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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4.22 09:06

넝쿨째 굴러온 당신 "말숙이 시누이인 이유, 방귀남 기억의 조각을 찾다!"

방귀남과 차윤희의 '트러블메이커'가 눈꼴시리도록 매력적이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어째서 말숙(오연서 분)이 시누이였던 것일까? 말숙은 욕심이 많다. 항상 공짜를 바란다. 다른 사람에 빌붙으려 한다. 시누이로서도 마찬가지다. 올케인 차윤희(김남주 분)는 만만한 물주이며 동시에 자신의 일을 대신할 노동력이다. 원래 전통사회에서 며느리의 존재가 그랬다.

서로 좋아해서 사귀고 결혼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 집안과 집안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결혼이었다. 단지 필요에 의한 수단이고 도구에 불과했다.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더불어 적지 않은 지참금으로 집안의 재산을 늘려준다. 서로에 대한 정이나 의리와 같은 것은 일단 가족이 되고 나서 차근히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를 위한 신고식이라는 것도 있다. 며느리의 인격은 그래서 많은 사회에서 곧잘 무시되기 일수였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그래서 시집식구들의 요구를 감당하지 못한 어린 며느리들이 학대끝에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말숙이 굳이 노래방까지 가서 차윤희에게 혼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차윤희가 사들고 들어오는 치킨과 맥주까지 그녀는 욕심낸다. 차윤희의 것을 빼앗고 차윤희를 부려먹고 싶다. 차윤희로부터 일방적인 이익을 누리고 싶다. 차윤희가 시어머니 엄청애(윤여정 분)에 대해 한참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어머니는 단지 순수한 의도에서 말하고 있을 뿐인데 차윤희가 지레 말숙의 말 때문에 잘못 오해하고 듣는다. 하지만 그것이 상식일 터다. 시어머니이고 며느리이니 효도차원에서 무언가 해주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대부분의 갈등이 빚어지지 않을까?

즉 개인일 터다. 독립된 개인이다. 자기가 알아서 판단한다. 자기가 할 일은 알아서 한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 시어머니 것은 시어머니 것이다. 물론 안다. 시어머니 엄청애도 알고, 두 시누이 일숙(양정아 분)과 이숙(조윤희 분)도 그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알고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서는 결정적인 갈등따위 아직까지 불거지고 있지 않다. 유일하게 차윤희로 하여금 시집살이를 하도록 만드는 존재가 있다면 막내 말숙이다. 어디에 원인이 있는가? 말숙이 그토록 얄밉다면 그것은 필경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부조리하다는 뜻일 게다.

말숙이 있기에 드라마는 성립한다. 말숙이 없다면 과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드라마는 성립할 수 있을까? 그토록 시집살이를 꺼려하던 차윤희가 30년만이 다시찾은 남편의 가족과 만났는데 서로 진심으로 걱정하고 배려하느라 아무런 사건도 사고도 없더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동기가 너무 약하다. 엄청애가 차윤희를 시집살이나 시키려는 문제 많은 시어머니로 묘사되면 드라마는 흔한 고부갈등이나 그리는 뻔한 내용이 되어 버리고 만다. 개연성이 사라진다. 30년만에 겨우 찾은 아들인데 그 며느리를 시집살이시킨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차라리 그래서 엄청애의 고민은 현실적이다. 어색하다.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30년만에 찾은 아들이다. 30년동안 아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지 못했다. 그가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사회인으로 독립해 살아가는 과정을 전혀 직접 느껴보지 못했다. 오죽하면 며느리가 부러울까? 며느리조차 쉽지 않다. 그런 어려운 아들인데 그 아들의 아내다. 바로 얼마전까지 이웃으로 얼굴붉히며 싸우기까지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이고 자식이다. 시어머니이고 며느리다. 그리고 그런 혼란 가운데 말숙이 가세한다. 그녀는 차윤희가 경험할 시월드의 뇌관이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하기는 그래서 말숙이 차윤희의 동생 차세광(강민혁 분)과 만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숙은 올케가 되어야 한다. 올케가 되어 시누이를 겪어야 한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시누이의 지위를 누리려 하고 있기에. 시누이가 되어 일방적으로 누리려고만 하고 있기에. 차윤희가 다시 그녀에게 시누이가 된다. 관계으 역전이다. 이미 말숙은 차세광에게 어처구니 없이 휘둘리며 당하고 있다.

