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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27 09:19

적도의 남자 "네가 불쌍해서! 최수미 이장일을 위해 울다."

최수미와 극사실주의, 맹목적이면서도 무심한 본능의 모성을 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노자는 말한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 무심하다. 무정하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저 스스로 영위할 뿐이다. 어쩌면 극사실주의가 나타나게 된 이유일 것이다. 과도한 인간의 의지와 의도에 대해 과연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인간의 인지와 인식, 주관을 기계인 카메라가 대신한다.

하필 최수미(임정은 분)가 극사실주의 화가로 설정된 이유일 것이다. 자연에는 선도 악도 없다. 오로지 냉엄한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존재라는 명쾌한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곧 선이며 악이다. 의미이고 가치다. 그 무엇도 배제된 2차원의 카메라에 담긴 장면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 그 모든 판단으로부터 배제된 사실만을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최수미가 보아온 세계일 것이다. 그나마 일그러진 추악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그녀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단지 아버지가 박수무당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조차 가짜였다. 원래는 연극배우였다. 연기로써 박수무당을 흉내내다가 그것이 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짓된 연기로 인해 그녀는 진짜 무당의 딸이 되어 온갖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그녀에게 현실은 거짓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모든 것이 배제된 명확한 사실만을 추구하려 한다. 거짓된 인간에 의해 왜곡된 현재가 아닌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기계에 비친 영원의 사실만을 보려 한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최소한 그림속의 풍경은 인간의 악의로부터 자유롭다.

그녀는 그대로 이장일(이준혁 분)을 보아준다. 그의 악과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까지도. 단, 그녀는 이장일만을 본다. 카메라가 갖는 한계다. 카메라는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다. 더구나 카메라는 단지 2차원의 평면만을 담아낼 뿐이다. 대신 카메라는 이장일이 김선우(엄태웅 분)를 뒤에서 치고 바다에 빠뜨리는 엄청난 사건이 있던 그 순간 이장일이 흘리던 눈물을 기억하고 담아낸다. 이장일을 가엾게 여기는 것은 결국 그런 이장일을 바라보는 최수미 자신이다. 어떤 사진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는 결국 카메라가 아닌 카메라를 들고, 그리고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 자신인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모성이기도 할 것이다. 모성에는 선도 악도 없다. 단지 자식만이 있다. 선도 악도 어머니는 모두 받아들인다. 자식의 일이기에 있는 그대로를 모두 받아들이며 단지 기뻐하고 가엾이 여길 뿐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렇게 일방적이고 맹목적이다. 이장일에게서 동류의 향기를 느꼈고, 이장일의 죄에서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이장일은 최수미 자신이다. 이장일로 인해 최수미 자신도 김선우에게 죄인이 된다. 김선우는 원래 그녀가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준 소중한 친구였다. 그것은 이장일의 죄다. 그녀는 이장일의 죄를 카메라의 포커스처럼 고스란히 비쳐낸다. 이장일이 죄를 짓던 순간 그곳에 있었던 것은 이장일 자신이었던 것처럼. 이장일의 죄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것은 다름아닌 이장일 자신이었다. 최수미가 우연처럼 그것을 보고 있었다.

인간은 어째서 죄를 짓는가? 과연 이장일은 양심이 결여된 사이코패스이며 악일 뿐인가? 그러나 최광춘(이재용 분) 역시 죄를 짓고 있다. 누구보다 김선우를 아낀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당하는 딸 최수미와 스스럼없이 어울려주는 김선우에 대한 부채의식도 있다. 기회만 되면 친분을 과시하고 어떻게든 그를 위해주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김선우의 아버지가 당한 불행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 한다. 딸 최수미를 위해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눈감고 자기를 위해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 한편에서는 김선우를 위해 사실을 알리려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자신과 딸을 위해 사실을 숨기고 이용하려 한다. 김선우를 위하는 마음은 그의 양심이며 땅과 자기를 위해 그것을 이용하려는 계산은 현실의 나약함이다. 최광춘은 무력한 존재다. 극단에서조차 그는 무시당한다.

선이 있다. 이 선을 넘어서면 죄를 짓는 것이다. 그 선을 넘지 않는다면 아직은 선하다. 죄란 선택이다. 선택의 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버지가 죄인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죄인이 되는 것인가? 아버지인 자신이 죄인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아들을 지금까지처럼 한심하게 내버려둘 것인가? 친구인 김선우인가? 사랑하는 이장일인가? 양심인가? 아니면 외면인가? 그 선택의 순간에 약자는 죄를 짓고 강자는 여전히 정의로운 채 남는다.

