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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권상집 칼럼니스트
  • 이슈뉴스
  • 입력 2015.10.26 04:33

[권상집 칼럼] 보이지 않는 손, 조재현의 금수저 논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돌아가는 영광에 대한 분노: 역겨운 노골적 특혜

▲ SBS '아빠를 부탁해' 조혜정 조재현 부녀 ⓒSBS

[스타데일리뉴스=권상집 칼럼니스트]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대한민국 최대의 화두는 ‘정의’ 였다. ‘정의란 무엇인가’ 도서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120만부가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마이클 샌델의 국내 강연에 수 천명이 몰릴 정도로 대한민국에 정의라는 용어가 화두로 떠오르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아예 2010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공정사회’를 국정 키워드로 강조하였다. 한국에 유독 정의 또는 공정이라는 키워드가 화제인 이유는 노골적인 특혜와 반칙, 편법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를 부르짖고 국가 기조로 공정사회를 외친지 5년이 지났지만 누가 봐도 상식에 어긋난 특혜와 편법, 반칙은 더욱 거세게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나서 기회를 선점한다는 금수저 이야기는 우스개 소리처럼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다 이제는 언론 또는 인터넷에서 노골적으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기준표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친절하게도 부모의 자산은 얼마이고 가구의 연 수입은 최소 몇 억이어야 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잣대를 제시하며 우리들에게 너희는 어떤 수저를 갖고 태어났냐며 방송은 압박한다. 한 마디로 천박하다 못해 이런 삼류 사회가 없다.

올해 국회의원 자녀들의 일부 대기업 특혜 채용 논란이 있었지만 여기에 대해 지난 대선 당시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된다’ 라고 강조한 모 후보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당의 국회의원이 자녀를 특혜 채용시켰다는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안에 끝내 침묵을 유지했다.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고 자신들이 물려 받은 자산, 부모의 배경으로 본인의 취업과 중요한 기회를 선점하는 일이 이제는 비일비재하여 이런 일 자체가 크게 화제가 안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여기에 불을 지른 건 배우 조재현의 딸이 곧바로 유승호와 함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는 보도였다. 이미 SBS에서 ‘아빠와 딸’을 콘셉으로 삼은 예능 프로그램을 봤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상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 중, 상당수가 아빠가 닦아 놓은 연예계에 자신 역시 발을 들여놓고 싶어했던 지망생 딸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줄곧 방송에서 유명한 배우로서 시대를 풍미한 아빠에게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며 그 동안 자신이 수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하며 오히려 피해를 겪었음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한 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지금도 연극배우로 1년에 100만원은커녕 수입도 없이 배우라는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오디션에 낙방하는 사람들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실력은 우수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제작을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이 없어서, 요즘 대세가 되어버린 부모의 배경이 약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삼키는 무명의 연기자 지망생이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연예계는 예전부터 2세의 활동이 매우 보편화되어 있다.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2세 배우는 방송국, 영화계에 넘쳐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대선에서 언급된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다는 식의 얘기는 헛된 메아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연기력이나 경력 모든 면에서 부족한 조혜정이라는 신인이 MBC에브리원의 ‘상상 고양이’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는 건, 누가 봐도 보이지 않는 손이 강력하게 작용했음을 암시한다. 설사, 조재현이라는 배우가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MBC에브리원 역시 조혜정 캐스팅을 통한 노이즈 마케팅, 일종의 홍보 효과를 노렸을지 모른다.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부모의 힘과 지위, 명성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미,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프로그램의 삼둥이에게 조차 국회의원 할머니와 판사 엄마, 배우 아빠를 둔 금수저를 넘어선 황금수저라고 누군가는 부르니 대중의 분노가 얼마나 쌓여가는지 알만하다.

유명하기만 하면 연예인보다 좋은 직업은 사실 없다. 명성만 쌓으면 광고 촬영으로 하루 만에 남들이 평생 벌어도 모을 수 없는 돈을 벌고, 부동산을 통해 급속도로 자신의 부를 늘릴 수 있다. 연기자 또는 연예인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물려주고 싶은 이유도 일정 부분 명예와 돈을 한번에 거머쥐고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지금 조혜정 논란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우 조재현은 구체적인 해명도, 그리고 반박도 없는 상황이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국내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던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돌아가는 영광에 대한 분노는 우리 사회 보편적 감정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조재현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의 딸이 손쉽게 남들이 거머쥘 수 없는 기회를 차지한 건 사실이다. 대중이 분노하는 건, 자격이 검증되지 않는 자에게 영광이라는 기회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닌 일정 부분의 변명 또는 해명을 조재현은 내놓아야 한다.

갑자기 오늘 일부 기사는 조재현의 딸 조혜정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고생했다는 언플식 기사가 등장했다. 최근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언플 기사 역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것이라면 과도한 필자의 우려일까? 개그맨 박명수가 이야기했듯이 ‘개천에서 난 용을 만나면 개천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농담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점점 사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불쾌한 마음에 TV를 틀어보니 개그맨 이경규가 딸과 함께 춤을 추며 광고에 출연, 위운동 소화제를 홍보하고 있다. 요즘 결혼하는 사람들이 왜 자녀 갖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을 탓하지 않고 부모의 배경을 탓하는 게 당연시되는 이 불쾌한 현실은 이제 고착화된 느낌이다.

- 권상집 동국대 경영계열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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