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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10.08 08:55

[김윤석의 드라마톡] 판타스틱 11회 "후회없이 사는 법, 혹은 죽는 법"

홍준기가 웃을 수 있는 이유

▲ 판타스틱 ⓒJTBC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판타스틱. 흔히 죽음과 마주하면 삶이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된다 말하고는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에 대한 절박함이 되어 더욱 간절하게 삶을 구하고 바라게 된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보다 더 제대로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막연한 자신감이기도 하다. 아직 자기에게는 다 쓰지 못한 예금이 통장에 남아 있다.

사람이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만 살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작 며칠만 살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아니 몇 십 년이든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견디며 버티며 살아야만 한다. 그래서 항상 그 만큼을 본능처럼 자연스럽게 남겨두게 된다. 그런데 결국 자기에게 남은 시간이 지금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동안 알뜰하게 모아온 시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친정엄마의 수술을 해야 한다. 벌써 몇 번 째 수술이다. 몇 년 째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오늘 하루 도움을 받는다고 끝이 아니다. 오늘 하루 어떻게 넘겼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죽으려 한다. 차라리 이대로 여기에서 끝내려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다시 그 끔찍한 곳으로 돌아가서 이를 악물고 견뎌보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친구 이소혜(김현주 분)가 그녀 백설(박시연 분)에게 묻고 있었다.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그저 남편과 시집식구들의 도움만 바라며 손놓고 그저 참고만 있는 것이 과연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자신의 최선인가. 하필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엄마가 백설에게 남긴 편지가 있었다. 한결같이 딸 백설을 걱정하며 그를 위해 얼마 안되는 돈과 편지까지 남기고 있었다.

자신의 사정보다는 친구의 눈물이다. 지금껏 자신의 일로 눈물을 흘리다가 어느새 친구를 위해 함께 울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자연스럽게 이소혜가 그들의 가장 뒤에 서 있었다. 이소혜에게는 내일이 없다. 내일이라 할 만한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이 없다는 절박함이 자연스럽게 친구 백설과 조미선(김재화 분)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이소혜를 중심으로 뭉치도록 만든다. 어차피 이소혜가 보지 못하는 내일은 의미없다. 이소혜와 함께 할 수 있는 오늘만 가치있다. 무작정 적금을 깨고 돈부터 찾는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부터 해내려 한다. 그리고 다음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한다. 일단 저지르고 나서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백설의 친정엄마를 이송한 종합병원의 원장 홍준기(김태훈 분)였다.

여전히 혼자서 고민하는 류해성(주상욱 분)에게도 홍준기는 과감하게 조언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자기에게는 다 쓰고 가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돈이 있다. 만일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부족한 시간 대신 그 돈으로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기회란 없다. 다음의 기약이란 없다. 어쩌면 이번 드라마가 마지막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배우 류해성과 작가 이소혜가 함께 만드는 처음이자 마지막 드라마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진짜 후회할 일이란 무엇인가. 진짜 두렵고 불안해야 할 일이란 무엇인가. 그 최진숙(김정난 분)도 하는 일이다. 진정 필요하다면 다음을 걱정하기보다 지금 여기서 일단 행동에 옮기고 보는 것이다. 어차피 올 지 안 올 지 모르는 내일에 대한 걱정보다 오늘 여기서의 행동이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과 같다. 홍준기가 말기암에도 웃을 수 있는 이유다. 당장 자기가 죽어가면서도 사회봉사를 하겠다며 적극적일 수 있는 이유다. 어느새 이소혜 역시 처음의 충격에서 헤어나와 평소의 여유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기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끊임없이 묻는다. 답을 구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절박함이 진실하게 영혼으로 전해지는 답들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급한 것이다. 류해성과의 오랜 오해도 너무나 어이없이 쉽게 풀리고 만다. 멀리 돌아갈 시간이 없어 지름길로 달려간 결과 왜 그리 어려웠을까 싶게 두 사람은 지금 함께 있다.

후회가 남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련이 남는 것은 아직 다하지 못한 것이 남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이 오늘이다. 오늘을 삶으로써 내일의 오늘을 살 수 있다. 내일은 오늘의 보상이다. 당연하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내일로부터 배신당한다. 그러지 않기 위한 하루하로 필사적인 노력들이다. 류해성이 어느새 이소혜와 홍준기와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이유다. 그래도 머뭇거림이 있다. 살아가는 이상 알 수 없는 내일은 항상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함께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다. 그 진정한 가치를 안다.

수 천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와인들이 여지없이 바닥에 부딪혀 깨지고 있었다. 통쾌한 복수다. 그보다는 자기선언이다. 내가 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다. 그동안 미루었던 말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통쾌하게 돌아선다.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보여주고픈 아픈 친구가 있었다. 힘들지만 후련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옷을 벗어 던진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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