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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2.03.02 10:04

보통의 연애 "그들이 살아가는 법, 삶이라고 하는 기만..."

한재광과 김윤혜가 살아가는 법, 희망이라는 이름의 절망에 대해...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 형이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했다. 살인자를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사라졌다.

한재광(연우진 분)이 김윤혜(유다인 분)에게 느끼던 동질감의 정체일 것이다. 사랑할 자격을 잃었고 사랑할 대상을 잃었다. 사랑할 수 없고 사랑받을 수 없다. 고독과 절망이 밀려든다. 배신감일 것이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도 배신감을 느낀다. 어째서 나를 두고 먼저 죽었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살려 한다.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정확히 사랑할 이유를 찾는다. 사랑하고 싶어한다. 남들과 같은 보통의 사랑을. 제목이 <보통의 연애>인 이유다. 아버지에게 죄가 없을 것을 믿고 형의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행복해도 좋다.

그것은 마치 김윤혜의 할머니(이주실 분)가 항상 읊조리는 '관세음보살'과도 닮아 있다. 할머니가 보살에게 의지하듯 김윤혜 또한 자신의 바람에 의지한다. 보살로부터 구원받기를 기대하듯 아직 남아 있는 희망에 기대려 한다. 그것은 어쩌면 기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김윤혜는 과연 진심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무죄일 것이라 믿는가?

한재광 역시 마찬가지다. 형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한다. 여전히 형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어머니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한다. 그래서 애써 형의 죽음을 외면한다. 형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과연 그 또한 진심으로 그리 여기고 있는가? 그러한 자기에 대한 기만이 그의 무료함으로 나타난다. 한재광이나 김윤혜나 차라리 무덤덤할 정도로 무료한 일상을 영위한다.

여자친구가 맞선을 본다. 결혼을 한다.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도 그는 관계를 이어간다. 사랑해서가 아니다. 욕망해서도 아니다. 어쩌면 한재광에게 한재광이라는 자신은 없는지 모른다. 김윤혜 또한 그래서 단지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재광에게 하룻밤 잘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란 그렇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 자신을 놓아둔 탓이다.

그래서 한재광은 시간이 흘러 그때 강물로 뛰어든 김윤혜를 찾아온다. 마치 연어가 회귀하듯 떠나온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김윤혜가 아버지의 결백을 믿으려 하는 이유다. 그 시간 이전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꿋꿋하다는 것은 뻔뻔하다는 것이다. 의식하지도 굴복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이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더욱 안으로 과거로 자신이 믿는 그곳으로 잠겨간다.

첫회 그녀의 방 창문을 막고 있던 판자의 정체다. 그리고 한재광이 그 판자를 들어내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빛을 발견한다. 그것은 희망이다. 그러나 다시 권대웅(최민 분)의 어머니를 통해 현실을 자각했을 때 빛은 구름에 가려버린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가 모든 기대를 씻어 버린다. 그것은 또한 한재광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상처입힌다. 상처일 걸 알면서도.

한재광의 어머니 신여사(김미경 분)는 그들과 반대편에 있다.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다. 절망이다. 더욱 좌절하고 더욱 절망한다. 절망을 밑천삼아 증오하고 원망한다. 오로지 죽은 아들만을 그리며 살아있는 아들을 탓하고 원망한다. 오로지 죽은 아들의 망령에만 사로잡혀 아들을 죽인 범인의 가족에 대한 증오만을 불사른다. 그녀의 목발짚은 다친 다리가 그것을 상징한다. 그녀는 제 발로는 설 수도 걸을 수도 없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도 없다. 더욱 아들 한재광을 상처입히고 그로부터 상처입고, 하지만 그렇게밖에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모든 것이 일그러져 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뒤틀려 버렸다. 살고 있는 시간도, 살아가는 공간도, 살아가고 있는 자신도, 더욱 답답한 현실 속에 그래서 한재광은 탈출을 꿈꾼다. 억지로 현실을 외면하며 그래도 다시 보통의 삶을 살아갈 것을 그려본다. 젊으니까.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으니까. 그것은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절망이다. 김윤혜 또한 같다. 그들은 정신적 쌍동이다. 둘 다 서로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탐낸다. 잃어버리고 온 것을. 오도카니 멈춰선 김윤혜를 오히려 김주평을 보고 난 뒤 한재광은 억지로 붙잡아 세운다. 절대 놓지 않으려는 듯이.

미스테리가 가미된다. 과연 한재광의 형 한재민(권세인 분)을 죽인 것은 김윤혜의 아버지 김주평(이성민 분)인가? 그렇다면 한재민이 한재광에게 선물하려 했던 드럼스틱을 한재광의 차 안에 가져다 놓은 강목수(김영재 분)란 누구인가? 강목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이는 카페 주인 경자(신동미 분)는 과연 어떤 존재일가?

단순한 미스테리가 아니다. 희망이다. 김윤혜의 희망이고 한재광의 희망이다. 어두운 미로 속에 두 사람은 홀린듯 진실을 찾아나선다. 아니 차라리 두 사람 앞에 하나둘 단서를 드러내고 있는 미스테리 자체가 하나의 환각과도 같다. 그 환각을 부여잡으려 한다.

답답할 정도로 담담한 영상이 좋다. 명쾌할 정도로 우울하게 가라앉은 침착함이 좋다. 비명은 곧 비명이다. 절규는 곧 절규다. 안으로 삼킨 비명과 절규가 더 처절하다.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행복하고자 살아간다. 행복이란 본능이다. 누구나 일상을 그린다. 너무나도 평범한 아무렇지도 않은 보통의 일상을 꿈꾼다.

감정선이 디테일하다. 무엇보다 하나의 완결된 시나리오에 의해 만들어진 짜임새있는 구조가 좋다. 도저히 열리지 않다가 아예 그대로 물을 쏟어버린 물병이 두 사람 사이를 말하는 것 같다. 중첩된 오해로 더 이상 마음을 열려 하지 않다가 그만 한 순간에 넘쳐버리고 만다.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면에 흐르는 감정이 미묘하게 감수성을 자극한다.

사랑을 하고 싶다. 남들과 같은 보통의 연애를 하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본능이다. 싸늘하게 저며온다. 바로 사람의 이야기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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