진노식(김영철 분)이 김선우의 창립파티에서 문득 발견하고 뒤쫓은 것은 문태주(정호빈 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두고 온 죄다. 그가 두고 온 후회다. 그 후회조차 바로보지 못하는 원망이고 증오다. 그를 분노케 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인 바로 진노식 자신이다. 그래서 그는 김선우를 믿지 못한다. 의심하며 경계한다. 당당하지 못하다.

이장일에게도 김선우는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검사라는 신분이 보다 김선우의 존재를 가까이에서 만나게 한다. 순간순간이 선택이고 순간순간이 유혹이다. 김선우는 그를 유혹하는 악마와도 같다. 그가 강했다면 악마는 그를 지키기 위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진실을 지켜보고 기록한 최수미 앞에서 그가 보인 허세는 그같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초라한 발버둥이다. 그래서 최수미는 그를 위해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린다. 인간이라면 이장일의 죄를 증오하고 비난할 테지만 그녀는 단지 카메라에 불과하다. 이장일의 눈물을 담아내는 단지 캔버스다.

아무래도 이장일의 한지원(이보영 분)을 향한 노력은 무위로 돌아갈 것 같다. 김선우도 지금 한참 헛발을 짚고 있다. 이장일이 한지원에 집착하는 이유다. 김선우가 겁먹은 아이처럼 한지원의 주위를 맴도는 이유다. 최수미가 선도 악도 없이 그저 지켜보아주는 어머니를 상징한다면, 한지원이란 항상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탱해주고 보듬어주는 어머니를 보여준다. 그녀는 강하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강하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주는 대상이 아닌, 자기를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누군가일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한다.

최수미는 무엇도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지원은 오롯이 자기로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녀가 유일하게 두려워하고 누군가를 필요로 했던 순간이 김선우와 처음 만난 진노식의 차를 부수려던 그때였다. 아버지는 무력했고 그렇게까지 분노를 표출할 수 없었던 자신은 무기력했다. 그런때 그녀를 지켜보아주는 김선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김선우가 이제 자신을 필요로 한다. 직장상사와 트러블이 생기자 자신이 직접 민법책을 찾아 읽으며 방법을 찾는다. 과연 마냥 친정을 베풀고 도움을 준다고 고마워는 할지언정 마음까지 주게 될까?

그래서 이장일은 한지원에게 끌린다. 김선우도 한지원에게 끌린다. 최수미가 이장일의 죄를 비춰준다면 한지원은 이장일의 약한 부분을 지탱해준다. 구원이기도 할 것이다. 김선우에게도 마찬가지다. 빛이 없던 시절 한지원은 그에게 유일한 빛이었다. 그래서 두렵다. 앞도 볼 수 있게 되고, 상당한 부와 인맥도 쌓고, 그러나 여전히 그는 한지원 앞에서 원래의 약하고 한심한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한지원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모른 채. 상처를 입으면서도 한지원은 그를 보게 된다. 어두운 호텔의 창에서 희미한 그림자로 서로 만나 함께하는 김선우와 한지원의 모습은 그런 그들의 거리를 보여준다. 함께있지만 서로 함께 있지 않다. 서로 함께 있지 않지만 결국은 심연속에 함께 느끼고 있다. 그 순간 김선우는 '노인과 바다'를 꺼내보고 있었다.

아버지로 인해 죄를 지었다. 아버지는 자신으로 인해 죄를 지었다. 그 아버지를 위해 죄를 지었다. 아버지가 죄의 증거인 최수미를 자꾸 자기에게로 데려온다. 자기와 이어주려 한다. 자신의 추악함과.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죄를 지었고 여전히 죄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이용배(이원종 분)도 누구보다 이장일을 사랑한다.

임정은의 유독 진하게 강조된 아이라인에 주목한다. 그 눈으로 이장일을 보고 눈물도 흘린다. 김선우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에 비해 이보영의 메이크업은 담담하다. 이장일은 그녀를 쫓고 한지원은 김선우를 쫓는다. 김선우는 그녀를 바로 보지조차 못한다. 물고 물린다.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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