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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12.03 07:57

[김윤석의 드라마톡]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 15회 "뻔뻔스런 항변, 그 여자가 내 인생을 망치려고 했어요!"

딸과 그 여자의 차이, 폐쇄적인 마을이라는 공간의 이유

▲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 "나도 지금껏 참회 할 만큼 하고 살았다구요. 그런데 그 여자가 내 인생을 망치려고 했어요. 우리 가족 다 망치려고 했다구요!"

하기는 그러니까 범죄같은 것도 저지를 수 있는 것일 게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니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당시는 물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고통속에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이면서도 죄인이 되어 평새을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 스스로 형벌로 여기며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전혀 그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느끼는 고통, 자신이 받는 불이익, 그로 인한 손해만이 더 절실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가족과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김혜진(장희진 분)을 죽였노라 자백하면서도 끝끝내 남수만(김수현 분)은 그녀를 오로지 '그 여자'라고만 부른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목졸라 살해했다 달하던 순간에조차 그녀가 자신의 생물학적 딸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내와 어린 딸을 어떻게든 지켜야만 한다. 그를 위해서 심지어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마저 대신해 자백하고 있었다. 이토록 헌신적인 가장의 모습과 자신의 생물학적인 딸을 끝까지 '그 여자'라 부르며 거리낌없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목졸라 살해했다 자백할 수 있는 비정함과의 사이에 어떤 모순이 있을까? 아니 다르지 않다. 단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김혜진은 단지 가족이 아닌 '남'일 뿐이었다.

역시 하필 '아치아라'라는 폐쇄적인 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였을 것이다. 단지 같은 마을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거부하고 배척한다. 같은 마을사람들끼리는 그토록 정도 많고 인심도 좋으면서 마을을 벗어나면 여지없이 무심하고 매몰차진다. 아니 같은 마을에서 나고자란 이웃이었음에도 마을의 상식을 벗어나 아버지가 다른 남매를 가지게 되었을 때 윤지숙(신은경 분)의 어머니(정애리 분)에게 가해진 처분은 혹독한 것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조롱을 들으며 마을로부터 따돌려져야만 했었다. 나와 내 가족, 내 이웃, 내 울타리 안의 지인들, 그리고 그 밖에 나머지 타인들. 바로 '인정'이란 것의 실체가 아니었을까.

내 딸처럼. 내 아들처럼. 내 가족처럼. 그러나 진짜 딸도, 아들도, 가족도 아니었다. 자신의 진짜 가족 앞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다정한 훌륭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을 벗어나면 바로 그 가족을 위해 다른 이를 짓밟고 빼앗으며 상처주는 또다른 누군가였을 것이다. 제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아들이며 형제이고 자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다. 상대의 처지나 입장따위 아랑곳없이 오로지 자신만, 자신의 가족만, 자신의 주위만,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인 상대를 비난하고 그를 죄인으로 만들려 한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입에 담기도 끔찍한 집단성폭행사건이 일어났을 때 지역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심지어 경찰까지 나서서 피해자를 비난했던 것은 지금도 유명할 것이다.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데도 오히려 피해자가 사건을 알림으로써 가해자가 무고하게 상처입고 피해입고 장래를 망치게 된다. 어째서 자신이 피해자인데도 죄인이 되어 이웃과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배척당해야 하는 것인가.

남편이 지은 죄로 인해 다시 아내가 죄를 짓는다. 남편의 죄를 가리기 위해 이번에는 아내가 죄를 짓고 만다. 남편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인 남수만이 아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죄인이 되고자 하는 것과 같다. 남성에 의지해 살아간다. 여성은 오로지 남성에 의지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윤지숙 역시 서창권의 아내로 남기 위해 필사적이다. 옥여사(김용림 분)가 자신을 아예 집에서 내쫓으려 하자 윤지숙은 애써 감춰왔던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서창권이 마을에서도 따돌림당하던 자신을 여왕으로 만들어주었다. 비참하고 비루하던 자신을 한순간에 고귀한 신분으로 끌어올려주었다. 아무거나 넣어 담을 수 있어 뒤웅박이라 한다. 무엇을 넣는가에 따라 뒤웅박의 가치가 달라진다. 오로지 남성에 의지해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성이란 얼마나 한심하고 비루한가. 그러나 다르게 사는 방법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차마 남성에게 죄를 묻지 못한다. 혹시라도 사실이 알려질까봐. 혹시라도 모두가 알게될까봐. 그러면 자기와 가족들에 피해가 올까봐. 여성들끼리 서로에게 죄를 묻고 서로에게 책임을 지운다. 아예 남성은 죄의식조차 없다. 그런 현실의 부조리였을 것이다. 윤지숙은 어쩌면 남수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누가 32년 전 자신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가 벌써 오래전부터 알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려져서는 안된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 진실을 알리려는 김혜진의 시도는 오히려 윤지숙 자신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김혜진의 목을 조르고 있던 것은 윤지숙이었다.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온 목재소 주인 남수만의 아내는 그 모습을 목격한다. 역시 아내 역시 남편의 지난 잘못이 사람들에 알려져서는 안되는 입장이었다. 차라리 화나거나 혐오스럽기보다 안타깝고 가련하다. 그들의 죄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이다. 안다고 말하는 자체가 오만이다. 이해한다는 자체가 지독한 위선이다.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혼자서만 지키려 한다. 어머니기이게 윤지숙의 어머니 또한 그런 딸을 지키려고만 한다. 차마 너무 불쌍하고 너무 가엾어서 그만 또다른 딸의 존재를 잊는다. 자신마저 오로지 딸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겼었다. 지키는 수밖에 없다. 혼자서 이기지 못하고,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다면, 그저 묻고 잊은 채 곁만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들 서기현(온주완 분)도 이해하기보다 그저 받아들이려 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영영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그래서 오로지 김혜진의 의지였다. 귀신같은 것이 아니다. 사건의 진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은 김혜진 자신의 의지가 동생 한소윤(문근영 분)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피해자다. 여성이다. 모두가 묻히고 잊히기 바라는 가운데 오로지 그녀만이 진실을 모두에게 알리려 한다. 그 의지를 한소윤은 다시 경찰들에 전하여 단서를 찾게 만든다. 실타래가 풀려간다. 얽히고 꼬인 가운데 그 위에 더해진 다른 의지들이 하나하나 벗겨지며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참혹한 진실이다. 진실보다 더 참혹한 비극이다.

너무 익숙한 모습이다. 그래서 토하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고 적나라하다. 전혀 아무런 죄책감조차 없이 태연히 자신이 피해자라 말할 수 있는 범인의 모습에서. 오히려 피해자임에도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순(우현주 분)의 모습에서도. 다시 같은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신은 그렇게밖에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다. 윤지숙은 김혜진의 목을 조른다. 우울하다.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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