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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6.15 09:50

각시탈 "원죄와 소명, 정화와 부활, 그러나 각시탈이 너무 늦다!"

너무 긴시간 신현준이 각시탈이었던 부담을 우려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원죄란 곧 소명이다. 죄란 빚이다. 영혼과 존엄에 진 빚이다. 그 빚을 갚기 전까지 그는 결코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모든 빚을 다 갚았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빚은 영혼과 존엄에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난 뒤였을 것이다.

굳이 이강토(주원 분)가 친형인 이강산(신현준 분)을 자신의 손으로 쏘아 죽이고 그를 대신해 각시탈을 쓰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친혈육인 형을 죽였으니 그 죄를 갚지 않으면 안된다. 형을 대신해 각시탈이 되어 그 빚을 갚기 위해 나선다. 어머니(송옥숙 분)마저 일본인 경부 기무라 겐지(박주형 분)의 손에 죽으며 복수라고 하는 당위마저 만들어졌다.

당연히 복수를 해야 한다. 복수를 해야 하는데 자신 또한 그 복수의 대상이 된다. 복수란 당위이며, 죽은 형의 유지이며, 자신의 죄를 일깨우는 행위다. 복수를 마치면 통쾌해야 할 텐데 오히려 남겨진 죄만 무겁게 자신을 내리누를 뿐이다. 극한의 비극과 출구없는 암울함. 그런 가운데 간절한 소명은 비장함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사실 하나의 전형이기도 하다. 원죄를 짊어진 영웅이란.

다만 문제라면 비극이 중첩된 만큼 영웅이 가장 중심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원죄의 무게 만큼이나 주인공의 영웅적 소명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그런데 어느새 이강산이 각시탈이 되어 버렸다. 무려 6회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무려 6회의 분량이 방영되는 동안 주인공 이강토가 아닌 이강산이 각시탈로 존재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강토가 이강산을 죽이기까지의 과정이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어디까지 비극으로 내몰고, 어디까지 비장하게 묘사하려는 것인가?

지금에 와서 어지간한 비극이나 비장함으로는 자신의 손으로 형을 죽인 죄를 씻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친구의 형인 기무라 겐지마저 그의 손에 죽고 있었다. 형이 죽고, 어머니를 죽인 원수인 기무라 겐지를 죽인 댓가로 친구인 기무라 슌지(박기웅 분)과 맞서게 된다. 이야기는 꼬이는데 정작 주인공으로서 주인공에 이입할만한 어떤 간절함이나 동기가 부족하다. 역시 목단(진세연 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모성이란 항상 구원이며 용서의 의미를 담는다. 아니면 응징이거나.

차라리 어머니와 형의 죽음을 짧게 압축해서 처리하고 부족한 부분은 회상에 맡겼어야 했다. 이강토를 전면에 내세우되 그가 짊어진 원죄에 대해서는 회상과 주위의 대응을 통해 디테일하게 강조해 보여준다. 그 사이 목단과의 신경전도 좋다. 기무라 슌지의 관계 또한 과거의 회상 등을 통해 보다 다층적이며 다면적인 애증의 관계를 묘사해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은 절대 대신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설사 주인공보다 먼저 각시탈이 되어 활약한 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조차 주인공이 각시탈이 되기 전에 잠시 그를 대신한 것에 불과해야 한다. 주인공을 위해 길을 열어주고 주인공에게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주인공에게 집중하여 보다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드라마를 만들어갈 수 있다. 아직까지는 각시탈 이강토가 아닌 주변에서 드라마를 이끌어가고 있다.

불은 정화를 의미한다. 정화는 죽음이며 새로운 탄생이다. 집은 알이며 자궁이다. 집이 불타고 가족의 시체가 모두 불탔을 때 이강토도 그곳에서 죽었다. 이제 새롭게 태어나려 한다. 어머니와 형의 시체를 양분삼아 새로운 이강토가 태어난다. 역시 이 부분도 조금 더 극적으로 그려보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하마트면 죽을 뻔한 이강토를 백건(전현 분)이 겨우 구해내저 가까스로 진실을 전한다. 그 과정에서 백건 역시 죽는다면 비장감은 깊어진다.

이강토와 기무라 슌지의 우정에 균열이 생긴다. 시작은 목단이다. 그리고 기무라 겐지가 죽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무라 슌지와 목단 사이의 아픈 비극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목단은 어찌되었거나 각시탈과 맞서려는 기무라 슌지를 용납할 수 없다. 그들 사이에는 은장도라는 운명이 놓여 있다.

총독과 총독부 경무국장의 관계가 차라리 코미디같다. 퓨전이다. 고증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시대도 모호하다. 식민지조선에서 독립운동가가 소멸하는 시기라면 40년대 이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강토의 아버지 이선이 죽은 시점 등을 보더라도 1930년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기는 아무리 유능하다고 고작 조선인 출신 경부보따위에 저같은 특혜를 준다는 자체부터가 말이 안된다.

독립운동과는 상관없다. 단지 개인의 복수다. 개인의 복수이지만 그 복수의 대상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매국노이기에 독립운동이 된다.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 또한 아버지이며 고종의 망명을 주도했던 우국지사다. 개인의 복수도 국가를 위한 의거가 된다. 비극의 시대다.

본격화된다. 그러나 조금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강산이 각시탈이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강토에게는 그것이 부담이 된다. 신현준에게서 주원으로 일찌감치 바통을 넘겼어야 했다. 젊지만 상당한 연기력을 보이는 배우 주원에게 기대를 가져본다. 더욱 재미있어질 다음주를 기다린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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