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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12.24 07:49

[김윤석의 드라마톡] 리멤버 아들의 전쟁 5회 "단호하고 냉혹해서 차라리 슬픈, 지옥을 걷다"

정의도 진실도 사라진 재판, 서진우가 살아가는 지옥을 보다

▲ 리멤버 주역들 ⓒ스타데일리뉴스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리멤버 아들의 전쟁. 법을 믿지 않는다. 정의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복수하려 한다. 법을 희롱하고 정의를 농락한다. 세상에 진실따위는 없다. 진실이란 힘있는 자들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만들어질 수 있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 거짓된 진실을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믿어 버린다. 자신과 같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울부짖음조차 결국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를 궁지로 몬 뭇사람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세상과 분리하려 한다.

그날로부터 4년이 지나고 서진우(유승호 분)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치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억울함과 원통함을 잊기라도 한 듯 오히려 법의 이름으로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짓밟는 일에 동참하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약점을 헤집으며, 진실과 사실을 뒤섞어 판단을 호도하려 한다. 그가 세상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것이 법이고, 그것이 정의이며, 그것이 진리다. 단지 자신이 아닌 그같은 세상의 법과 정의와 진실이 그들을 고통받게 하는 것 뿐이다. 바로 자신이 그랬듯이.

당장이라도 아버지를 차가운 감옥으로부터 꺼내 와야 한다.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고 진범을 찾아 죄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실적도 명성도 필요하다. 어쩌면 서진우가 가까이서 겪으며 지켜보았던 유일한 변호사였을 것이다. 그가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대상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박동호(박성웅 분)의 방식을 닮아간다. 박동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 역시 빠르게 위로 올라가야 한다. 잠시라도 멈춰서서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다른 것들은 단지 그를 위한 수단이며 도구에 지나지 않느다. 방법이며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의 재판은 서진우를 돕던 이인아(박민영 분)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법은 믿지만 법을 다루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 검사도, 경찰도, 변호사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서진우와 서진우의 아버지 서재혁(전광렬 분)과 모든 억울한 사람들의 사정과 사연들이 그녀의 작은 어깨에 지워져 있다. 검사이면서 직접 사건현장까지 가서 현장을 살피고 증거를 확보하려 한다. 고시텔 도난사건의 피해자가 성추행의 피해자가 되어 나타났을 때 그녀의 사건을 받고자 한 이유도 바로 그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같은 날 같은 사건을 겪었지만 그렇게 두 사람은 너무 다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비로소 재판정에서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은 검사로서, 다른 한 사람은 변호사로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방청성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본다. 과연 너무나 자신을 닮아 버린 서진우의 모습을 보면서 박동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그토록 혐오하고 증오해 마지않던 자신과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야멸차게 몰아세우는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굳이 남규만(남궁민 분)에게 서진우의 정체를 알린 것도 사실은 서진우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자신이 맞서고자 하는 상대의 크기와 강함과 잔인함을 깨닫게 한다. 서진우가 하고자 하는 일은 바로 그런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사실일까? 모든 사실은 진실을 가리키고 있을까? 의외의 반전을 기대하게 된다. 얼핏 아버지 남일호(한진희 분)가 자신이 아닌 부사장 강만수(남명렬 분)를 더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질투로 남규만이 꾸민 일처럼 보인다. 정규직도 아닌 인턴 김한나를 위협하여 몰아세울 수 있는 것은 비단 강만수만이 아니다. 강만수가 부사장이라면 남규만은 사장이다. 더구나 일호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회장 남일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기도 하다. 굳이 남일호가 직접 나설 필요 없이 단지 그럴 생각을 가진 것만으로도 먼저 알아서 움직일 이들이 채이고 넘친다. 하필 강만수는 회식자리에서 모두의 부추김에 넘어가 김한나와 러브샷을 했고, 김한나의 부축을 받아 차로 돌아와서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만일 이 모든 과정에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서진우의 방식과 너무 빨리 모두의 앞에 드러나 버린 피해자 김한나에 대한 의혹이 오히려 사건의 진실에 대한 판단을 뒤로 미루게 만든다. 남규만이나 주위의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일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피해자 김한나가 강만수에게 추행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잔인하다는 것은 그 진실여부마저 더 이상 드라마에서조차 크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그 진실여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서진우도, 남규만도, 박동호 역시, 심지어 김한나의 편에서 성추행사실을 밝히려 애쓰는 이인아조차 사실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 일말의 여지조차 두지 않고 있었다.

사실일 것이고 사실이어야 한다. 그래야 고시텔 절도사건의 피해자로 만났던 김한나를 처음 했던 약속대로 도울 수 있고, 더불어 과거 서재혁에게 억울한 사형판결이 내려지도록 만든 당사자인 일호생명에도 조금이나마 상처를 줄 수 있다. 이인아처럼 서진우에게도 강만수가 무죄판결을 받아야만 그의 도움을 얻어 일호생명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갈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잘만 한다면 일호생명과 남규만의 약점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규만이야 당연히 강만수가 유죄가 되어야 당당히 그를 쳐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사람을 앉힐 수 있다. 박동호는 자신의 고용주인 남규만의 의도가 곧 자신의 의도다. 그 사이에서 오로지 김한나와 강만수만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누군가 거짓을 말한다. 그렇다는 말은 누군가 한 사람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필 서진우의 곁에 있는 것이 4년 전 하마트면 아버지 서재혁의 재판을 망칠 뻔했던 국선변호사 송재익(김형범 분)이라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하기는 재판을 망칠 뻔했지 진짜 망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재판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자신이 전적으로 신뢰했던 변호사 박동호였었다. 하지만 역시 의도가 궁금하다. 오히려 송재익이 보여주는 어눌함이 그나마 서진우의 법과 정의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혐오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아니었을까. 4년만에 다른 자신이 되어 만난 박동호와 이인아도 다른 그들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시간만 여기까지 흘러왔다.

정의란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 진실이란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 사람의 손에 들린 법이 정의와 진실의 이름으로 사람을 단죄한다. 사람이 사람을 벌한다. 사람의 의지가 사람의 죄를 정한다. 진실도 정의도 없는 어둠속을 오로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걸어가려 한다. 그 추악한 혼돈과 탐욕의 지옥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나아가려 한다. 배반당하고 부정당한 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지나온 길 위에 버려진다. 단호함과 냉혹함이 차라리 비극이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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