말숙이 지독해서 드라마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면서도 허술하다. 극단적인 악역은 되지 못한다. 나머지 악역은 둘째 작은어머니 장양실(나영희 분)에게 달려 있다. 장양실이 방귀남(유준상 분)에  대해 갖는 감정이야 말로 드라마의 중요한 열쇠와도 같은 부분일 것이다. 말숙조차 없으면 그저 현실에 없을 잘난 남편 구경이나 하면서 볼까? 갈등이 빚어져야 드라마는 재미있다.

극단적인 시누이와 극단적인 남편, 그리고 그 사이에 혼란스런 시월드의 식구들. 일숙과는 차윤희도 하나의 비밀을 공유한 상태다. 그것을 그새 못참고 친정어머니 한만희(김영란 분)에게 알리고 만 차윤희의 경박함이 우습다. 온갖 좋은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 방정배(김상호 분)의 아들 방장군으로 인해 평균이 떨어져 꼴찌반의 담임이 될까 두려워하는 민지영(진경 분)의 캐릭터 또한 현실적이다. 실속없는 방정배의 궁상맞은 똑똑함이 그같은 민지영과 만난다. 방장군은 답이 없다. 남들보다 아는 것이 많은 방정배의 아킬레스건이다. 과장은 코미디의 중요한 요소다.

아무튼 아무리 봐도 멋진 남자다. 남자 입장에서는 피곤하다. 그리 차윤희의 반대마저 무릎써가며 30년만에 찾은 동생들과의 감정적인 대립마저 감수한다. 다행히 일숙과 이숙은 그만한 양식은 있다. 그래도 30년만에 찾은 오빠가 올케편만 들면 서운하다. 교회의 권사도 그것을 지적한다. 아내 차윤희에 대한 방귀남의 솔직한 애정표현에 엄청애가 느낄 서운함을 걱정한다. 그래도 차윤희를 곤란케 해가며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방귀남이 있어 차윤희는 기꺼이 시집과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선량하다. 드라마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그녀가 굳이 시집식구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그녀가 무언가 꿇리거나 약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다. 시할머니(강부자 분)를 걱정한다. 시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한다. 괜히 마음이 쓰인다. 자발적인 것이다. 그조차 방귀남으로 인한 마음의 여유가 가능케 한다. 차라리 조금 양보하고 손해보는 쪽이 하고 싶은대로 하고 마음 불편한 것보다 낫다. 그녀를 동정하게 된다. 그녀의 편에 서서 응원하게 된다. 그녀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시청자는 대개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하게 된다. 방귀남도 비현실적이지만 차윤희도 비현실적이다. 너무 착하다.

마침내 방귀남이 기억을 찾아간다. 사실 조금은 어색하다. 보물상자를 숨긴 비밀공간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벽돌은 원래 맞물려 쌓는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면 나무상자 역시 상태가 많이 안좋아져 있을 것이다. 그만한 디테일을 요구한다는 것은 TV드라마에 있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기억의 파편들이 그를 그동안 잊고 있던 과거로 데려가 준다. 그곳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모두가 짐작하고 있는 중요한 비밀이 감춰저 있을지 모른다.

확실히 부모는 부모다. 결국 내가 부모님의 자식인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나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을 대하면서다. 어려서의 기억은 부모님의 것이다. 어려서의 나란 부모님에 속해 있다. 엄청애가 굳이 방귀남의 사진을 보고자 하는 이유다. 자라서는 어느새 혼자서 살아가지만 자라기까지는 부모의 품에 있다. 그것은 부모의 시간이다. 부모의 시간과 만난다. 부모의 시간 속에 있는 잃어버렸던 자신과 만난다. 그가 마침내 보게 될 진실은 무엇일까?

말숙조차 사실은 악역이 아니다. 악역일 수 없다. 가족시간대에 그야말로 가족을 위한 드라마일 것이다. 거의가 악의없이 선량하다. 때로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다. 말숙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는 바보다. 악역이 되기에도 어리석다. 당하는 역할을 맡는다. 웃는다. 음습함이란 없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그 밝은 웃음이 좋다. 가족드라마는 이렇게 만든다.

방귀남과 차윤희의 '트러블메이커'가 멋지다. 이렇게 멋진 한 쌍이 있을까? 외모가 되고, 길이가 되고, 몸매까지 받쳐준다. 뮤지컬 배우로서 노래와 연기마저 훌륭하다. 정말 천생연분이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역시 방귀남처럼 될 자신은 없다. 저주스런 드라마일 것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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