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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12.30 08:41

[김윤석의 드라마톡] 육룡이 나르샤 26회 "한국역사와 무협, 그 새로운 가능성을 보다"

역사란 인간과 인간의 투쟁이라는 본질을 짚어내다

▲ 육룡이 나르샤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육룡이 나르샤. 오래전 그런 질문을 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째서 우리나라에는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무협의 전통이 없는가. 오로지 일대일로, 실력 대 실력으로 부딪혀서 승부를 가리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만 없는 것인가. 그래서 대개 한국형 무협이라고 하면 배경만 한반도였지 중국과 일본의 그것을 모방한 아류에 불과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것이 있었을 줄이야.

복잡하고 방대한 정치이야기를 마치 주요인물 몇몇에 의한 일대일 대결처럼 몰아간다. 처음에는 이인겸이었고, 그 다음에는 홍인방과 길태미였으며, 그들이 몰락한 뒤에는 최영과 조민수(최종환 분)가 차례로 나타났다가, 이번에는 조민수가 물러나고 이색(김종수 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명분은 칼이고 세력은 방패다. 명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더 큰 세력을 일구기 위해서, 혹은 상대의 명분을 빼앗고 세력을 꺾기 위해서, 온갖 책량들이 마치 절세의 무공처럼 살기를 머금고 절묘하게 펼쳐진다. 이기는 자는 살고 지는 자는 죽는다.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지는 자는 몰락해 사라진다. 냉엄한 역사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의 역사와 무협과는 그다지 잘 맞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게 된 이유였다. 일찌감치 중앙집권체제가 갖추어지며, 성리학의 도입 이후 개인의 무력보다는 보편의 논리와 명분이 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실제 조선건국 이후 몇몇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요한 권력투쟁 역시 성리학의 이론과 논리에 기초한 유학자들의 명분싸움의 형식을 띄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구는 무엇에 근거한 어떤 논리를 전개했으므로 옳고, 누구는 무엇을 근거로 어떤 다른 논리를 펴고자 했으므로 그릇되다. 성리학을 이해하고 당시의 복잡한 상황을 이해해야 비로소 그 전말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단순화시키려 해도 지루하고 난해하기만 한 말의 나열이라는 한계를 넘어서기란 힘들다. 

언제부터인가 왕권과 신권을 나누고, 노론을 절대악으로 삼아 국왕을 비롯 나머지 정파들과 대립케 하는 구조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나마 복잡한 정치를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시켜 시청자가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오로지 백성과 나라만을 생각하는 선이 있고, 반대로 오로지 개인과 가문의 이익만을 탐하려는 악이 있다. 선은 악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고난을 겪으며, 악은 선을 궁지에 몰고 개인의 탐욕만을 추구한다. 선과 악의 대비를 극대화함으로써 선이 악을 이기는 마지막 순간의 쾌감을 극대화하고, 그를 기대하며 선의 편에서 악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과정을 즐기게 한다. 하지만 단순명쾌한 실력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역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다르다. 아무리 복잡하고 방대한 역사라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고 다양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어도 결국은 그를 대표하는 것은 한 개인의 이름이다. 수십년동안 수많은 사람이 살았고 또 나고 죽었지만 그 시대를 단지 세종이라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가지들은 모두 쳐내고 중요한 줄기만을 남긴다. 어떻게 해도 이인임과 임견미, 염흥방을 제거하고, 다시 최영과 조민수를 실각시키며, 마침내 이색마저 유배보내고 정몽주를 죽인 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것만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매 순간을 이인임과 임견미, 염흥방을 대신한 이인겸, 길태미, 홍인방을 비롯 최영, 조민수, 이색 등과 정면으로 대결을 벌여 그들을 이겨나가는 장면들로 재구성하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개인 대 개인의 실력대결이 벌어진다면 그 와중에 개인의 지략이나 무력이 활약할 여지 또한 더 커지게 된다. 바로 조민수와 이성계(천호진 분)의 싸움처럼. 역사에서는 조준(이명행 분)의 탄핵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지만 그 사이에 서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거치고 있었다.

나머지는 오로지 그를 위한 수단이자 장치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정도전(김명민 분)과 이성계가 중요하게 추진하려 했던 토지개혁이 조준이 전국을 돌며 조사한 자료로써 구체화되는 것도 그런 한 예일 것이다. 단순히 토지개혁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것을 넘어 그 자료를 서로 빼앗고 지키기 위한 쟁투로써 토지개혁을 사이에 둔 두 세력의 갈등과 다툼을 구체화하게 된다. 토지개혁을 성공시키려면 그 자료를 지켜야만 하고, 토지개혁을 좌절시키려면 어떻게든 그 자료들을 빼앗아 없애야만 한다. 더불어 정도전과 정몽주(김의성 분)가 갈라서게 되는 과정을, 즉 정몽주가 이성계와 맞서게 되는 동기로써 조준의 자료가 중요하게 사용된다. 비밀조직 '무명'이 보낸 편지에 조준의 자료를 지키기 위해 정도전과 분이(신세경 분), 이방원(유아인 분) 등이 모이고, 그곳에 역시 편지를 받고 나타난 정몽주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계획을 알게 된다. 토지개혁을 둘러싼 사대부의 갈등을 이렇게도 단순화시켜 표현할 수 있다. 역사에서 완전히 비껴가지 않으면서도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완전히 해체하다시피 재구성한다.

