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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7.26 07:12

[김윤석의 드라마톡] 닥터스 11회 "유혜정의 선언, 이사장 홍두식 죽다"

라이벌이하 정윤도의 매력, 유혜정과 홍지홍을 위한 계기

▲ 닥터스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닥터스. 오래전부터 그는 혼자였다. 더 오래전에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는 더이상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혼자여야만 했다. 혼자여야 했고, 혼자인 것으로도 충분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하는 사랑은 단지 자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고 있고, 내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고 있고, 상대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사랑하는 것인가. 그래서인가 마치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듯 적절한 때 적절한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계단에서 밀고, 더이상 말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해진 아내를 보며 안도를 느낀다. 생업마저 뒤로 한 채 오로지 아내의 곁만을 지키는 남편의 모습은 지고지순한 사랑 그 자체로만 보인다.

어째서 정윤도(윤균상 분)였던 것일까? 라이벌이라기에는 여러가지로 격이 맞지 않는다. 나이도 어리고, 의사로서 실력이나 명성 역시 홍지홍(김래원 분)에 미치지 못한다. 집안이 재벌이기는 하지만 굳이 자신의 신분과 배경을 앞세우지 않는 한 그들은 단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일 뿐이었다. 더구나 병원에서 홍지홍은 명망높은 설립자이자 현재 이사장인 홍두식(이호재 분)의 아들이기까지 했다. 유혜정(박신혜 분)과의 만남까지 한참 늦어서 벌써 10년 전부터 홍지홍과 유혜정은 서로의 존재를 알았고 서로에 대한 남다른 감정까지 가지고 있었다. 과연 뒤늦게서야 유혜정을 알고 호감을 가지게 된 정윤도가 이미 유혜정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홍지홍을 지우고 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윤도와 홍지홍의 라이벌관계는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홍지홍이 가지지 못한 것이다. 아직 홍지홍으로서는 도저히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유치하게 떼를 쓴다. 찌질하게 매달린다. 유혜정의 마음을 돌려세울 때까지. 사소한 꼬투리까지 물고 늘어지며 어떻게든 유혜정의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 필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유혜정 자신을 그만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최소한 이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곁에 있어주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와 정확히 태칭을 이루며 홍지홍은 유혜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진심만을 베풀려 하고 있었다. 유혜정이 홍지홍에게 거리를 두며 화를 내는 이유였다. 홍지홍에게는 자신이 필요치 않다.

결국 열쇠는 홍지홍에게 있었다. 홍지홍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유혜정 역시 홍지홍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홍지홍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불행으로 끝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었다. 사람의 감정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절대 영원하지 않다. 사랑만 받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사랑만을 받다가 그 사랑이 사라지고 나면 자신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행한 끝은 자신의 버려짐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할머니가 있었기에 자신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다. 이제는 그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유혜정이 마음놓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홍지홍 역시 자신을 비우고 열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전혀 안되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계기가 필요했다. 단단하게 굳어 있는 그의 내면을 부숴야 했다.

친절하게 드라마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자연스럽게 홍두식(이호재 분) 이사장의 죽음을 벌써부터 예감하고 있었다. 홍지홍이 기억하는 과거의 시간들 한 가운데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던 거대한 기둥이었다. 아버지 홍두식과 만난 시간부터 홍지홍의 시간은 새롭게 정의되고 있었다. 즉 지금의 홍지홍에게 홍두식이란 지금의 자신을 만든 시작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었다. 그런 홍두식이 죽는다. 무력하게 자신의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며 전과는 달리 홍두식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마음껏 자신을 향해 악의를 드러낼 수 있게 된 진명훈(엄효섭 분)과 진성중(전국환 분)의 악의마저 견뎌내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실패하고 여전히 홍지홍이 예전과 같다면 그때는 정윤도가 홍지홍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홍두식의 죽음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한 번 쯤 절박한 위기가 드라마를 휘돌아 칠 때도 되었다.

아무튼 덕분에 정윤도 역시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의사로서 프로다운 엄격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한 편 서툴 정도로 올곧은 진심을 보여준다. 의사로서의 실력 또한 뛰어나면서 소년다운 허술함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정윤도의 비중은 홍지홍의 그것에 비하면 한참 미치지 못한다. 분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어차피 라이벌이 아니다. 함께 있어도 전혀 아무 긴장감도 느끼지 못한다. 계기다. 수단이다. 정윤도의 고백 역시 홍지홍을 일깨우고 두 사람의 사이를 진전시키는 계기로서만 겨우 쓰이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홍지홍에게는 아직 부족한 너무나 멋지고 간절한 모습이다.

병원의 내일은 의사인 자신들의 신념과 같다. 어떤 병원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병원을 발전시킬 것인가. 자신은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진료기록을 모조리 조작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상세한 진료기록을 따로 없애지 않고 보관하고만 있었다는 점에서 의사 진명훈의 독특한 개성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 진명훈을 향해 엄격하게 의사로서 해서는 안되는 말이라며 수술실패를 바라는 말을 제지한 것도 의사로서 아버지 진성중의 역할이었다. 근한에 이르던 충돌이 이사장 홍두식의 죽음으로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직 병원장 진명훈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은 채다. 이사장 홍두식의 죽음이 그 봇물을 여는 계기가 되어준다.

마침내 유혜정이 선언한다. 자신도 사랑하겠다. 더이상 일방적으로 베풀고 받기만 하는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다. 대등한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로서 자신 역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사랑을 하겠다. 그럴 수 없다면 사랑같은 건 하지 않겠다. 사실상의 고백이다. 받아들이고 말고는 오로지 홍지홍의 몫이다. 정윤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유혜정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자신 역시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 정윤도의 비중이 조금만 더 커진다면. 조금만 더 분량에 여유가 있다면 진짜 정윤도를 홍지홍의 라이벌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아버지다. 아들이다. 피로 이어지지 안았어도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유언따위 상관없다. 혼자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혼자서만 죽을 수도 없다. 유언과는 상관없이 필사적으로 살리려 노력한다. 더이상 이제까지 여유롭던 홍지홍의 모습은 없다. 기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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