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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윤석 기자
  • 방송
  • 입력 2015.06.19 07:47

[김윤석의 드라마톡] 가면 8회 "악역의 부재, 민석훈 마침내 살인을 저지르다"

맞서야 할 악의 없이 자신의 감정과 맞서야 하는, 로맨스의 이유

▲ '가면' 포스터 ⓒSBS

[스타데일리뉴스=김윤석 기자] 이제야 비로소 하나 저질렀다. 악이었다. 모든 죄의 근원이었다. 그와의 계약을 통해 '가면' 변지숙(수애 분)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했고, 거짓과 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벗어나려 발버둥칠 때마다 그녀의 발목을 움켜쥐고 더 깊은 죄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변지숙(수애 분)을 강제로 자신의 죄에 동참시키고서도 민석훈(연정훈 분)은 거의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를 이용해 어떤 일도 벌이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방치하고 있었다.

분명 목적이 있다고 했었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 말했었다. 변지숙을 이용해서 최민우(주지훈 분)를 밀어내고 자신이 그의 자리를 차지하겠다. 그런데 어떻게? 언제? 누가? 무엇을? 어떤 과정을 통해서? 아직 믿고 쓸 수 있는 자기 사람조차 몇 되지 않는다. 필요한 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자기 세력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오로지 회장의 딸린 최미연(유인영 분)의 자신을 향한 일방적인 감정만이 그가 야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다. 어느새 변지숙이 그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 이유였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도 해 줄 수 없었다. 그는 무력하며 무가치하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강제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변지숙이 해야 할 수고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약속하고 그 능력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민석훈 자신의 개인적인 야망을 위해 시작된 일들이다. 민석훈의 성공이 변지숙 자신의 성공이기도 해야 한다. 만에 하나 변지숙이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에 따른 적절한 응징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민석훈 자신의 감시에서 벗어나 행동해야 할 경우가 적지 않은데, 과연 아무런 확신도 보장도 없이 변지숙 개인의 의지에만 모든 것을 믿고 맡긴다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아예 자신의 과거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변지숙에게 사정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결국 민석훈은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능력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 철저히 불신한다. 그렇다고 전처럼 민석훈이 두려움의 대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죽인다고 말로만 할 뿐 실제 그녀를 죽이지는 못한다. 아니 손끝 하나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공식적으로 자신은 SJ그룹의 총수 최회장의 며느리이며 유력한 후계자인 최민우의 아내다. 누군가 그녀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결코 조용히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서은하로 있는 동안에는. 민석훈이 바라는 것이다. 서은하가 변지숙으로 돌아가는 순간 민석훈의 계획은 끝나고 만다. 그녀를 두렵게 만들고, 그녀 자신을 구속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서은하가 아닌 변지숙이라는 사실 뿐이다. 오로지 민석훈으로 인해 짓게 된 죄만이 그녀를 옭죄는 올무가 된다. 더 이상 민석훈에게 변지숙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서은하는 민석훈이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회심의 카드와 같았을 것이다. 서은하를 최민우와 결혼시킴으로써 SJ그룹의 유력한 후계자인 최민우와 그의 주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은하를 대신하게 된 변지숙은 연인이던 서은하와는 달리 자신에 대한 강한 거부감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어떤 유혹과 협박에도 쉽게 넘어오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이상의 수단을 사용하기에는 그가 가진 조건들이 너무 제한되어 있었다. 무언가 주도적으로 사건을 일으킬만한 여건 자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자신들이 저지른 바뀌치기의 진실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수세에 몰린 모습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뻔하다. 너무 허술하고 서툴기만 하다. 이래서야 그동안 단 한 번도 변지숙의 정체를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어색하게 여겨질 정도다. 어떻게 하면 항상 주눅들어 있고, 수상할 정도로 주위의 눈치만을 살피는 이 여자를 그토록 오만하고 자신만만해하던 서은하와 같은 사람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일까. 변지숙이 이토록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지 못하고, 더구나 가족을 포기하지 못해 약점마저 노출시킨 이상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나 다름없다. 김정태는 물론 변지숙의 동생 변지혁(호야 분)과 사채업자인 심사장(김병옥 분)마저 어느새 눈치를 채고 주위로 몰려들고 있다. 그것만 가지고도 이미 버겁다. 새로운 사건을 일으킬 여력조차 없이 오히려 민석훈이 그런 주위에 휩쓸리고 만다.

서은하 바꿔치기에 이어 민석훈이 주도하여 저지른 행위가 살인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원래 의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세운 계획의 일환으로 선제적으로 판단하여 행동에 옮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김정태가 변지숙의 정체는 물론, 서은하를 바꿔치기했을 가능성마저 의심하고 말았다. 김정태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동안 자신의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 역시 우연히 흘러가는 상황에 민석훈 자신마저 휩쓸리고 만 것이었다. 악역이라기에는 너무 어설프다. 죄를 짓는 과정에서도 변명처럼 너무 말이 많았던 것이 얼핏 동정심마저 느끼게 만든다. 최민우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던 사냥꾼이 자신의 죄에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만다. 반격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필사적으로 도망쳐 자신을 감추어야만 살 수 있다. 과연 악역은 누구인가?

변지숙 자신의 어정쩡한 위치 역시 한 몫 하고 있을 것이다. 경계에만 머눈다. 어디에도, 무엇에도, 속하거나 머물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죄를 거부하지 않는다. 가족의 인정에 이끌리면서도 끝내 그들을 외면하고 만다. 끝내 최민우에게 진실을 고백하지 못한다. 민석훈이 아니라면 변지숙 자신이라도 주도적으로 사건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 언저리에서 머뭇거리며 움츠리기만 하고 있다. 오죽하면 재벌가의 딸과 며느리가 평사원으로 출근하며 헤프닝을 일으키고 있었다. 과연 그같은 설정이나 장면들이 드라마의 내용과 어떤 필연적인 연관성을 가질까. 첫출근의 에피소드는 사실상 사족에 가깝다. 오히려 드라마를 더 난잡하게 지루하게 만든다. 혼란스럽다.

하기는 그래서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할 터다. 민석훈은 변지숙을 쫓느라 처음의 야망마저 잊고, 최민우 역시 어머니와 서은하의 사고에 대한 의문을 잠시 묻어둔다. 민석훈의 아내 최미연까지 네 사람의 감정이 얽히는 사이 어느새 드라마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철저히 잊히고 만다. 그들의 눈길과 마음이 가는 곳만을 쫓는다. 그것이 드라마의 중심이며 주제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한다. 운명적인 사랑에는 항상 고난과 시련이 따른다. 나머지는 단지 그를 위한 과정이며 꾸미는 장식에 불과하다.

역시 악역으로써 사건의 발단이 되어 주어야 할 민석훈의 캐릭터가 너무 모호해진 때문일 것이다. 민석훈의 야망이 극복해야 할 악으로써 구체화되었을 때 드라마의 주제도 보다 선명해진다. 맞서야 할 악이 없으면 자기 자신과 맞서야 한다. 하필 매력적인 남녀가 함께 있다. 그나마 마지막 장면에서 민석훈이 살인을 저지르며 변지혁이 그에 휘말리려 한다. 바로 변지숙의 동생이다. 더 깊이 얽히고섥힌다. 비로소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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