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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9.03 08:59

[김윤석의 드라마톡] 어셈블리 15회 "홍찬미의 눈물과 마음을 움직이는 진심의 정치"

현실정치를 위해 가장 급하고 가장 우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

▲ '어셈블리' 포스터 ⓒK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어셈블리. 좌냐 우냐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이념이 달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는 이념에 따라 나뉜 복수의 정당들이 존재한다. 정당이 존재하는 자체가 모든 개인의 정치적인 이해나 지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민주주의 선진국일수록 정당이나 정치인 개인의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을 선명하게 드러내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다양한 요구가 현실정치에 반영될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선거라는 것도 하게 된다.

어차피 정치라는 자체가 싸움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이루고 싶은 정책이 있다. 바꾸고 싶은 현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것일 수 있다. 오히려 강력히 비토해야 할 해로운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모순이며 부조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합리이고 정의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에 따라 나뉘어 무리를 짓게 된다.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입장과 요구를 현실에 더 반영하기 위해서. 더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 정치라는 것을 하기 전에는 전쟁을 했다. 전쟁의 해악을 깨닫고 난 뒤에는 정해진 자리에서 정해진 룰에 의해 대화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배우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과연 그런 싸움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들인가 하는 것이다. 이념이란 자체가 어떤 사회가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사회인가 하는 고민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법과 제도가 구성원 다수에게 최선의 삶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사회의 구성원들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삶이란 무엇인가. 산을 깎아 골프장을 건설한다면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 테고, 개발을 포기하고 환경을 보존한다면 주위의 환경이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유지될 것이다. 그 이상의 보다 상위의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다. 답은 없다. 그래서 싸운다. 무엇이 더 옳고, 무엇이 더 가치있는가. 그런데 과연 정치인의 싸움이 그런 차원이었는가.

최인경(송윤아 분)이 홍찬미(김서형 분)을 일깨우려는 부분일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동안 일해왔는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의정활동을 해왔지만 그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국민당이라는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이었는가. 아니면 홍찬미 자신의 정치인으로서의 신념이었는가. 무엇도 아니었다. 단지 국회의원 배지를 위해. 그 배지를 보장해줄 수 있는 계파 보스의 입장과 이해를 위해. 그래서 허무한 것이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섬겨왔던 백도현(장현성 분)으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그 모든 것이 가치없어지고 말았다. 모든 의미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자신이 처음 추구했던 환경을 지키려 끝까지 싸우다 좌절한 것이라면 이토록 허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게 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되찾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 가련하도록 처절하다.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려 마지막 독기를 부려보지만 아무렇지 않게 무시당하고 말 뿐이다.

그래서 진상필(정재영 분)에게 설득당하고 만다. 혼자인 것은 진상필이나 홍찬미나 마찬가지다. 친청계에도 반청계에도 속하지 못한 것은 진상필이나 홍찬미나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당당하다. 거대여당인 국민당 전체를 상대하면서도 전혀 주눅드는 법이 없다. 정치권의 거물이랄 국민당의 중진들이 나서서 압박하는데도 전혀 흔들리는 법이 없다. 올곧게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한다. 출당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홍찬미 자신과의 개인적인 약속을 지키려 한다. 결국 누군가에 기대거나 빚지며 정치를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과 자신을 지지해주는 국민들을 위한 정치만을 해왔다. 그것이 진상필 자신의 정치인으로서의 이념이며 신념이다. 종교적인 믿음을 위해 죽는 것을 순교라 부르듯, 정치적인 신념을 위해서도 정치인은 얼마든지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 그러고서도 전혀 후회란 것을 남기지 않는다. 처음 홍찬미가 정치에 발을 딛으며 꿈꾸었던 정치인의 모습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주는 달콤함에 도취되기 전까지는.

동지가 아닌 동업자였다. 그 차이였을 것이다. 동지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다. 이상이든 신념이든 지향이든 같은 곳을 보며 함께 나가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동업자는 다르다. 동업자는 이익을 위해 뭉친 관계다. 이익이 없다면 당연하게 다른 이익을 찾아 등지고 헤어진다. 계파의 보스에게는 공천권이 있다. 공천을 받게 해 줄 힘이 있다. 그 힘을 기대고 모인다. 그 힘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하다못해 인간적인 매력에라도 이끌렸다면 권력을 잃었더라도 얼마간은 의리로라도 행동을 함께 할 것이다. 백도현이 대통령의 신임을 잃은 순간 홍찬미 역시 백도현의 손을 놓아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상필이 징계위원회에서 출당의 위기에 몰린 순간 홍찬미는 자신이 정보를 유출한 사실을 밝히며 진상필을 구원하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 승부수였다. 자신의 징계위원회에서 나눠먹기 공천의 진실을 한 번 밝혀보자. 백도현도 박춘섭(박영규 분)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런 장면에서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이고 만다. 보편적인 정서일 것이다. 인정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의리라는 말도 싫어한다. 합리와 이성을 좋아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사람만이 가지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진상필의 진심에 최인경이 설득당하고, 이제 홍찬미까지 넘어가고 만다. 백도현은 분노한다. 자신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은 외면한 채 진상필의 곁으로 모이고 있다. 누군가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누군가는 이익으로 정치를 한다. 홍찬미를 동지가 아닌 동업자로 만든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념이나 신념이 아닌 단지 이익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상필이 진심을 보여줬을 때 심지어 그와 대립하던 강상호(이원재 분)마저 잠깐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이 좋은 정치인가. 이론이 아닌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전한다.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 진심을 담은 정치를 한다. 어쩌면 이념이든 이론이든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결과일 것이다. 진지하게 고민하며 답을 찾으려 노력했을 때 이념이라는 것도 만들어지게 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일까? 무엇을 어떻게 하면 모두를 위한 최선이 될까? 자신만의 답이 곧 자신만의 이념이 된다. 그 다음 과정은 이념을 따라 당을 옮기는 것이다. 어차피 이념이 다른데 같은 당이라는 틀에 갇혀 결론도 나지 않을 싸움만 하는 것도 썩 보기 좋은 모습만은 아니다. 함께 이념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 정치인들을 찾아 행동을 같이 한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정당에도, 계파에도, 동료정치인에도 기대거나 빚지지 않는,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는 진심의 정치다. 그것이 먼저다.

정공으로는 안되니 결국 편법에 기대게 된다. 반칙이다. 그동안의 싸움은 비록 속임수나 계략이 동원되기는 했지만 그나마 정치인 사이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수싸움으로 용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외적인 힘을 끌어들여 인위로써 없는 사실을 만들려 한다. 집권여당의 실세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검찰을 동원하고, 은행장의 약점을 잡아 거짓증언을 하도록 협박한다. 공작정치다. 바닥을 보여준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 그렇다면 과연 진상필은 현실로 다가온 위협을 어떻게 헤쳐갈 것인가. 가장 중요한 고비일 것이다. 권력까지 동원된 함정에서 정치인으로서 진상필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작가는 시대극에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고전적이고 낭만적이다. 오로지 자신의 진심만으로 다른 동료국회의원을 설득해내는 진상필의 모습이나, 보좌관으로서 서슴없이 직언하고 질타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 국회의원인 진상필의 뜻을 존중해 한 발 물러서는 최인경의 존재나. 이상적이지 않을까. 진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군과 그 진심을 인정하고 믿어주는 참모의 존재란. 너무 큰 그릇이다. 드라마란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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