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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29 09:12

불후의 명곡2 "작사가 이건우, 노래란 가사이며 가사는 음악이다."

작사란 문학이 아닌 음악이다. 작사가가 전설이 되어 불려지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불후의 명곡2>가 진화하고 있다. 가수와 작곡가, 프로듀서, 그리고 이번에는 작사가다. 작사가 이건우. 하긴 필자 역시 그동안 음악을 들으면서도 작사가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음악이란 멜로디이고, 연주이고, 가수의 노래였을 터이므로.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서도 계속해서 떠올리고 듣게 되고 부르게 되는 이유란 역시 가사였을 터다.

원래 노래라고 하는 자체가 가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통의 민요에서 멜로디구조는 매우 단순했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에 새로운 자기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시조라는 것도 일정한 양식의 멜로디에 맞춰 가사를 붙여 부르던 노래에서 비롯되었다. 말로 다 하지 못할 것을 노래로 대신한다. 그래서 멜로디가 나왔고, 리듬이 나왔고, 직접적으로 전하기 위한 가사가 쓰여졌다. 인간이 기록을 할 수 있기까지, 아니 기록이라는 것을 하고 나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그렇게 노래로 전해졌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이별을 한다. 만남에 설레고 헤어짐에 슬퍼한다. 보고 싶으니 그리워하고, 볼 수 없어 원망한다. 사람들이 대중가요를 듣는 이유일 것이다. 대중가요의 다른 이름은 통속가요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노래에 담겨 있다. 어떤 이론과 격식을 갖춘 멜로디와 연주가 아닌 자연스럽게 심금을 울리는 자신의 이야기다. 울고 웃고 화내고 원망하고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그 모든 감정이 어깨춤이 절로 나는 가락 속에, 그리고 하소연처럼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가사 속에 들어 있다. 대중가요가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노랫속의 가사가 자기 이야기처럼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다.

물론 더 이상 멜로디와 가사가 주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통기타 하나로도 아름다운 멜로디에 서정적인 가사를 실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대신 이제는 강렬한 비트와 화려한 사운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복잡하고 정교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요즘이다. 굳이 다른 연주자 없이도 혼자서 하나의 체계적인 사운드를 완성해낸다. 보다 확실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난 것이다. 보다 강하고 보다 분명하게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그대로를 전한다. 말이란 그에 비하면 얼마나 비루하고 지루한가. 그래서 사람은 노래를 부른다. 말로 다 하지 못할 것이기에 사람은 굳이 노래라는 것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되었든간에 결국 노래의 제목을 결정하는 것은 가사일 것이다. 노래에 대한 기억 역시 가사가 결정한다. 가사가 멜로디에 의미를 부여한다. 가사를 통해 멜로디는 의지를 갖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시를 쓰는 것과는 또 다르다. 가사란 노래의 일부다. 노래의 멜로디이며 리듬이며 박자다. 비트이고 사운드다. 문학이 아니다. 음악이다. 그래서 작사가는 문학인이라기보다는 음악인이다. 누군가는 멜로디를 듣고 가사를 쓰고, 누군가는 가사를 먼저 떠올리고 멜로디를 붙인다. 좋은 가사 없이 좋은 대중음악이란 과연 가능한가? 좋은 가사란 또한 좋은 음악이다.

새삼 작사가 이건우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아는 노래들이다. 여전히 기억속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들이다. 서정적이며 서사적이며 때로 감각적이다. '미녀와 야수'는 80년대의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가사들과는 다른 변화된 시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음악이 추구하는 바를 명확히 가사를 통해 대중에 전달한다. 가사를 통해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다. 필자 또한 그의 가사를 들었다. <불후의 명곡>을 통해 또 한 명 위대한 작사가를 만났다. 그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DK대규가 부른 '종이학'을 들으며 시대의 변화를 체감했다. 확실히 요즘 가수들은 예전 가수들에 비해 노래를 잘 부른다. 그만큼 보컬의 기술이 정교해지고 보편화되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기법들이 이제는 가수라면 누구나 상식처럼 알고 있는 기본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가수들도 체계화된 기술을 통해 노래를 부른다. 체계란 양식이며 기술이란 장식이다. 양식화되고 장식화된다. 기교에 대한 어떤 강박까지도 느껴진다. 이런때는 당연히 이렇게 불러야 한다.

목소리가 좋다. 매력적이다. 노래도 매우 장 부른다. 하지만 너무 잘부른다. 너무 잘부르려고만 한다. 더구나 작사가가 전설이다. 전설이 직접 가사를 쓴 노래를 부르는 자리다. 조금 더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바에 충실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굳이 원래의 전영록처럼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곰곰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결국 무대가 끝나고 남는 것은 DK대규의 노래였다. '종이학'이 아니었다. DK대규였다. 물론 노래를 훌륭했다. 편곡도 무척 신나고 흥겨웠다. 좋은 무대는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 1승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에 비하면 린의 경우는 조금 소심하지 않았을까? 노브레인의 리더 이성우의 평가에 동의한다. 신나는 노래였다. 가사는 슬프지만 음악은 흥겨웠다. 멜로디도 살짝 뽕끼가 느껴지는 슬픈 멜로디였지만 빠르고 시원한 사운드가 매력이었다. 원래 노래를 불렀던 김혜리도 톡톡 쏘는 듯한 매력으로 이 노래를 소화해해고 있었다. 독특한 비브라토로 슬픈 여운을 남기며 강렬한 매력과 자신감으로 노래의 신나는 느낌을 전했다. 차라리 가사와 멜로디의 느낌을 살려 느리고 슬픈 발라드고 편곡하던가.

