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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6.02.16 07:09

[김윤석의 드라마톡] 욕룡이 나르샤 39회 "결정과 선택, 지배당하는 자의 비극과 운명"

정도전과 이방원, 백성과 권력, 분이 앞에 놓인 선택들

▲ 육룡이 나르샤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육룡이 나르샤. 권력이란 어쩌면 객관식 시험문제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문제를 내면 누군가 그것을 풀어야 한다. 답은 오로지 문제를 낸 출제자가 미리 골라놓은 선택지 안에만 있다. 그 안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 만일 그밖에 다른 답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설사 문제가 잘못되어 풀기를 거부었어도 일단 틀린 것으로 간주된다. 만일 높은 점수를 받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출제자의 의도를 자신보다 우선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결정한다. 누군가는 선택한다. 누가 먼저인가는 의미가 없다. 결정할 수 있는 사람과 선택해야만 하는 사람의 구분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무리 자신이 먼저 결정을 내렸어도 상대가 뒤따라 결정을 내리면 그에 대한 입장과 답을 들려주어야 한다. 아무리 상대가 먼저 결정을 내렸어도 굳이 구애받을 필요없이 일단 자신이 결정을 내리면 상대는 그에 대해 선택을 해야만 한다. 따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지지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선택에 대한 처분 역시 모두 자신이 결정한다.

과연 결정은 오로지 왕 이성계(천호진 분)만이 내릴 수 있었다. 그토록 적극적으로 정도전(김명민 분)과 마찰까지 빚어가며 다섯째 정안대군 이방원(유아인 분)을 세자로 밀었던 조준(이명행 분)마저 왕의 결정이라는 한 마디에 바로 이후의 문제로 대화의 주제를 넘기고 만다. 어차피 신하로서 아무리 왕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충언을 하더라도 왕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결국 왕이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면 신하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둘 뿐이다. 하나는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왕이기에 따르거나, 다른 하나는 잘못인 것을 알기에 왕이라 할지라도 거부하고 반대하거나. 그렇게까지 할만한 중대한 잘못은 아니었기에 조준 역시 쉽게 납득하고 넘어가고 만다. 명분없이 신하로서 왕을 지나치게 거스르는 것도 감히 해서는 안되는 불충이기도 했다. 왕의 결심이 그처럼 굳건하다면 신하로서 그저 따라야 하는 것이다.

정도전 역시 원래는 명분상 적장자인 첫째 진안대군 이방우가 안된다면 그 다음 서열인 둘째 영안대군 이방과(서동원 분)가 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왕 이성계 앞에서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래야 왕위를 둘러싼 더 큰 혼란과 소란을 막을 수 있다. 안정된 상태에서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다져갈 수 있다. 하지만 이성계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았다. 어떻게해도 이성계가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자신의 왕에게 결정하도록 했던 것이었다. 그를 위해 이성계가 각오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자신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군권을 포함한 조선의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넘길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이성계가 원하는대로 막내 이방석을 세자로서 지킬 수 있다. 처음부터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왕이 결정한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따른다. 새로운 나라의 모든 실권을 한손에 쥐었지만 그래서 정도전은 신하고 이름뿐인 이성계는 왕이다.

그 선택의 순간이 분이(신세경 분)에게도 찾아온다. 분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단지 정도전과 이방원 각자의 사정에 의해, 그들의 결정에 의해 어느새 분이 자신마저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나마 일관되게 정도전을 따라왔던 친오라비 이방지(변요한 분)나 친언니와도 같던 연희(정유미 분)는 혼란이 적었다. 그동안 해온 그대로 정도전을 따르며 그의 곁을 지키고 그의 명령을 받들면 된다. 하지만 분이는 아니었다.

