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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5.08 10:29

사랑비 "아버지의 아들과 어머니의 딸, 금단의 배덕이 출구를 찾다."

오누이의 사랑이라는 근친의 배덕함이 동화의 순수를 만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원래 고려때까지만 하더라도 부모가 새로이 배우자를 맞아들였다고 그가 곧 자식에게까지 새로이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의 재혼상대는 단지 부모의 배우자일 뿐이었다. 그것 때문에 조선 중기까지도 새어머니를 인정하네 마네 말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재취로 들어가 의붓자식에게 말년에 홀대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조카와 맺어주는 풍습까지 생겼겠는가?

고려에서 문제가 되었던 어머니가 다른 남매 사이의 결혼이라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혼을 하게 되면 어머니가, 아내와 사별하고 남편이 재혼을 하게 되면 그때는 고려에서는 외가에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면 왕래도 그다지 빈번치 않았기에 서로 남이나 다름없이 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던 이부동복남매 사이의 결혼에 관련해서는 거의 이야기가 없다. 하물며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른 남녀가 단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재혼했다고 새삼 남매가 되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가부장사회의 폐해다. 결혼하게 되면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은 남성에 속하게 된다. 결혼이란 남성이 여성과 그에 딸린 모든 것을 소유하기 위한 절차이며 의식이다. 자식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 또한 아버지에게 속해 있으니 아버지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낳아준 어머니가 아니어도 아버지의 아내이니 어머니이고, 낳아준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를 소유했으니 아버지다. 같은 아버지를 두었다면 당연히 그들은 형제가 된다. 묘하게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음에도 근친의 배덕감을 느끼게 만드는 설정이 그래서 가능해진다.

어려서 읽었던 만화 가운데 <미유키>라는 만화가 있었다. 거기서도 여주인공 미유키는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새어머니가 함께 데려온 여동생이었다. 혈연적으로 전혀 이어져 있지 않지만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그녀는 주인공 마사토의 여동생이 된다. 서로 이성으로서 사랑하지만 사랑해서는 안되는 금단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 미묘한 관계가 주인공들의 주변과 어우러지며 만화 전반에 결처 배덕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남매지만 남매가 아니고 남매임에도 사랑한다.

확실히 정하나(윤아 분)에게 있어 서인하(정진영 분)란 아버지 대신이었을 것이다. 낳아준 아버지는 어려서 일찍 돌아갔고, 대신 정하나는 어머니 김윤희(이미숙 분)로부터 여전히 잊지 못하는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키우며 어머니의 첫사랑의 상대인 서인하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자라난다. 그녀가 그토록 서인하를 보고 싶어했던 것이나, 서인하와 어머니 김윤희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 했던 것이 바로 그래서였다. 아직 결혼도 하기 전이지만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정하나에게 그는 아버지가 된다. 그러면 아버지의 아들 서준(장근석 분)은 정하나에게 어떻게 될까?

하기는 서준과 정하나의 관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준을 좋다고 따라다니는 이선호(김시후 분)우의 동생 이미호(박세영 분) 역시 미묘하게 남매사이를 연상케 한다. 서준이 이미호를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항상 가까이에서 보며 자란 만큼 여자라기보다는 동생으로 느껴진다. 역설일 것이다. 피가 이어져 있지 않지만 남매로 느껴지는 사이와, 정작 남매여야 할 테지만 서로 이성으로 인식하는 관계. 물론 서준과 정하나가 서로 피가 이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부모가 재혼을 하게 되면 서로의 부모를 아버지라 어머니라 불러야 한다. 아버지의 아들이고 어머니의 딸인 서로를 그들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문득 깨닫고 보니 미묘하게 재미있어졌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를 이렇게 해체해서 재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버지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딸이다. 그러나 어려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다른 이를 아버지라 어머니라 부르며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살아가다 어느날 그들의 자식들은 서로 운명처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 그들이 사랑하게 된 순간 그들의 부모가 다시 만나며 그들이 서로 남매였음이 밝혀지고 만다. 서로가 아버지의 아들이고 어머니의 딸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입장이란 어떠할까? 그 당혹과 그 절망과 그 허무함이란.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금단의 절박함은 또한.

아마 그래서 작가들이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를 그토록 좋아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오이디푸스 이래 출생의 비밀은 창작의 중요한 코드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로맨스에서는 근친간의 금단의 사랑을 제도권 아래 묘사하는 아주 요긴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에 대해 동아시아적인 유교적 가족문화라는 특수성이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가족으로 묶여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간다. 그들은 서로 타인이지만 남매가 되고, 단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는 것조차 어느새 서로 가족으로 관계가 묶이면서 금단이 되어 버린다. 어찌 서로의 부모를 아버지라 어머니라 부르면서 서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다시 비극이 된다.

과연 자식들을 위해 서로 사돈이 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부모를 위해 서로 남매가 되고 말까? 그러고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행복을 빌어주려는 정하나에 비해 서준의 입장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버지의 사랑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어머니는 아니다. 차라리 사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다른 자식일까? 고려시대라면 서준에게도 가능성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있다. 김윤희는 그의 어머니가 아니다. 입장이 서로 갈린다. 정하나에게 이미 서준은 사랑하는 오빠지만 서준에게 정하나란 아직 동생이 되기 전의 여자다. 김윤희의 병은 그들에게 어떤 돌파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하기는 서준이 이민호를 사랑하게 되어도 그것은 여동생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백혜정(유혜리 분)의 캐릭터는 항상 흥미롭다. 독기가 죽어들었다. 악의가 사그러들었다. 대신 깊은 절망과 상처만이 남았다. 서준의 어머니가 남아 있다. 여전히 전남편인 서인하에 집착하고 김윤희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지만, 그러나 선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덕분에 불쾌감이나 거부감 없이 비극이 온전히 그녀의 위에 내려앉았다. 동화의 한 켠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다. 김창모(박지일 분)의 말처럼 서인하와 김윤희의 결합이 마치 동화와 같은 사랑이야기라면 백혜정은 무엇일까? 공주를 질투하여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 한 마녀일까? 혹은 왕자를 유혹한 마녀의 딸일까? 공주를 찾아 떠난 왕자를 바라보는 남겨진 그녀의 마음은 어떠할까? 어떤 동화들은 화려한 주인공들의 한켠에 버려지듯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얼마전 끝난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의 대사를 떠올려보게 된다.

"공주의 사랑은 동화가 되지만 마녀의 사랑은 저주가 되죠."

마녀가 되어서는 진짜 동화가 될 뻔했다. 그래서는 서인하과 김윤희가 이어질 필연만 강해질 뿐이다. 설사 두 사람 사이가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영향은 그 아들인 서준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동화는 동화인데 액션활극이다. 어머니의 저주를 받은 왕자는 공주를 버리고 떠나간다. 과연 왕자가 돌아왔을 때 공주는 그를 온전히 사랑하며 맞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정하나에게 서준은 오빠다. 서준에게 정하나는 앞으로 동생이 될 사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한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납득하며 설득하려 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로운 어머니와 아버지와 만나는 자리에 그들을 불러 앉힌다. 남자와 여자가 오라비와 누이가 되어 서로 마주한다. 동화속에 감춰진 본능의 음험함일 것이다. 간만에 흥미롭다.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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