었다. 도박에 빠져 살고, 여자나 밝히는 듯 보여도, 기무라 타로나 그 주위의 부일배들 따위야 그저 우습다. 수가 높다. 오히려 콘노 코지보다 앞서 기무라 타로와 그 주위의 의도를 읽고 이용한다. 분명 그 또한 각시탈의 적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재미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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