편곡은 신나고 화려한데 정작 린의 노래는 우울했다. 앞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삼켜졌다. 여전히 린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지만 음악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어색한 율동에서도 멈칫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더 뻔뻔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한다. 그만한 자신감이 필요하다. 편곡도 노래도 모두 훌륭했지만 다만 청중을 설득하는데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필 승부를 겨루는 경연의 무대였다. 그래도 역시나 린의 'DDD"였다.

에일리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반전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맑은 소녀같다. 대기실에서나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그녀는 그저 모든 것이 기쁘고 즐거운 소녀의 모습이 되어 있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그녀의 모습은 TV를 통해 보고 있는 자신마저 그 강렬한 눈빛에 주눅들고 만다. 무서울 정도로 섹시한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도저히 신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힘있는 원숙한 노래는 그녀를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놀랍고 감탄스럽고 감동한다.

확실히 그녀도 한국인이다.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데 목소리에서 한서린 뽕끼가 느껴진다. 김수희의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창을 배워 더욱 깊어지고 강해진 목소리와 미 8군 무대를 통해 체화한 강렬한 밴드사운드, 클럽의 무대에서는 안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구성진 트로트의 가락이지만 밴드의 연주에 맞춰 흥겨운 춤사위를 보인다. 신명이란 슬픔의 극치에서 만나는 희열이다. 시간을 거스른 듯, 그러나 21세기에 어울리는 한결 세련된 편곡과 노래와 무대였다. 과연 에일리는 대단한 신인이다.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항상 에일리 자신만큼이나 설레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녀의 무대는 항상 기대하게 된다.

홍경민은 과연 공연에 익숙하다. 밴드음악을 한다. 록이란 선동이었다. 흑인의 블루스가 백인의 클럽에 와서 록이 되었다. 춤을 추며 즐기는 음악이었다. 블루스는 흑인의 영가에 닿아 있다. 록스타의 공연이란 그래서 마치 종교의 제전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록스타란 교주이며 팬은 신도다. 록스타의 말과 행동을 쫓으며 대중은 그를 섬긴다. 무대에서 홍경민은 주인공이었다. 청중은 열광하는 신도였다. 그는 주문을 걸고 있었다. 다른 말이 필요할까?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홍경민이 건 주술로부터 헤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으리라. DJ DOC의 '미녀와 야수'는 그렇게 홍경민에 의해 종교가 되어 버린다. 들뜨게 하고 흥분케 만든다.

알리의 '사랑은 차가운 유혹'은 재즈의 리듬에 어울리면서도 묘하게 뽕끼를 드러낸다. 알리 특유의 비성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원래의 멜로디가 갖는 뽕끼도 있었을 것이다. 담백하게 힘을 빼고 재즈로 편곡해 부르는 가운데 그 부분만 마치 채에 거른 듯 튀어 들린다. 역시 알리는 노래를 잘한달까? 때로 자기가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조금 노래에 힘이 들어갔다. 노래보다는 알리가 먼저 들렸다. 물론 새롭고 재미있는 무대였다. 다음에는 어떤 시도를 할 것인가 그 변신과 아이디어에 벌써부터 설렘을 느낀다.

노브레인의 '선녀와 나무꾼'은 개인적으로 이번 '작사가 이건우 편'에서 가장 베스트로 꼽을 만했다. 굳이 노브레인이 평소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컨트리를 선택한 이유였을 것이다. 가사를 들려준다. 가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주는 단지 거들 뿐. 노래 또한 거들 뿐. 가사를 위해 멜로디가 있고, 노래를 위해 그들이 있다. 최대한 자신을 억누른 채 가사를 들려주는데 주력한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힘을 억누른 그 절제된 에너지가 오히려 가슴이 끓어오르게 만든다. 집중하게 만드는 무대에였다. 하필 앞에 작사가 이건우가 전설로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감동이었다.

수와진의 '파초'는 CCM의 종교적인 경건함을 담은 노래였다. 혹시 소냐의 스타일로 보아 가스펠로 편곡하지 않을까? 하지만 가스펠인가 싶게 폭발하는 가운데 뉴에이지스런 연주가 바닥에 깔리고 있었다. 특정한 누군가를 향해서가 아니다. 특정한 무언가를 위해서도 아니다. 보편적인 누군가다. 일반적인 무언가다. 결국은 자기 자신. 모두의 자신이다. 저 먼 어딘가가 아닌 바로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고백도 하소연도 아닌 다짐이며 성찰이다. 그래서 경건하다기보다는 치열하다. 현실의 이야기다. 더욱 가슴 깊이 들어와 박힌다. 그녀는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부른다. 자기를 위한 영가다. 모두를 위한 영가일 터다. 그녀는 파초를 닮았다. 여운이 아직까지 남는다.

김구라가 빠지고 전현무가 대타로 들어갔다. 아직 전현무는 예능MC로서는 많이 부족하다. 자기 멘트나 개인기만으로도 너무 급하다. 여유를 가지고 대기신의 멤버들을 보듬고 배려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적절히 캐릭터도 부여하고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으면 역할도 만든다.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전혀무는 많은 아쉬운 점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웃기기는 웃긴다. 문희준 역시 기존의 김구라와 함께 MC를 보던 유경험자로서 여유를 가지고 잘 받쳐주고 있다. 다만 문희준 혼자서는 아무래도 MC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이다. 김구라의 공백이 많이 아쉬웠다.

가수와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이제는 작사가, 앞으로 세션만 나오면 완벽할 것이다. 과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연주자를 위한 시간을 마련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껏 소외되어 있던 그들과 함께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연주자라면 가수들과 직접 무대에서 서봐도 좋을 것이다. 한국 대중들을 울리고 웃게 하던 전설들을 남김없이 발굴해 대중앞에 보인다. 기쁘다. 기대가 된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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