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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12.23 09:02

[김윤석의 드라마톡] 육룡이 나르샤 24회 "간략한 역사와 풍부한 드라마, 상상력의 힘"

돌아온 정도전과 조민수의 암살음모, 오랜 악연이 얽히다

▲ 육룡이 나르샤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육룡이 나르샤. 그동안 바로 이런 것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료에 기록된 내용이라고 해봐야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이성계(천호진 분)와 조민수(최종환 분)가 권력을 나누었다가 창왕의 즉위를 계기로 틀어졌고, 이후 이성계에 의해 임명된 사헌부 대사헌 조준(이명행 분)의 탄핵으로 조민수가 실각하게 되었다는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통사극을 표방했던 KBS의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도 그 과정은 조준을 등장시키는 목적으로 아주 짧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다르다. 벌써부터 조준이 그동안 연구한 토지개혁의 자료를 둘러싼 한바탕의 칼부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륜(조희봉 분)의 책략까지 더해지며 조민수가 실각하기까지 토지개혁을 둘러싼 치열한 정치싸움이 벌어지려 한다. 토지개혁을 단행하려는 이성계와 그것을 막으려는 조민수 사이에 첨예한 머리싸움이 벌어지고, 마침내 조민수에 의해 이성계를 암살하려는 음모까지 진행된다. 

상대를 술자리에 초대하여 암살하는 것은 역사에서도 흔하게 있어온 일들이었다. 상대의 비열한 음모로 인해 함정에 빠진 주인공이 실력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은 무협에서 너무 오래고 너무 흔하게 등장하는 클리셰일 것이다. 연회를 가장하여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살수들을 숨겨둔다. 정작 이성계는 그런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오로지 우호만을 위해 무기까지 내어주고 빈손으로 방심한 채 조민수의 집으로 들어선다. 다만 그 순간 이방지(변요한 분)가 하필 지금도 연희(정유미 분)를 괴롭히고 있는 그날 그때 그 일의 당사자를 우연히 알아본 것이 과연 어떤 변수가 되어 줄 지 모르겠다. 모두가 마음을 놓고 있는 가운데 오로지 이방지만이 마음에 살기를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색(김종수 분) 역시 신진사대부들의 스승으로서 난세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또다른 유형을 보여주려 하는 의도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개인의 신념과 도덕성이 반드시 사회적으로도 바르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넘치는 논리로 인해 현실마저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재단하며 긍정해 버리고 만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고, 그래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잠시 뒤로 미뤄두어야 할 필요도 있다. 납득할 수 없어도 필요하면 납득하고, 용인해서는 안되는 것도 가능하면 용인한다. 그것을 정당화한다. 자신의 남다른 뛰어난 지식이, 지성이, 지능이 그것을 가능케 만든다.

정도전이 자신의 스승임에도 이색을 원망하며 경계하는 이유다. 조민수와 권문세족의 비리와 전횡을 알면서도 서슴없이 그들의 편에 서려 한다. 정도전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성계와 정도전이 추진하려는 개혁이 더 고려에는 해가 된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이유로 정도전의 계략에 의해 조민수와 권문세족이 오히려 고립되는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그들을 비판하며 타이르는 모습도 보인다. 근본적으로 옳다. 바르다. 선량하다. 정의롭다. 다만 우선순위가 다르다. 그 기준이 다르다. 하륜가 다르지만 비슷하게 자신의 머리로만 세상을 계량하려는 유형이었다 할 수 있다. 자신이 선 자리가 흔들리거나 위협당하는 것을 용납지 않는다. 철저한 이기이며 에고다. 그를 뒷받침할 자신과 능력을 갖는다.

정몽주(김의성 분)의 처지가 갈수록 곤란해지는 이유다. 정도전이 대의를 쫓는다면 정몽주는 명분을 쫓는다. 정도전의 대의를 이해하면서도 이색과의 스승과 제자로서의 관계를 우선시한다. 세상에는 부모와 자식이 있다. 남편과 아내가 있다. 스승과 제자가 있다. 임금과 신하가 있다.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남편답고, 아내답고, 스승답고, 임금답고, 신하답고, 그것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바로 인이고 예다. 대의는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천하를 위해 부모를 거스르고, 처자식을 버리며, 스승을 거역하고, 임금에 반역하여 마침내 죽이기까지 한다. 

천하의 대의에서 벗어나면 임금조차 더이상 임금이 아니게 된다. 더이상 나라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이상 고려는 자신이 지키고 받을어야 할 자신의 나라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이고, 자신이 섬기기로 한 군주이기에 끝까지 목숨바쳐 지킨다. 유가가 말하는 바른 선비의 양 극단에 있을 것이다. 반역도 옳고, 충심도 옳다. 세상을 바르게 바꾸려는 혁명가가 있다면 그 세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충신도 있다. 모두가 자신의 대의와 정의를 위해 싸우고 부딪히고 그리고 부서져간다. 시대가 그들의 등을 그렇게 떠민다.

