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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3.29 08:55

적도의 남자 "이장일의 선택, 운명이 죄를 떠밀다."

아버지와 친구, 우정과 사랑, 선택의 기로에서 운명을 선택하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누구에게나 선택의 순간이 있다. 아버지인가? 친구인가? 사랑하는 사람인가? 우정을 나눈 친구인가? 어느 쪽이든 후회가 남는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부분의 비극은 바로 그로부터 시작한다. 하나의 선택이 하나의 배신과 하나의 후회를 남긴다.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렀다. 그것도 하필 친구의 아버지를 죽였다. 친구가 그 사실을 밝히려 한다. 자신의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애쓰고 있다. 말리려 해보지만 말릴 수 없다. 그렇다고 그냥 지켜보기에는 아버지의 죄가 드러난다. 그 또한 용납할 수 없다.

오랜 친구였다.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친구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였다. 상처가 될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지은 죄를 알게 된다면 그에게 상처가 되고 말 것이다. 친구는 잠시 잊는다.

제 3자의 입장에서야 쉽게 말할 수 있다. 배신이라고. 죄라고. 악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저버릴 수 있을까? 돌아봐주지 않아 더 간절하고 애닲은 사랑인데 차마 모른 척 외면할 수 있을까? 너무나 당연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계량할 수 없는 인간의 근본에 해당하는 영역일 것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설사 아버지가 죄를 지었더라도 그 사실을 솔직하게 밝히고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죄를 지었다면 스스로 그 죄를 밝히고 떳떳하게 죄값을 치르도록 하라. 그것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위하는 길일 것이다. 말처럼 쉽다면 세상에 비극이란 없다. 죄를 저지르는 일도 악을 행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슬프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와 같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장 간절하게 남는 후회란 가장 절실한 선택에서 비롯된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최선이었는가? 다른 선택은 없었는가?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또다른 선택이란 또다른 후회만을 남길 뿐이다.

김영철(진노식 역)의 연기란 항상 보는 이를 전율케 만든다. 아주 짧은 간격이었다. 말과 말 사이, 행동과 행동 사이, 아주 짧은 머뭇거리던 빈 공간이었다. 그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낸다. 후회일까? 미련일까? 안타까움일까?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잠시의 머뭇거림 대신 그는 더욱 거칠게 채찍질하며 앞으로 달려간다.

과연 전노식이라는 인물에게 있어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김선우(아역 이현우)란 전혀 아무런 느낌도 의미도 없는 이름에 불과할 것인가? 자신의 손에 죽은 김경필의 아들로써 단지 자신의 죄를 밝히려 드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짐짓 지나칠 정도로 이장일(아역 임시완)의 아버지 이용배(이원종 분)을 다그치는 모습에서 그의 불안한 속내가 드러난 것은 아니었겠는가? 하기는 그토록 김선우의 존재에 대해 신경쓰고 있으면서도 전노식은 그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원래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김영철의 연기가 이 모든 추측을 가능케 한다.

욕망이 뒤엉킨다. 딸의 친구다. 평소 친분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의문을 풀고자 하는 김선우를 보면서도 최광춘(이재용 분)은 오히려 그 사실을 이용해 이용배로부터 돈을 뜯어내려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최수미(아역 박세영)는 자신이 좋아하는 이장일을 위해 그것을 묻어둘 것을 요구한다. 우연히 같은 기차를 탔던 서울행에서 이장일로부터 받은 모욕은 그녀의 자존심에 남긴 깊은 상채기만큼이나 이장일에 대한 간절함을 더했다.

친구였다. 친구이기에 돕고자 했다. 자기에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이기에 자신 역시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고자 했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아버지인가? 친구인가? 인정인가? 진실인가? 겨우 타협점을 찾아 보지만 그것을 김선우가 거부한다. 극단까지 몰린 상태에서 그는 더욱 절박한 선택을 해야 한다. 차라리 김선우가 이장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면 또다른 선택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장일에게도 여유란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김선우의 절박함만큼이나 아버지의 진실을 덮으려는 이장일의 절박함도 애처롭다.

오히려 친구인 김선우를 배신하고 그를 폭행한 뒤 바다에 빠뜨리는 이장일의 눈물에서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그래서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하기는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그는 너무나 큰 것을 잃어야 했을 것이다. 죄는 전노식이 지었다. 아버지 이용배가 지었다. 그러나 이장일은 바로 이용배의 아들이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그의 운명이었다. 이용배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상 그가 대신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버지와 친구 사이에서. 양심과 인정 사이에서. 죄란 그렇게 애닲은 것이다. 더구나 강요된 선택에 의한 죄라는 것은.

어른들의 사정이란 아이들에게 그렇게 잔인하다. 어른의 사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의 사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작 김선우 자신의 일임에도 그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진다.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이 판단되고 결정되어진다. 운명에 휘둘린다. 이장일 역시 운명에 휘둘리기는 마찬가지다. 최수지 또한. 그나마 한지원(아역 경수진)의 기억이란 그다지 죄와 깊은 연관이 없다. 그녀만이 오로지 죄로부터 자유롭다.

한지원의 김선우에 대한 강한 인상과 그런 한지원에 대한 이장일의 기억, 감정은 엇갈린다. 이장일에게 그토록 모욕받고 거부당했음에도 그를 위해 우정마저 저버리려는 최수미가 있다. 중첩되는 기억 가운데 또다른 인연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어떤 비극과 운명으로 이어지려는 것인가.

이장일의 눈물에서 인간의 죄를 본다. 최초에 선악과를 두고 고민했을 하와처럼 그는 죄를 앞에 두고 고민한다. 차라리 죄인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장일의 비극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비극이다. 임시완의 연기는 신인치고 당돌한 면이 있다. 재미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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