분이 역시 처음에는 그들과 같이 정도전을 따랐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방원에게 이끌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아예 정도전의 지시로 그를 위해 일해 오고 있었다. 이제와서 정도전을 따른다는 것은 이방원에 대한 배신이었다. 이방원을 따르는 것도 정도전과 모두를 등지는 것이었다. 이방지와 연희의 충고대로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아무의 편에도 서지 않더라도 간절히 자신을 원하는 누군가의 존재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만다. 말이 중립이지 결국 이방원에게서 중요한 정보원인 분이를 떼어놓고자 하는 것이었다. 아무의 편에도 서지 않는 것이 결국 누군가를 버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린 탓이었다. 자신들의 일이 아니었다. 저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어디까지나 저들의 문제였다. 누가 죽고 누가 살 든 자신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누가 왕이 되고 정승이 되든 자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누가 이기고 누가 권력을 가지더라도 그저 자신들 사는데 지장만 없으면 되었다. 자신들은 백성이었다.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며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백성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들의 일이 자신들의 일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저들의 입장에서 저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저들의 입장이 곧 자신의 입장이 되었다. 저들의 이해가 자신들의 이해가 되었다. 

아마 전작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이 세종에게 했던 말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백성이란 본디 무지하기에 무서운 것이다. 현명해지려는 순간 오히려 어리석어진다. 홍인방과 이방원도 아닌 정도전과 이방원이었다. 어제까지 백성들을 위한 나라를 꿈꾸던 동지였었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들이 누구의 곁에 있는가에 따라 서로 적이 되고 원수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선이고 정의고 인정이라 믿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다른 많은 백성들처럼 자신들 역시 전혀 상관없이 그저 결과만을 누리며 살았으면 되었을 것이다. 때로 억울하고 화가 날 때 높은 곳에 있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비난하면서.

그래서 문득 혼돈에 눈귀코입의 일곱개의 구멍을 뚫었더니 피를 토하고 죽더라는 '장자'의 한 귀절을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비로소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린다.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본다. 말을 한다. 원래 분이는 백성의 대표였다. 이서군에서도, 정도전을 쫓아 개경으로 올라와서도 그녀는 항상 백성의 편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머무는 곳은 무지렁이 백성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흙투성이 마을이 아닌 번화한 개경에서도 권력의 중심부였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 전혀 다른 별개의 세계였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는 법을 배웠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곁에서 보고 익혀갔다. 무엇보다 자신을 다르게 불러주고 있었다. 무려 왕의 아들 씩이나 되는 이가 자신을 소중하게 가치있는 존재로 여기고 대해주고 있었다. 같은 말과 행동조차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름없는 백성 분이가 비로소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익명에 가려졌던 욕망과 감정이 이름을 가지고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한다. 하필 그 순간 이방원의 정처 민다경(공승연 분)은 그녀에게 첩이 될 것을 제안한다. 장차 궁궐로 들어가게 되면 후궁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의도한 것이라면 너무나 잔인하다. 선택해야 한다. 가장 고귀한 백성인가. 아니면 비천한 권력의 조각인가. 가장 무거운 주제가 그녀에게 지워진다.

정도전이 압록강을 건너 요동에서 여진족 추장을 만난다. 사실 만주란 원래 청나라 건국 이후 쓰이기 시작한 지명이었다. 만상이라는 이름도 바로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하필 만상의 중개로 여진족 추장과 만나 어떤 약속을 받아낸다. 정도전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는 어떤 실제 역사의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만상객주에서 정도전은 무명의 단서를 찾아낸다. 이미 연희를 통해 이방원이 무명과 결탁한 사실을 알고 있다. 새로운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도 반드시 무명을 찾아 뿌리를 뽑아야 한다. 전쟁의 시작이다. 무명과 손잡은 이방원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반격의 순간을 대비한다. 반드시 분이가 자신의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조준의 입에서 고려의 왕족이던 왕씨의 처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참혹한 비극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공양왕(이도엽 분)과 척사광(한예리 분)을 기다린다. 어쩌면 척사광은 다시 칼을 쥐게 될까. 무휼의 할머니 묘상(서이숙 분)의 무심한 대사들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 손자 무휼(윤균상 분)이 벼슬을 받은 것에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 경계한다. 어떤 부귀와 영화도 당장의 삶보다 소중하지는 않다. 난세를 살아온 지혜다. 살아감을 그려낸다.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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