홍인방에 이어 다시 하륜에 의해 이방원(유아인 분)은 자신도 알지 못하던 원래 모습을 억지로 엿보게 된다. 홍인방과 다르다. 홍인방과 닮았지만 그러나 전혀 다르다. 홍인방이 가졌던 음습함이 이방원에게는 없다. 후회도, 원망도, 탄식도, 반성도 없다. 홍인방을 망친 것은 과거에 사로잡혀 휘둘리는 자신의 나약함이었다. 하지만 이방원에게는 그마저도 자신을 위해 긍정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도취적인 강인함이 있다. 어떤 좌절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마저도 자신을 위한 필연이며 운명이라 긍정하며 자신에 만족해 버릴 수 있다.

정도전에게서 난세를 살아가는 사람의 유형을 듣고 나오는 길에 오히려 난세와 싸우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흐뭇한 웃음을 짓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차라리 정도전을 스승으로 섬기며 따르는 것도 정도전과 같은 대단한 사람의 제자가 되어 그의 대업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취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 있다. 당시와 같은 난세에 뿌리부터 썩은 고려를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그 대단한 일에 제자로써 함께 동참하고 있다. 하륜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일따위 전혀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그저 누리고 즐기려 한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그것으로 좋은가. 그것으로 만족하는가. 그것으로 자신은 충분히 즐거운가. 이방원의 표정이 달라진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하륜과 조민수의 계획에 대해 말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마치 전혀 상과없는 남의 일인 양 무감동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벌레가 깨어나려는 것이다. 아니 벌레는 이방원 자신이었는지 모른다. 왕이다. 선악도, 호오도, 시비도 없는, 오롯한 세상에 하나 뿐인 왕. 왕이 깨어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륜과는 다르면서도 같게 세상을 굽어보며 마음대로 희롱하려 하는 단 한 사람의 존귀한 왕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분이(신세경 분)라는 인연이 그를 인간의 세상에 잡아두고 있다.

정도전의 명으로 조민수의 집을 감시하는 연희의 옷차림이 무척 눈에 거슬렸다. 무려 이성계와 도방의 권력을 나누고 있는 조민수의 집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인적도 드문 한밤중인데 딱 눈에 띄기에 좋은 화려한 옷에 장신구까지 갖추고 있었다. 숨어서 몰래 지켜보는 것도 아니다. 우두커니 서서 차인 사람마냥 대문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화사단 요원들은 일부러 검은 옷에 검은 두건까지 쓰고 움직이고 있었다. 분이를 따르는 백성들 역시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아무렇지 않게 그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차라리 분이의 조직원들이 연희보다는 더 임무에 어울리지 않았을까. 그동안도 대부분 분이와 조직원들이 하던일이었다.

물론 연희의 과거와도 마주쳐야 할 필요는 있었다. 연희의 과거와 관계된 인물이 바로 조민수의 밑에서 그의 가노로 있었다..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연희는 결코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주저앉고 말았다. 가노와 마주치고 연희가 주저앉던 그날 이방지의 눈에 당시 연희에게 상처를 준 홍인방의 가노가 눈에 띄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연희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상처의 깊이를 확인하고 난 바로 뒤였다. 오랜 숙제를 풀어야만 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과거에 붙잡힌 끈을 끊어야 했다. 조민수가 파놓은 함정으로부터 이성계를 구해야만 한다. 인연은 그렇게 다시 필연으로 이어진다.

드디어 정도전에게도 역할이 주어졌다. 정말 오랜만이다. 하륜의 등장 탓이다. 하륜의 책략이 계속해서 조민수의 편에서 이성계를 곤란케 만들고 있었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정도전이 나서서 해결해야만 했었다. 하륜이 이방원과 만난 것도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이방원이 정도전과 여할을 나눌 필요가 없어졌다. 조정에서의 일은 분이가 관여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이색을 통해 사대부를 동원하여 조민수를 도우려는 계획을 미리 읽고 그 대상을 천 결 이상으로 제한하여 대부분의 사대부를 대상에서 제외시킨다. 사대부의 동의가 없는 이상 이색은 사대부를 이끌고 전면에 나설 수 없다. 

한 번 이기고 한 번 졌다. 이색을 이용한 하륜의 계획을 좌절시켰지만 조민수로 하여금 무력시위를 하도록 하여 이성계를 후퇴시키려는 시도에는 어쩔 수 없이 넘어가 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또 한 번의 무력충돌은 이성계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킬 뿐이다. 조민수는 상관없겠지만 장차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정도전의 입장에서 백성의 마음을 잃는 것은 절대 피해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주도권은 이성계에게 있다. 명분도 실리도 이성계와 정도전이 쥐고 있다. 전진할 것을 안다면 후퇴는 후퇴가 아니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조민수가 최악의 수를 준비한다. 역시 조민수의 함정과 이성계의 대응이 이후의 내용을 결정할 것이다. 역사는 알지만 아직 드라마는 다 보지 못했다.

하기는 원래 퓨전이라는 자체가 역사와 다르기에 재미있는 장르인 것이다. 역사 그대로를 고집한다면 굳이 퓨전이라는 형식을 빌 필요가 없다. 실제의 역사와는 다른 새로운 재미를 역사라는 줄기 위해 양념처럼 입힌다. 실제의 기록에서는 매우 간략하게 지나간 이성계와 조민수의 권력투쟁이 한바탕 치열한 책략과 원초의 칼부림으로 마무리된다. 각각의 인물들이 다른 역할을 부여받아 전혀 다른 요리를 만들어낸다. 즐거운 이유다. 다시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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