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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1.03.19 07:37

위대한 탄생의 강점과 한계!

또 한 번의 논란에 앞서...

 
원래 오디션이란 점이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그 시간 그 공간에서 만난다. 과거의 노력도, 앞으로의 가능성도, 그리고 심사위원과 참가자의 관계도 그 시간 그 공간의 한 점에서 모두 이루어진다. 판단 역시 개별적인 그 한 점에 존재한다.

바로 M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이 갖는 모순이다. <위대한 탄생>은 분명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써 멘토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었다. 멘토란 서사다. 오디션이 점이라면 멘토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그리고 멘토와 멘티를 잇는 선이다. 단지 한 시간짜리 방송이지만 그 뒤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의 서사가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판단한다. 어떻게 그럴수가...? 그들이 보기에 <위대한 탄생>이란 오디션이고 곧 점이니까. 방송이 나오는 그 순간에, 그 점에서 모든 판단이 이루어질 테니까. 그러나 개별화된 시청자와는 달리 멘토는 서사적으로 멘티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나와 함께 생방송에 가서 성실과 노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보여주어야 해. 할 수 있지?”

아마 분명 다시 이야기가 나오리라. 어떻게 권리세가 붙었을까? 이진선이 더 잘하는데? 박원미가 더 훌륭한데? 하지만 시청자가 판단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는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멘토이기에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위대한 탄생>의 편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멘토란 말했듯 서사다. 멘토와 멘티 사이의 관계이며 그를 통해 성장해가는 서사구조다. 멘토시스템을 채택한 것은 바로 그런 서사구조를 개별적 오디션에 넣어 보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서사가 제대로 시청자들에 보여졌는가?

멘토 가운데 가장 먼저 방영된 김태원의 멘토스쿨 편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서사가 있다. 양정모, 손진영, 백청강, 이태권이라는 멘티들이, 그리고 그들의 멘토 김태원과의, 그들 사이에 쌓이는 시간과 관계, 그리고 성장과 드라마가 있었다. 부활의 콘서트장에서 탈락자들이 마지막 노래를 부를 때 시청자들 역시 함께 눈물을 보였던 것은 그 서사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권리세의 연습장면을 보여주었다면. 차라리 중간평가를 생략하고 이은미가 주목한 권리세의 근성 부분에 보다 비중을 두었다면. 이은미가 권리세의 개별적 실력보다 서사적인 가능성과 관계에 더 주목했다면 <위대한 탄생> 역시 그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편성은 너무 짧았고 편집도 미숙했다.

하긴 방시혁의 멘토스쿨에서도 노지훈이 뒤늦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그가 무대에 서기까지, 그리고 무대에서 인정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생략된 탓이 크다. 그것을 보여주자는 멘토시스템이었을 텐데. 굳이 멘토를 두고 훈련을 받게 한 것은 그러한 서사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지 보여진 것은 중간평가와 최종평가라는 결과 뿐. 당연히 시청자 입장에서도 멘토와 멘티라고 하는 서사가 아닌 오디션이라는 개별로 여길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위대한 탄생>에서의 논란이란 제작진 스스로 자초한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멘토시스템을 채택했다면 그 멘토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어야 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 역시 누구도 해 보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가는 시행착오일까? 앞으로 <위대한 탄생>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서사를 보여주고자 했다면 보다 서사에 집중해야 한다.

