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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22 07:49

나는 가수다 - 왜 사람들은 분노하는가?

연예계란 현실의 투영이다.

 
MBC의 예능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나는 가수다>에 대한 사람들의 여론이 뜨겁다. 대개는 배신감과 분노다. 프로그램이 시청자와의 약속을 어겼다. 출연자들이 시청자의 눈따위 아랑곳없이 공중파에서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였다. 한 마디로 시청자를 무시했다.

결국은 역린을 건드린 탓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나. 하나는 부당하고 불공정하다 여기는 현실사회에 대한 분노와 신해철의 말처럼 연예인을 낮추어 보는 대중의 오만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이 부당하고 불공정한데 예능프로그램마저 그러느냐? 어찌 연예인이 감히 그럴 수 있는가?

대중문화란 결국 대중의 무의식의 투영이다. 대중의 현실적 욕구와 불만, 바람, 희망 등이 대중문화를 통해 투사되어 소비되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는가? 무엇이 불만족스러운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어찌하면 좋겠는가? 더 불행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극한의 슬픔 속에 현실에 안돈을 느끼는가? 아니면 더 행복한 사람들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이 따라주지 못할수록 더욱 대중문화의 판타지 속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선하기를 바라고, 정의롭기를 바라고, 행복하기를 바라고, 순조롭기를 바란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에 그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지게 된다. 가끔 현실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일들이 공중파이기에 더 크게 문제가 되고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바로 그러한 판타지 위에 TV 라고 하는 대중매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이란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싸인>이나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강력반>을 보더라도 그같은 무의식은 그대로 드러난다. 모두가 정작 수사의 대상인 범죄자보다는 수사의 주체인 국립수사연구소나 경찰조직 자체를 적으로 여기고 그와 맞서싸우는데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고, 처벌을 받게 되었어도 어느새 사면으로 풀려나고, 그리고 나서는 오히려 전보다 더 큰소리를 치는 모습들을 보면서. 분명 죄를 지었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음에도, 그러나 오히려 법을 지켜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와 심지어 언론마저 나서서 그를 옹호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스스로도 그에 동조하고 있기까지 하다. 어쩌면 내가 놓인 불리하고 우울한 현실이란 그같은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작 웃고 즐기자고 보고 있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그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원래 약속한 바대로라면 평가단의 투표 결과 7위가 된 김건모는 프로그램에서 탈락해서 미리 준비한 다른 가수로 교체되었어야 했었다. 그런데 김건모라는 이름값에 출연한 다른 가수들이 동요하고 제작진이 배려해 버렸다. 원래는 탈락이었는데 한 번 더 기회를 주어 보겠다고. 마치 법도 원칙도 무시한 채 특권을 누리는 기득권의 누군가처럼.

실제 그렇게 기득권의 누군가가 되어 버렸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 그 자체가 되어, 불공정과 불합리 그 자체가 되어. 김건모만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조장했던 이소라와 김제동, 무엇보다 그런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 제작진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 대중은 연예인에 대해 아직도 낮추어 보는 것이 있다. 워낙에 대중의 인기에 민감하고, 대중의 여론의 변화에 항상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연예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연예인에 대해 자기보다 한 계급 아래라 무시하며 보는 경향이 크다. 그렇게 자칫 대중의 기분을 거슬렀다가는 그대로 매장되어버릴 수 있으니. 연예인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자각이 연예인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는 오만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딜 감히 공중파에서 그러느냐? 충분히 동료가수로써,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에 대해 김건모가 7위를 하고 탈락한 사실에 충격을 받을 수 있고 동요할 수 있다. 이소라만이 아니라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가수들 모두가 그같은 사실에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단지 그 가운데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이 이소라였고, 그것은 그녀의 말마따나 같은 노래를 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공중파에서. 그것도 시청자가 보는데.

역시나 앞서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한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요구하지도 못하고 아예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연예인이니까. TV이고 연예인이고 그리고 시청자니까. 항상 연예인과 관련해서 공인이라는 이유로 일반의 개인에 비해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한 도덕과 선의 판타지를 연기하는 것조차 연예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강제되는 대중의 요구이며 의무다. 연예인이 공인이라 불리우는 이유다.

그런데 감히 공중파에서 시청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개인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더구나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고. 김제동의 발언은 얼핏 일반대중인 평가단을 폄하하는 듯 들렸으며, 김영희PD의 판단은 마치 시청자와 약속한 원칙을 저버리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자격도 되지 않는데 특권을 누리려는 기득권의 반칙으로 나타났으니. 차라리 김건모가 이름없는 신인가수였다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중의 분노는 차라리 불의와 부정에 대한 응징과 단죄에 가깝다.

결국 미디어와 연예인이라고 하는, 대중문화 전반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항상 문제가 불거지는 "어찌 공인이?"라고 하는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도덕적 요구와 강제의 한 형태라 보면 될 것이다. 어찌 연예인으로써 감히 그럴 수 있는가.

대중이 바라는 판타지를 연예인은 항상 노력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니면 배신이다. 더불어 이상화된 형태의 인간상을 스스로 대중에 보여줄 의무가 있다. 그도 아니면 배덕이다. 그러한 판타지에 충실할 의무가 연예인에게는 있다. 그를 위한 수단이고 대상으로써만 연예인이란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해 버렸으니.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이렇게까지 흥분할 일인가? 이렇게까지 비난하고 할 일인가? 한 차례 그저 자리잡지 못한 초기의 프로그램에서 있을 수 있는 헤프닝으로 여길 수는 없는가?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출연한 가수들이나 제작진의 실수인 것이고. 제작진의 어떤 의도마저 의심할 만큼 충분히 예견되었단 상황인 셈이다. 대중이 바라는 바. 대중이 원하는 바.

어째서 대중은 저리 분노하는가? 저렇게까지 배신감마저 느끼는가? 연예인이란 현실에 실존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문화란 대중의 판타지 그 어느 지점에 존재한다.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항상 연예계와 관련해 불거지는 증오의 이유들일 터이므로.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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