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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이슈뉴스
  • 입력 2016.03.01 08:44

[권상집 칼럼] 프로듀스 101, 진정성 없는 향연

시청률을 위해 엠넷에게 필요한 건 오직 단순 소모품 연습생

▲ 프로듀스 101 ⓒ스타데일리뉴스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필자가 본 칼럼을 통해 프로듀스 101의 노예 계약 파문을 언급한 후 놀라웠던 점은 오히려 프로그램에 대한 비난을 멈추라는 일부 시청자 팬들의 항의였다. CJ E&M의 문화적 영향력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일로 인해 오히려 프로듀스 101 프로그램이 먹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옹호하는 그들의 항의는 정도가 지나쳤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프로그램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남발하는 프로듀스 101에 대해 한번 더 짚고 넘어가야겠다.

정치권은 툭하면 ‘국민이 추천하는’, ‘국민이 부른’, ‘국민에 의해 선발된’이라는 말을 남발한다. 마치 자신들의 대단한 특권을 국민들에게 나눠주어 국민들이 정치 권력의 선발 과정을 대신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이 말들은 모두 허언, 실언, 망언으로 드러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엠넷이 대표적으로 내세운 프로듀스 101은 시작부터 ‘국민걸그룹을 육성한다’라는 낯뜨거운 슬로건을 내밀고 있다. 특정 심사위원이 아닌 국민들에 의해 선발된 걸그룹이라는 명분을 심어주고자 한 PD의 시청률 낚기 의도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2009~2010년 CJ가 슈퍼스타K를 히트시킨 후, MBC의 위대한 탄생, SBS의 기적의 오디션 등 망작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내밀었다 사라진 후, 지금까지 SBS가 K팝스타를 그나마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대형 기획사들의 대표들이 직접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적어도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사람들의 역량을 길러주고 이들을 국민은커녕 괜찮은 걸그룹 수준으로 육성시키려면 프로그램의 총괄 진행자는 음악적 전문성을 갖춘 아티스트이거나 기획사에서 수많은 엔터테이너를 육성한 경영자여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들도 프로그램의 취지에 설득 당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진행자는 다름아닌 장근석. 그는 ‘아시아의 프린스’라는 애매모호한 수식어를 등에 업고 연습생들에게 ‘근성이 부족하다’는 코멘트를 여기저기 날린다. 애초에 장근석을 전면에 내세운 이 프로그램의 숨은 의도가 국민걸그룹 육성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아시아에 더 많이 홍보하고 수출하기 위한 엠넷의 상업화된 계획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특히나 무대 공연에서 등급을 나누고 등급별로 이들을 분류하고 심사하는 모습이 마치 대기업의 신제품 전시 및 구형화된 제품을 처분하는 프로세스와 같아 소름 끼친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라’는 허황된 말로 삼촌 팬 및 일부 청소년 팬을 끌어들인 후, 이 프로그램은 전형적으로 한명 한명을 클로즈업하고 그들의 세밀한 면을 모두 들추어내며 이들을 통해 화제성 만들기에만 집중한다. 과거 슈퍼스타K때부터 해오던 전형적 프로세스와 함께 계약서에 이미 엠넷에 반기조차 들지 못하게 못박았으니 카메라는 구석구석을 돌며 이들을 비추고 트레이너들은 평가자 답지 않은 품위 없는 말로 연습생들을 공격하고 이들의 등급을 매긴다.

코칭이라는 건, 해당 지원자 또는 연습생들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키고 이들의 성장 욕구에 관심을 갖고 공감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트레이너들은 방송에도 적합하지 않은 비속어와 반말을 섞어가며 연습생들에게 일방적인 명령과 통제를 강요한다. 방송 프로그램 성격상 시청률과 화제 몰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트레이너들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지만, 여전히 국내 기획사에서 육성하는 체계는 전형적인 구시대적 경영 관리와 이제는 퇴출되어야 할 카리스마 리더십에 의한 불통 명령인 것 같아 민망하기만 하다.

국내 교과서뿐만 아니라 방송, 언론에서도 가장 안 좋은 지도 방식은 ‘소통을 기반하지 않은 일방적 명령과 통제’라고 강조한다. 특히, 사람을 등급화하고 서열화하는 제도가 한국의 교육 수준과 전반적인 국제경쟁력을 낮춘다고 수없이 전문가들이 강조하지만 여전히 엠넷은 이를 철저히 시청률의 도구로 삼고 연습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간주하여 이들에게 폭언과 수준 낮은 지시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국민걸그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존중, 수평적 의사소통, 진심어린 코칭 등은 미사여구에 가깝다.

또한, 국민에 의한 투표로 국민걸그룹을 선발하겠다는 이들의 말 역시 허망할 뿐이다. 100명이 넘는 소녀 중 이미 엠넷은 특정 연습생들에게 과도한 카메라 몰이를 해대며 이들이 보다 우월하고 이들을 선발해야 함을 시청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힘없는 기획사들은 엠넷의 불균형한 카메라 몰이에 하소연할 방법이 없다. 겉으로는 국민에 의한 투표지만 이미 속으로는 엠넷과 일부 기획사들이 주도한 방향대로 프로그램은 흘러가고 있다. 겉으로만 공정한 전형적인 불공정 게임이다.

국민에 의한 선발, 국민걸그룹 탄생이라는 낯뜨거운 미사여구를 부각시키기 위해 프로그램은 연습생들의 땀과 감동, 눈물을 주입한다. 기획사에 속해서 몇 년을 절치부심한 연습생들의 희망과 절망을 누가 모르겠는가. 다만, 이들의 희망과 절망이 시청률과 수출에만 혈안이 된 또 다른 방송 프로그램의 수단이 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연습생으로서 겪는 불안정성을 해당 프로그램은 더욱 부추기고 하위 등급에 속한 연습생들은 언제 내쫓길지 몰라 연습 내내 마음을 졸인다. 단체로 Pick me (나를 뽑아줘)를 부르며 뽑아달라 애원하는 그들. 그리고 그 뒤에서 웃음 짓는 방송사. 불편한 진실이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계열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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