아무튼 이은미조에서 어떻게 권리세가 선택되었는가? 이진선이나 박원미가 아닌 김혜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이은미조이기 때문이다. 멘토가 이은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는 이은미 개인의 영역이다. 그래서 그 판단이 잘못되어 2명의 합격자 가운데 누구도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면 이은미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멘토란 시청자를 대신해서 그들의 판단을 전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가르치고 훈련시켜 그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존재다. 이은미가 보기에 권리세와 김혜리가 선택되었다면 그럴만한 부분이 있었겠지. 선생으로써 열심히 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권리세가 사랑스러웠을 수 있고, 김혜리의 가능성에 아직 미련을 두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모든 판단의 책임은 결국 멘토 이은미가 지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위대한 탄생> 제작진이라고 멘토링과 서사구조에 대해 아주 무관심한가면 그것은 또 아니다. 이은미와 권리세, 이은미와 김혜리, 거의 편집된 내용만 보아도 누가 붙고 누가 떨어지고를 간단히 알아 볼 수 있다. 같은 멘티인데도 어느새 멘토인 이은미와 서사를 만들어가는 권리세, 김혜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이진선과 박원미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만든다. 반전이 없는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조금 더 다양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다른 멘티들에 대해서도 보다 디테일하게 열어보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엄격한 선생님 김윤아와 숙제를 해 오지 않은 불성실한 학생 안아리. 정희주라고 하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학생도 있고, 백새은 같은 가능성은 엿보이는데 문제 투성이인 손 많이 가능 학생도 있고. 역시나 이은미조에서처럼 김한준처럼 문제만 노출한 채 소외되는 친구도 있다. 마치 한 편의 학원물처럼 멘토 김윤아를 중심으로 각각의 개성을 가진 멘티들이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것이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그러고 보면 이은미조에서도 당장의 실력은 부족하지만 성실하고 근성이 있는 권리세와 재능은 있지만 간절함이나 노력이 부족한 김혜리가 대비되고 있었다. 결국은 멘토와 멘티가 만들어가는 드라마다. 평가의 결과란 단지 그 서사의 한 지점일 뿐. 그것을 자신도 이미 보여주고 있을 텐데.

 
드라마는 충분하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 그리고 그를 통한 성장과 발전이라는 기본적인 구도만으로도 이미 드라마를 위한 서사는 충실히 준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기술적인 부분이다. 그것을 어떻게 드라마로써 완성하여 시청자에 보여줄 것인가?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동의를 얻어낼 것인가? 굳이 억지로 꾸며내지 않고도 단지 그것들을 시청자들에 충실히 보여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드라마는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니. 결국은 편성과 편집의 싸움인데 지금까지 너무 안이하지 않았는가. 멘토시스템에 대한 준비와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최고의 재료를 가지고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참 문제다. 어째서 김태원조를 가장 먼저 방송에 내보냈는가. 결국은 가장 임팩트가 컸고, 따라서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는 것일게다. 김태원조가 있기에 기대치가 생겼다. <위대한 탄생>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르다. 그 기대가 사람들로 하여금 매주 <위대한 탄생>을 기대하며 보게 만들지만, 그것은 또한 이후의 멘토들에 대한 족쇄가 된다. 지난주도, 그리고 이번주도, 정작 방시혁과 이은미가 주인공이었어야 할 텐데 여전히 김태원조의 이름만이 언급되고 있으니. 바로 <위대한 탄생>과 멘토시스템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보는 오디션은 <슈퍼스타K>와 같은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이다. 시청자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 전에 <위대한 탄생>스스로가 자각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탄생>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멘토라고 하는 <위대한 탄생>만의 강점에 대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으로 만족시킬 것인가.

<위대한 탄생>이 갖는 강점과 한계, 그것은 결국 멘토시스템에 의한 것일 게다. 오디션답지 않은 서사적 판단과 그럼에도 성장이라고 하는 서사적 드라마의 양면적 모순관계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그것을 살려나갈 것인가? 기존의 과거회귀적 서사가 아닌 앞으로의 발전과 성장이라는 서사의 드라마에 대해 어떤 입장에서 무엇을 대중에 보여줄 것인가? 그것은 <위대한 탄생>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관계될 것이다. <위대한 탄생> 제작진이 고심해야 할, <위대한 탄생> 앞에 놓인 숙제인 것이다.

어쨌거나 또 이번의 결과로 인해 시끄러워지게 생겼다. 공정성 논란이 나올 테고,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테고, 그리고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탄식도 터져나올 테고. 하기는 이것도 하나의 서사일까? 오디션을 오디션으로 보지 않은 것. <위대한 탄생>이라고 하는 개별의 프로그램에 대해 개별적으로 보지 않는 것. 서사와 서사의 충돌이라... 역시 제작진이 감당해야 할 문제일 테지만.

결국은 멘토가 판단하는 것이다. 스스로 가르치며 지켜본 바에 따라 멘토 자신의 자존심과 양심을 걸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멘토의 몫이다. 멘토와 멘티 사이의 서사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위대한 탄생>인 것이다. 앞서 전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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