어째서 정몽주가 정도전과 이성계에게 치명적인 존재인가. 명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미 당시 유학자로서 정몽주의 명성은 스승인 이색을 한참 넘어서 있었다. 외교가로서도 행정가로서도 실력을 증명하며 사대부는 물론 권문세족과 일반백성들 사이에서도 그 이름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성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성계를 따르는 이들 가운데도 정몽주의 학식과 명망, 인품을 흠모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정몽주가 돌아선다면 이들 역시 돌아서게 된다. 오로지 정도로써 목적을 이루고자 했던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그것은 좌절과 다르지 않았다. 정몽주마저 다른 상대들처럼 실력으로 제거하고 넘어가려 한다면 필경 그들의 길은 정도에서 한참 멀어지고 말 것이다. 그나마 이색은 스스로 권문세족의 편에 서서 토지개혁에 반대함으로써 명분상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지만 정몽주는 그마저도 아니었다. 명분을 잃은 대의가 과연 온전한 대의일 수 있을 것인가. 피로써 이룬 이상이란 결국 피에 물들어 본래의 모습마저 퇴색되어 갈 뿐이다. 어쩌면 정도전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정도전과 이방원의 짧은 대화가 인상적으로 귀에 들어온다. 더 쉽고 더 빠른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길이 있음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유자로써 지켜야 하는 신념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돌아가더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바른 길로 가야 한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선택이 갈린다. 정도전과 이방원 두 사람의 운명 역시 바로 여기서부터 갈리게 되는 것이다. 정몽주가 정도전과 모두의 계획을 알았고 이후 이성계와 대립하게 된다. 스포일러도 무엇도 아닌 단지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방원이 그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데에도 어떤 중대한 다른 계기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필 비밀조직 '무명'에서 조준의 자료가 있는 정도전의 비밀장소로 유인한 세 사람이 정도전과 이방원, 그리고 분이였다. 일개 시비에 불과한 분이의 존재를 눈여겨 보는 사람은 아직까지 거의 없었다.

드디어 비밀조직 '무명'이 이성계 일파 앞에 그 단서를 드러내고 만다. 도화전에서 쓰러진 시체들 사이에 숨어 이성계의 목숨을 노렸던 의문의 암살자의 팔뚝에서 '무명'을 상징하는 문양을 발견했다. 공민왕으로부터 전해진 비밀조직 '무명'에 대한 이야기를 정도전이 확인해 준다. 비국사의 주지 적룡(한상진 분)은 분명 무명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위치에 있다. 화사단의 단주 초영(윤손하 분) 역시 무명에 대해 모르지 않는다. 이방지(변요한 분)와 분이의 실종된 어머니도 무명과 관계있을지 모른다. 이인겸과 홍인방을 제거하고, 최영과 조민수라는 산을 넘자 이색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앞두고 더 거대한 새로운 적이 등장한다. 정몽주를 이성계들과 분리하여 대립하도록 한다. 이미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이들에 대해 저들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또 대비하고 있다. 조준의 자료마저 무력화시킬 방법을 찾는다. 앞으로는 이색과 정몽주는 물론 이들 '무명'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예상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 이와 같은 유형의 이야기에서 비밀조직과 관련한 가장 비밀스런 존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전혀 예상치 못하고 방심하고 있던 그 사람이 바로 그 당사자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필자의 예상대로라면 드라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참혹한 비극의 연속일 것이다. 역사적 사건들이 비밀조직 '무명'과 연결된다. 조선의 건국과 그 과정에서 서로의 엇갈린 운명이 만들어내는 비극마저 모두 '무명'에게서 비롯된다. 비극의 한가운데 이방원이 있다. 물론 그런 예상조차도 빗나가게 만들기에 반전이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도전의 비밀장소로 들어선 것이 그들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길선미(박혁권 분)가 아닌 정몽주였던 것처럼. 놀라고 당황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26회의 마지막 장면은 말 그대로 스릴러였다. 진부하지만 정몽주의 등장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과연 역사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무협이 가지는 원초적인 대결의 구도를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정치마저도 결국은 대결이다. 권력다툼마저도 결국은 개인과 개인의 대결이다. 그 모든 것이 칼잡이의 손에 들린 칼끝에서, 책사의 머릿속에서 결정된다. 그늘에 숨어 역사를 움직이는 비밀조직이 있다. 그들을 쫓는다. 그들과 싸운다. 점입가경이다. 빨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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